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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인물: 사두가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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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3 조회수4,417 추천수2
[성경 속의 인물] 사두가이파


사두가이파의 어원은 다윗시대의 제사장 ‘차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는 ‘에브야타르’와 함께 당시 제사장 그룹을 이끌고 있던 엘리트였다. 하지만 정통성은 에브야타르 쪽에 있었다. 그는 사무엘을 키워낸 대제사장 ‘엘리’의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차독은 신분상승을 위해 애썼지만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압살롬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가담하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후계자 문제가 표면화 되자 갈라지게 된다. 에브야타르는 넷째 아들 아도니야를 지지했고 차독은 막내아들 솔로몬 편에 섰던 것이다. 차기 왕을 결정짓는 일이었기에 이들의 처신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이후 솔로몬이 즉위하자 두 사람의 운명은 확연히 달라진다. 차독은 대제사장이 되지만 에브야타르는 제사장직에서 추방되었다가 살해되었기 때문이다.(1열왕 2,25)

솔로몬 시대에는 차독 가문이 제관 계급의 요직을 독식했고 차독의 직계가 아니면 대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당연히 후손들은 실권을 장악했고 수세기 동안 예루살렘 성 전의 운영권을 쥐고 있었다. 이들이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원형이다.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가문’이 희랍세력을 몰아내고 유다인의 독립을 쟁취하자 제관 계급도 정치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두가이파 사람들이라 불리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두가이파의 출현이다.

이들은 율법이 기록된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했고 예언서와 지혜서는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갈라지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다. 따라서 사후 세계와 영적 존재를 부정했고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초대교회와 사도들은 그들에게서도 박해를 받았다.(사도 4,1-4)

이들은 종교적 실세였기에 유다 최고법정인 ‘산헤드린’을 좌우했고 헤롯 시대에도 거리를 유지하며 기득권을 지켰다. 로마인들과도 쉽게 적응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오히려 회당을 통해 민중을 장악하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인기가 있었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자 사두가이파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활동무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22일 부활 제5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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