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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대기계 역사서: 전체적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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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1 조회수4,411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5-6) : 전체적 신학 (1-2)

 

 

역대기계 역사서에서 주목한 주제는 유배로 흩어진 유다인들 규합하는 것

 

신문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읽었다. 배우자의 수입이 많으면 대한민국 남성들 중 34.8%는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 마음이 있다는 기사였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집안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던 전통적 구조가 붕괴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경제력이 곧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적 구도가 가정에까지 들어와, 가정의 구조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을까….

 

역대기계 역사서는 귀환 후, ‘뒤집어진 권력관계’가 야기한 문제들 속에서, 새롭게 질서를 잡아나가고자 저술된 역사서였다. 구체적인 신학적 메시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신명기계와의 관계

 

유다인들은 이미 역사서(신명기계 역사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기계 역사서’를 새로이 제작한다. 역대기계가 신명기계 역사서의 관점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데, 새롭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면 ‘사제적’인 시각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경신례와 사제, 레위인들의 부상,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정 공동체 등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참된 이스라엘은 누구?

 

역대기계 역사서가 무엇보다도 주목하고 있는 주제는, 유배로 인해 산산이 흩어진 유다인들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기득권자들이 바빌론으로 유배 가자, 팔레스티나에 남게 된 이들은 변두리 계층의 사람들뿐이었다. 도저히 저항세력이 될 수 없다고 간주된 이들만 남게 되었던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60년 가까운 유배기간 동안 지도자 없이 지내기란 불가능이었다. 자연히 새로운 지배계층이 형성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북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이 모두 바빌론제국의 지역관구로 귀속되면서 사마리아인들, 이방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문제는 유배 갔던 이들이 돌아오면서부터였는데, 유배에서 귀환한 이들(소위 ‘남은자’라고 불리던)은 이전의 기득권을 되찾기 위해 주력하였고, 팔레스티나의 잔존인들(소위 ‘땅의 백성들’이라고 불리던)은 새로 돌아온 이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다.

 

한편 삶의 터전을 이미 바빌론에 마련한 이들은 본토로 귀환하지 않고 그곳에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였고, 이집트에도 커다란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역대기계 역사서는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라는 화두를 대주제로 삼는다. 유배라는 긴 공백 동안, 변두리 세력과 기득권층 사이의 권력구조가 뒤집어지고 대사회적 혼란이 야기되자, 이스라엘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기나긴 역사서술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예루살렘이야말로 하느님이 뽑으신 도시이고, 그곳의 성전이야말로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장소임을 주장함으로써,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함께 모인 예배 공동체’야말로 진정한 이스라엘의 맥을 잇는 참 이스라엘임을 주장한다.

 

 

성전과 사제계급의 부상

 

이렇게 예루살렘의 성전을 강조하다 보니, 역대기계 역사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전에 집중하여 재해석하고 있다. 또한 성전에 대한 집중된 관심은 사제계급과 레위계열의 부상을 자동적으로 가속화시켰는데, 결국 혼란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을 종교적이고 경신례적인 관점에서 재조직 하자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과의 관계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강조는 역대기로 하여금 솔로몬 이후의 역사를 남 유다의 역사로만 제한시키게 하였다. 즉 북왕국의 역사를 역사에서 제외시킨 것인데, 이는 ‘땅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외로움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성경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심기를 드러내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같은 반전도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들에 대한 내용을 읽을 때마다 ‘외로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 속에 섞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잘 지내려고 하면 할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감정은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에즈라 느헤미야 시대에 일어난 ‘땅의 백성’(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한)과 유다인들의 갈등(에즈 4, 1~4)은 사실 유다인들이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기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오직 유다인들 뿐이라는 무서운 선민의식 때문에 야기된 결과였던 것이다. 유다인들의 지독한 배타성으로 인해 아웃사이더가 된 땅의 백성들… 약자이기 때문에, 수줍은 미소로 다가가는 것조차 무시되는 구조는 옛날부터 있어온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외로움을 열병처럼 앓고 있나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대할 때이다. 연말 아닌가? [가톨릭신문, 2005년 12월 11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실정법 위상가진 모세 율법(성경) 이스라엘 삶 전반에 중심으로 자리잡아

