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실

제목 [신약]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24: 바오로의 사랑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신약] 예수님 이야기66: 예수님과 자캐오(루카 19,1-10)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13 조회수3,976 추천수1

[동녘에서 서녘까지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24 · 끝) 바오로의 사랑


죽기까지 사랑 실천한 바오로는 '사랑의 사도'

 

 

작가노트 =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 봄을 기다릴 줄 안다'던 김남주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 숨결을 호흡하고 느끼고자 터키와 그리스 성지순례를 다녀온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여행지를 따라간 순례 여정의 끝은 결국 사랑이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사람, 바오로 사도를 따라 걸어간 사랑의 삶이었다. 삽화 48점은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한' 바오로 사도의 삶을 그린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바오로 사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예로 들어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하늘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에페 5,1)하고 권면한다.

 

하느님을 본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바오로는 자신을 모범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11,1). 또한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필리 3,17)라고 충고한다.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라는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그 진리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하느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것은 선함, 곧 사랑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을 본받는 것에 동참하게 되고 하느님을 닮은 자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바오로는 그러한 사랑을 죽기까지 실천했다. 바오로처럼 적에게까지 사랑을 실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오로처럼 그를 해치려고 꾀했던 이들에게까지 이롭게 한 사람은 없다. 바오로처럼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가엽게 여긴 사람도 없었다.

 

바오로는 중죄를 지은 이들을 '사랑으로' 용서하라고 코린토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그에게 확인시켜 주기를 권고합니다"(2코린 2,7-8).

 

또한 "나는 매우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슬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향한 나의 특별한 사랑을 여러분이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2코린 2,4)라고 전제한다.

 

바오로 사도는 모두를 염려했다.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두가 봉사자 포이베를 돌봐주도록 편지를 보낸다. "우리의 자매이며 켕크레애 교회의 일꾼이기도 한 포이베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성도들의 품위에 맞게 그를 주님 안에서 맞아들이고, 그가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도와주십시오. 사실 그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의 후원자였습니다"(로마 16,1-2).

 

티토에게도 "법률가 제나스와 아폴로가 그대의 도움을 받아 부족한 것 없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티토 3,13)라고 편지를 보냈다.

 

주인의 것을 훔쳐 달아난 종의 경우에서도 우리는 바오로의 넘치는 사랑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종이 로마로 피하자 바오로는 로마에 투옥돼 있으면서도 그 종을 회개시키고 삶을 완전히 바꾸도록 도왔다. 이어 주인인 필레몬에게 편지를 써 보내면서 간절하게 필레몬이 그 종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바오로 사도의 넘치는 사랑 배워야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온통 그 종을 위한 것이었다. 종 오네시모스를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필레 11)이라고 부른 바오로는 그가 입힌 손해나 빚을 자신이 대신 갚겠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이 생기를 얻게 해주십시오"(필레 20)하고 청하고, 그 종을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이듯 "사랑하는 형제"(필레 16)로 받아들일 것을 간청한다. 종 오네시모스에게 보인 바오로의 그 큰 사랑으로 미뤄 볼 때, 바오로 사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사랑을 보였을지 가늠하고도 남는다.

 

바오로는 자신을 핍박하며 죽이려고 쫓아다닌 유다인들의 구원도 열렬히 원했다. 그래서 어느 도시를 가든 바오로는 맨 먼저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 그들의 회당에서 설교를 시작했고, 자신을 내쫓으면 그제야 우상숭배자들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바오로는 특히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히브리인들의 불행에 깊은 슬픔을 나타내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말도 전한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

 

4~5세기 교부이자 총대주교, 교회학자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hn Chrysostom)는 바오로에 대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 여러분도 바오로의 사랑을 쟁취하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십시오. 바오로가 행한 사랑의 힘이 바오로를 널리 알려지게 만들었습니다. 바오로를 보기 위해, 그리고 하늘 왕국에 계신 바오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도 계속해서 사랑의 길을 걸어갑시다. 우리들이 영적 투쟁을 함으로써 승리의 면류관을 쟁취하도록 합시다"(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세 번째 설교문'에서).

 

우리처럼 단순한 사람들에게는 바오로를 본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바오로는 우리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반론을 내놓은 사람에게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답변한다.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바오로는 우리와 똑같은 몸과 영혼을 지녔던 사람입니다.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마셨으며,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환경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선한 열망과 위대한 의지, 뜨거운 열성을 가지셨습니다. 만일 당신도 기꺼이 온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노력하면 당신도 그분처럼 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오로 사도도, 당신도 모두 창조하셨기에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바오로의 주님이신 것처럼, 당신의 주님이십니다. 바오로를 기리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당신도 알려지기를 원하시고 영광스런 화관도 씌워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열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바오로를 본받아 행하는 데 방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열성을 가졌기에 은총을 받았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네 번째 설교'에서).

 

최정상 사도인 바오로에 대한 원고 집필을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대주교(Andrew of crete, 685~711)의 찬양송으로 끝마치고자 한다.

 

 

성 안드레아 대주교의 사도 찬양송

 

 영광스러운 바오로 사도여,

 누가 당신이 투옥된 것과 그 슬픔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누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기 위해 교회로 이끌어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행하신 당신 투쟁과 수고를 밝혀줄 수 있을까요?

 ……

 영광스러운 바오로시여, 

 누가 당신이 수고한 것과 

 밤을 새워가며 굶주림과 갈증 속에서 고통받고

 추위와 헐벗음 속에서 피신하고

 매맞고 돌팔매질 당하며

 침몰된 배와 함께 가라앉았던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

 당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은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인내하셨습니다.

 

[평화신문, 2011년 8월 7일, 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그림 정미연]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