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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여호수아기: 창문에다 진홍색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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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1-08-26 조회수2,923 추천수1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여호수아기 - 창문에다 진홍색 줄을

 

 

우리말로 1,200쪽에 달하는 긴 대하소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는 등장인물이 무려 559명이나 나옵니다. 그렇지만 중심축을 이루는 세 주인공을 통해 전쟁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려 나갑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은 안드레이가 불현듯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경외심을 가지고 내뱉는 독백입니다. ‘어째서 지금까지 저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렇다! 저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기만이다. 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체험이야말로 전쟁과 실패 가운데에서 느낀 진정한 평화가 아닐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가는 전쟁 이야기 여호수아기에서 ‘평화’의 참된 원천과 그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우선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을 살펴봅시다.

 

1,6 “힘과 용기를 내어라.”

 

오직 한 사람의 이름 ‘여호수아’로 정해진 역사서(전기 예언서)의 책 한 권. 그 초상화를 글 몇 줄로 그려 본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시나이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난 첫 사건부터 그의 존재가 눈에 띕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그를 보는 곳은 이스라엘 민족과 아말렉족의 전쟁터입니다. 이 싸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를 맡긴 사람이 바로 에프라임 지파의 한 사람인 여호수아입니다(탈출 17,9-16 참조).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며, 이 이름의 다른 형태가 ‘예수(예수아)’로서 그 자체가 상징하는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 옆에서 시중드는 ‘모세의 시종’으로 시나이 산 위에서도 모세 옆을 떠나지 않았고(탈출 24,13; 32,17 참조),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함께 이동하는 성소인 ‘만남의 천막’을 지켰습니다(탈출 33,11 참조). 그는 거룩한 땅을 첫 번째로 정찰한 후 항상 이스라엘의 전쟁과 연결됩니다. 이윽고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합니다(민수 27,22-23 참조). 이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앞에 ‘가나안 땅의 정복과 분배의 임무’라는 커다란 과제가 펼쳐집니다. 여호수아에게 이러한 사명을 부여하고 파견하시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굳세어지고 용감해져라!”(《구약성서 새 번역 15》 여호 1,6.9)는 격려와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가 구원 역사의 선택된 도구로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깊이 신뢰한다면, 어떤 현실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당신이 당하실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후(요한 13-16장 참조),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고 말씀하십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절실히 요구되는 이 굳건함과 용기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요? 일찍이 순교 성인들이 보여 준 것처럼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과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태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고통과 유혹에 앞서 우리를 굳셈의 은혜로 무장시켜 주심을 깨닫습니다. 한편 자신과의 싸움 뒤에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2,21 라합은 “당신들의 말씀대로 그렇게 합시다.” 하고는 그들을 떠나보냈다. 그러고 나서 창문에다 진홍색 줄을 매달아 놓았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예리코를 정탐하는 대목(여호 2장 참조)과 정복하는 이야기(여호 6장 참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라합’입니다. 이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입니다. 성경에서 라합은 혼돈스러운 바다의 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창조 때에 하느님에게 정복된 무無의 상징이며, 이집트를 경멸하기 위해 사용(이사 30,7 참조)되기도 한 이름입니다.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살펴보라고 보낸 정탐꾼들이 바로 이 여인 집에 숨어 있었는데, 아마도 창녀라는 라합의 특별한 직업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나안에서는 매매춘 남녀들을 종교 의식에 동원했기 때문에 신전 창녀에게는 관대하기도 했지만, 일반 창녀들은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업신여김을 받았으며 같은 여성조차 그들을 피하였습니다. 라합의 집이 성벽 바깥쪽에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그가 성 밖이나 도시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 속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가정과 그 모든 것을 파괴하는 속성을 지닙니다. 라합은 여호수아의 정탐꾼들에게 주님의 힘과 능력을 믿는다고 고백하며, 그들의 탈출을 도와주기 전에 가족과 친족을 구해 준다는 맹세를 받아 냅니다. 그들은 라합이 자신들을 내려 보낸 창문에 진홍색 실을 매달아 놓으면, 군대가 그 마을에 진격했을 때 그것을 보고 그의 집인 줄 알아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이 약조한 대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예리코로 진격하여 나팔 소리로 성벽을 무너트렸다는 것은, 그 성읍이 이스라엘 군대의 무력으로 정복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었음을 기억하기 위한 방식인 듯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예리코에 들어가 성읍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불태우고 전멸시켰으나, 진홍색 실이 매달려 있던 집의 사람들은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라합과 그의 가족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에 속하게 되었습니다(여호 6,22-25 참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믿었던 이 여인은 이민족이며 창녀였지만 성경에서 모범 인물로 찬양받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라합을 믿음의 영웅으로 회상하고(히브 11,31 참조), 야고보 서간은 라합을 실천으로 의롭게 된 모델로 소개합니다(야고 2,25 참조). 마태오 복음서는 라합이 유다 지파의 살몬과 결혼하여 다윗의 고조할머니가 되었다고 예수님의 족보에서 확증합니다(마태 1,5; 룻 4,18-22 참조). 라합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살았기에 치욕스런 창녀의 삶에서 위대한 믿음의 어머니이자 여성으로서 존엄과 은총을 지닌 삶으로 들어 올려집니다.

 

[성서와함께, 2011년 2월호, 김연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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