 

올 한 해 동안 늘 가지고 다니던 수첩을 넘기다 보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편안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어느 달에 근심스런 일이 많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메모가 이것저것 많을 때에는 뭔가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던 때이고, 반대로 한글자도 없이 여백만 계속되는 때는 세상 편하게 살 던 때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왜 꼭 걱정스런 일이 생겨야만 비로소 삶에 집중하게 되는 것일까?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을 마주했을 때 작성되었다. 물론 현재 살펴보고 있는 역대기계 역사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니, 늘 해오던 말이지만, 힘든 삶은 이스라엘에게 진정한 생명과 삶을 체험하게 하는 기회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주에 이어 역대기계 역사서가 표현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윗왕조와 솔로몬

 

역대기계 역사가가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다윗왕조의 위상이다.

 

창조 때부터 유배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역대기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다윗의 통일왕국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윗 이전 시대(아담에서 사울까지)를 간단히 족보로 처리하고(1역대 1~9장), 사울의 죽음을 다윗이 등극하기 위한 단초로만 제시하며(10장), 이후(11~29장)에 다윗 왕국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만 봐서도 이 역사서가 다윗왕조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음은 쉽게 판별된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다윗의 정치를 신정(神政)의 이상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관점 때문에 다윗은 정치적 인물이라기보다 신정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로서 부각되어 있다. 그의 모습을 묘사할 때, 정치력이나 군사 지도자로서의 모습 보다는 예배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종교적 이미지에 힘입어 신명기계 역사서가 보도하고 있는 바세바와의 간통사건, 혹은 왕자들의 난 등은 완벽하게 삭제되어 있다. 물론 솔로몬도 다윗처럼 이상적인 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그의 품위를 손상시킬만한 사건들(통치 초기 경쟁자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사건, 말년의 사치와 우상숭배, 이방여인들과의 혼종혼)은 하나도 역사서 안에 기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과응보 사상

 

다윗 왕조에 대한 프로파간다는 남 왕국에 대한 부각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입장은 신명기계 역사서의 주요사상이었던 인과응보사상으로 연결된다. 역대기계에 의하면, 남왕국이 북왕국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야훼의 계약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이유 때문에 상응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역대기의 입장인 것이다.

 

 

혈통에 대한 강조

 

또한 역대기는 ‘족보’라는 특별한 장르를 통해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예배 공동체의 특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과의 분리가 가장 시급했고, 이러한 관점에서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혼종혼을 금지하고(에즈 9~10장; 느헤 13, 23~27) 이미 결혼한 이들의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추방하는 완고함을 드러낸다(느헤 13, 1~3).

 

 

모세의 율법

 

성전에 대한 강조와 함께 매우 강하게 부상된 것은 모세의 율법, 즉 토라였다. 에즈라에 의해 초막절 축제 때 선포되면서 귀환 공동체의 실정법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모세의 율법은 귀환자들(남은자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려는 대사회적 움직임의 내부적 기준이 된다(느헤 8, 1이하). 이로써 모세의 율법(성경)은 이스라엘의 삶 전반에 걸쳐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한 사회(종교)개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러한 상황은 에즈라를 ‘유다이즘의 창시자’로 알려지게 하며, 실정법으로서의 토라는 이스라엘을 율법위주의 사회가 되게하는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무지함으로부터의 해방

 

현실을 정확히 보고 문제점을 진단하며 그 어떤 장애도 넘어서서 진행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구약성경의 역사서들은, 그 넘지 못할 장벽을 뚫어주시고 그 장벽에 문을 내어주시는 분은 누구도 아닌 하느님이심을 명확히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자기 삶의 역사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간 순간 이어지고 있음을 여간해서는 깨닫지 못한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철철 나야 내가 그동안 하느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구나, 그래서 다쳤구나, 를 깨닫게 되니 말이다.

 

2006년에는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나의 무지함에서 제발이지, 한걸음 나오기를 기원해 본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이런 결심을 한 것 같은데, 그 전 해에도…!? [가톨릭신문, 2005년 12월 18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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