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심리학이 본 요한복음 (3장 1절-36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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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성경주 | 작성일2014-11-17 | 조회수4,137 | 추천수1 | |
심리학이 보는 요한복음 두 천사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 -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유채, 1615~1620년경, 미술사 박물관, 빈, 오스트리아 말씀 / 니코데모와 이야기하시다 <요한복음 3장 1~21절>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惡)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영성론에서 악한 사람은 1.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보고 악한 사람이라 한다 뜨게 되는 젊은 연예인이 실력도 없는데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무수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주병이다. 뜨게 되는 젊은 연예인이 실력도 없는데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무수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주병이다. 심한 경우는 소모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로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안 챙긴다. 신경을 안 쓰고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것을 철이 없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다고 얘기한다. 이것이 오래 가게 되면 악한 쪽으로 간다. 오로지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도 생각하고 자기도 생각하고 하느님도 생각하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한쪽, 자기 쪽으로만 쏠려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영성론에서는 악의 상태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갈 때까지는 아무도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나에게 먼저 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과 니코데모와의 대화 중 악한 사람은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에 대해 2. 자기기만에 많이 빠져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나(Ego),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한 가지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자기를 알아가는 것을, 사람의 마음의 껍질을 벗는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 돌 때 심리적 윤회에 걸렸다고 한다. 심리적 윤회란 내가 지금 불행한 것은 너 때문이야 하는 상태이다. 내가 왜 이럴까? 주제가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지? 내가 왜 이리 질투하는지, 왜 이리 인색한지를 물어야 자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나중에 내 아이가 이것 때문이야 하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아하! 하는 깨달음이 있다 갑자기 나를 묶고 있던 끈 같은 것이 끊어지는 느낌이 온다. 내 안에 있는 끈을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불편한 상태로 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게 되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했구나 하는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오고 보게 되고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내면 탐색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바깥이 안 보인다 내 안에 들어가는 진입로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힘들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은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가 않아 그렇다. 친한 사람끼리 지내는 것은 비타민을 먹는 것과 같다. 자기애와 자신감이 형성된다. 덜 외롭고 재미있지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나를 내 안으로 초대해주는 것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를 내 안으로 불러주는 초대자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 싫으니까 자꾸 너 때문이야 라고 외치는 것이다.그 네가 사실은 내 안에 있다. 그 사람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불린 자는 많으나 초대받은 자는 적다라는 말씀처럼 초대받은 자가 내 안에 들어가는 자이다. 일단 들어가면 그 안의 세계에 맛을 들일 수 있다. 못 들어가는 사람은 바깥에서 도는 심리적 윤회상태에 빠진다. -내 안에 들어가는 방법이 무엇인가? 내가 불편한 사람이 왜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인도자냐? 사람마음 마다 방어체계(마음의 벽)가 있다. 그 벽이 옹벽으로 닫힌 사람을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닫힌 마음은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열등감은 자기 안에 걸레 같은 것인데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하면 거부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마음의 벽 사이사이에 구멍이 뚫려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벽들이 멀리서 보기에는 옹벽 같아도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있다. 나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이다. 이 건드려준 점이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저 사람이 건드리는 부분이 왜 내가 아플까를 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입구가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 탐색이다. 이때의 감정의 상태는 불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것도 부자청년의 이야기도 네가 남에게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것을 가진 것 다 버리고 오라고 하신 것인데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데 내적인 힘은 안 생기는 것이다. 산 넘어 산다. 자기 안에 있는 미운 사람의 산을 넘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산들을 넘어가야 한다. 