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마르코 복음서17: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마르 16,14-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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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3-11-09 | 조회수3,562 | 추천수1 | |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 마르코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 (17 · 끝) 내가 주는 특별한 상(마르 16,14-18) 믿음의 삶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야
우리는 16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은 부활하시면서 사람들에게 "평안하냐"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온전한 평화, 충만한 평화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가 나에게 머물고, 나에게 머무는 평화가 이웃에게 전해져야 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개인적 희생의 결과가 하느님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하느님 뜻을 실현한 것으로 예수님의 신비로운 인격을 계시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 생애의 종말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한 시작이었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죄에 물든 낡은 세계를 파괴하고, 당신 뜻에 일치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셨다.
세 여인이 예수님 시신에 바를 향료를 들고 무덤을 향해 급히 갔다.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보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였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마르 16,1).
여인들이 무덤으로 간 때는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이었다. 이때는 희망과 기쁨을 상징적으로 예고한다. 여인들은 무덤에 가면서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나눈다.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내 줄까요?" 무덤에 도착하자 이미 돌이 굴러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마르 16,5).
오른쪽은 행운과 희망을 약속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젊은이가 입고 있는 흰옷은 천상적인 존재임을 나타낸다. 젊은이는 여인들에게 "놀라지 마라.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예고하신 부활이 이미 실현됐음을 볼 수 있다.
부활이라는 말은 많이 쓰는 말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출발점이다. 예수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첫 만남 이후의 체험들이 언어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부활은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희망이다. 부활이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다. 어둠 속에 있는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죽음의 상태로 있는 우리가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부활이다. 그분께서 나에게 개인적인 스승이 되시고, 나를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다.
또한 부활이란, 사랑이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수님은 죽음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죽음을 극복하셨다. 신앙인에게 부활이란 예수님을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 향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분은 아버지께로 올라가신다. 당신 부활로 우리의 참된 집인 아버지 집에 우리가 갈 수 있도록 받아들여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옛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과 쇄신된 삶을 의미한다. 모든 것, 우리 삶의 참된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하느님과 인간이 나눈 사랑 역사의 완성이자 신앙의 완성이다.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는 부활은 목격자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기록한 것을 읽고 있다. 우리는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신앙의 삶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교회는 전례시기를 크게 사순과 부활, 대림과 성탄으로 나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믿음이 생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신앙의 눈으로 읽고 살아간다면 우리 삶 전체가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래아로 초대하신다. 갈릴래아는 예수님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추억의 장소다. 갈릴래아는 예수님이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도 다 용서해주신 곳이기도 하다.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곳이요, 사랑을 나누고 함께 울고 웃던 사랑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다.
우리는 그동안 마르코복음서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기적들을 체험했다. 우리가 마르코복음서를 통해 어떤 예수님을 만났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선포해야 할까. 우리가 믿고 있는 절대자 하느님, 최고의 참된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세상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과 우리 자신에게도 매일 주님을 선포해야 한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10일, 정리=이지혜 기자]
※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다음 호부터는 '신앙의 보물들'을 연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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