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5: 권위를 가지고 치유하시는 예수님(마르 1,21-28)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성경용어] 하느님의 관대, 오병이어 기적, 사랑, 가해 연중 제18주일 전례성경 공부/묵 ...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2-12-27 | 조회수4,338 | 추천수2 | |
[도란도란 성경이야기] 마르코 복음서 (5) 이번 호에서는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들 중 ‘권위를 가지고 치유하는 예수님’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마르1,21-28)
마르코 복음서는 마태오나 루카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시기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세례자 요한의 활동 이야기로 시작합니다(마르 1,2-8 참조). 예수님에 대한 첫 소개는 세례 받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 앞으로 행할 복음 선포와 관련하여 하느님의 승인을 받으십니다(마르 1,9-11 참조). 그리고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부터 복음 선포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는 말로 예수님의 선교 내용을 요약합니다. 그 뒤로 카파르나움에서의 예수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르코 복음서 1장 29-39절을 일컬어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라고 하는데, 이 부분은 마르코가 몇 가지 단편 자료를 모아서 의도적으로 편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낮에는 회당과 집에서, 저녁에는 문 앞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거나 병자들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시고 이어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들을 쫓아냅니다. 이처럼 마르코는, 우선 예수님의 일과를 서술하면서 장차 그분이 어떻게 활약할 것인지 미리 알려줍니다. 이번 호에서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일으킨 치유 기적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마르 1,21-28)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에는 유다인 가정이 열 세대만 있어도 반드시 회당이 있어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이 사는 곳에는 대부분 회당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의 모든 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면 회당이야말로 설교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새로운 메시지를 이 회당에서 선포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회당에서 가르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한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른 유다인 남자면 누구나 회당장의 요청으로 성경을 읽고 설교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회당에 모였을 때 말하고 해설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지명하는 권한은 예배 준비를 책임지는 회당장에게 있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으로 미루어 볼 때 예수님께서 안식일 예배 때 회당에서 가르쳤다는 사실은 그분이 가르치는 능력으로 이미 명성을 얻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23절부터는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마주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악령은 ‘더러운 영’이라고 불리는데, 성경에서 더러운 것이란 거룩한 것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여기에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더러운’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는 단순히 치유 기적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다는 말은 귄위 있는 행위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시어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 가르침에 몹시 놀랍니다(22절). 그리고 곧이어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심으로써 권위 있는 행위를 보여주셨습니다(25-26절). 이러한 예수님의 권위 있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표징의 의미를 파악하고 당신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어떤 일시적인 도움만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계속 찾아 나섰습니다(1,37 참조). 치유 행위 그 자체가 예수님의 최종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르코에 의하면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분명히 해방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다스리심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원의 표징입니다. 혹시 우리도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보며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를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필요를 위해서 예수님의 기적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참고문헌 : 성서못자리 그룹공부교재 「마르코 복음」, 2010, 기쁜소식, 46-59쪽. [길잡이, 2013년 1월호, 사목국 성서사목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