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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성경 속 도시9: 그리스도교 사상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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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3-15 조회수3,762 추천수2

[성경 속 도시] (9) 그리스도교 사상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


초기 교회' 칠십인역' 성경의 탄생지



'지중해의 진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다. 사진은 알렉산드리아 고대 유적. 제공=김원창


알렉산드리아는 성경 시대 아주 유명한 도시였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서부 고센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로 로마, 아테네와 함께 당대의 3대 도시로 손꼽히던 큰 도시였다. '로마의 원형극장' '지중해의 진주'라 불린 알렉산드리아는 따뜻한 기후와 밝은 햇살의 혜택을 입고 있는 도시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이 지역의 요충지로 기후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다. 겨울에는 가끔 거센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카이로 다음 가는 이집트 제2의 도시이지만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카이로와 대조적이다.

알렉산드리아는 그 이름처럼 알렉산더 대왕의 등장과 함께 역사가 시작됐다.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후 4년이 지난 기원전 332년에 이집트를 정복하고 이 도시를 건설한 후 수도로 삼았다. 고대에는 헬레니즘 학문과 과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역사적으로 갖가지 변천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집트 제일의 무역항으로서 유럽풍의 분위기를 계속 지니고 있다. 시내는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말해주는 유적과 박물관이 있고, 동서 20㎞의 널찍하고 아름다운 모래밭은 훌륭한 휴양지이기도 해서 국내외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많이 훼손됐다. 당시에는 50만 권의 파피루스 도서를 가진 도서관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 중엽 알렉산드리아 왕궁 도서관장 네메트리우스가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푸스 2세(기원전 285-247)에게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왕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 헬라어에 능통한 학자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번역 작업을 위해 이스라엘 12지파는 각 6명씩 총 72명의 학자를 알렉산드리아에 보낸다. 이들은 72일 동안 독방에 갇힌 채 개별적으로 번역 작업을 한다. 그런데 이들이 번역작업을 마쳤을 때 신기하게도 모든 번역본 내용이 똑같았다고 전해진다.

전통적으로는 현존하는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 중 '칠십인역'은 가장 오래된 번역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칠십인역을 라틴말로 '셉투아진타'(Septuaginta)라고 한다. 라틴어 단어로 '70'이란 숫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처음에는 모세오경만 번역됐다. 이후 약 100년에 걸쳐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옮기는 작업이 진행됐다.

알렉산드리아에는 헬라어를 쓰는 유다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히브리말을 몰랐던 대다수 유다인들은 칠십인역을 통해 그들의 종교적 문화를 보존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에도, 사도 시기에도, 그리고 사도 이후 시기에도 칠십인역은 헬레니즘 문화권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의 성경이었다. 실제로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칠십인역을 그들의 일반적인 성경으로 채택할 정도였다. 또한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초기의 신약 본문을 편집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도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스테파노와 논쟁한 사람 중에 알렉산드리아인이 있었다.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사도 6,9).

사도 바오로의 유명한 친구 아폴로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다. "한편 아폴로라는 어떤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달변가이며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사도 18,24). 또 사도 바오로가 로마로 압송될 때 마지막으로 탄 배가 알렉산드리아호였다. "석 달 뒤에 우리는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났다. 그 배에는 디오스쿠로이의 모상이 새겨져 있었다"(사도 28,11).

이처럼 알렉산드리아는 한때 그리스도교의 중심도시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버렸다. 그러나 이 지역 출신 신학자들이 남긴 그리스도교 사상과 믿음은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평화신문, 2014년 3월 1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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