갑자기 미운 마음이 풀어질 때 산 정상에 오른 기분이 든다. 이렇게 차례차례 치워가면서 마음이 편안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인생은 힘든 것이라고 스캇 팩 박사도 말했듯이,,,, 3. 지적 노출증이 있다 예수님과 니코데모와의 대화 중 악한 사람은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에 대해 -악(惡)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영성론에서 악한 사람은 1.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보고 악한 사람이라 한다 뜨게 되는 젊은 연예인이 실력도 없는데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무수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주병이다. 심한 경우는 소모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로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안 챙긴다. 신경을 안 쓰고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것을 철이 없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하다고 얘기한다. 이것이 오래 가게 되면 악한 쪽으로 간다. 오로지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도 생각하고 자기도 생각하고 하느님도 생각하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한쪽, 자기 쪽으로만 쏠려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영성론에서는 악의 상태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밥을 먹을 때도 내가 갈 때까지는 아무도 밥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나에게 먼저 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2. 자기기만에 많이 빠져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나(Ego), 내가 알고 있는 나는 한 가지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자기를 알아가는 것을, 사람의 마음의 껍질을 벗는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 돌 때 심리적 윤회에 걸렸다고 한다. 심리적 윤회란 내가 지금 불행한 것은 너 때문이야 하는 상태이다. 내가 왜 이럴까? 주제가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지? 내가 왜 이리 질투하는지, 왜 이리 인색한지를 물어야 자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나중에 내 아이가 이것 때문이야 하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아하! 하는 깨달음이 있다. 갑자기 나를 묶고 있던 끈 같은 것이 끊어지는 느낌이 온다. 내 안에 있는 끈을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불편한 상태로 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게 되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 내가 이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했구나 하는 그런 과정이 계속해서 오고 보게 되고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내면 탐색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바깥이 안 보인다 내 안에 들어가는 진입로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힘들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은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쉽지가 않아 그렇다. 친한 사람끼리 지내는 것은 비타민을 먹는 것과 같다. 자기애와 자신감이 형성된다. 덜 외롭고 재미있지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나를 내 안으로 초대해주는 것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나를 내 안으로 불러주는 초대자이다. 자기 안으로 들어가기 싫으니까 자꾸 너 때문이야 라고 외치는 것이다.그 네가 사실은 내 안에 있다. 그 사람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불린 자는 많으나 초대받은 자는 적다라는 말씀처럼 초대받은 자가 내 안에 들어가는 자이다. 일단 들어가면 그 안의 세계에 맛을 들일 수 있다. 못 들어가는 사람은 바깥에서 도는 심리적 윤회상태에 빠진다. -내 안에 들어가는 방법이 무엇인가? 내가 불편한 사람이 왜 내 안으로 들어가는 인도자냐? 사람마음 마다 방어체계(마음의 벽)가 있다. 그 벽이 옹벽으로 닫힌 사람을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닫힌 마음은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열등감은 자기 안에 걸레 같은 것인데 그것을 끄집어내려고 하면 거부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마음의 벽 사이사이에 구멍이 뚫려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벽들이 멀리서 보기에는 옹벽 같아도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있다. 나의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이다. 이 건드려준 점이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저 사람이 건드리는 부분이 왜 내가 아플까를 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입구가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 탐색이다. 이때의 감정의 상태는 불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신 것도 부자청년의 이야기도 네가 남에게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것을 가진 것 다 버리고 오라고 하신 것인데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데 내적인 힘은 안 생기는 것이다. 산 넘어 산이다. 자기 안에 있는 미운 사람의 산을 넘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산들을 넘어가야 한다. 갑자기 미운 마음이 풀어질 때 산 정상에 오른 기분이 든다. 이렇게 차례차례 치워가면서 마음이 편안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인생은 힘든 것이라고 스캇 팩 박사도 말했듯이,,,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강한 사람들 다른 사람을 소품으로 보는 사람은 매스컴 매체에 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해 과대하게 얘기해서 오버 표현한다고 말한다.
4. 거울보기(Mirroring) 다른 사람이 내게 주는 평가를 거울보기라 한다. 건강한 사람은 나에게 좋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과 좋지 않은 얘기를 해주는 사람의 균형을 갖고 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 자신감이 없어진다. 사람은 칭찬을 들어야 한다. 칭찬다운 칭찬과 적당한 비판을 받았을 때에 심리적 균형을 이룬다고 한다. 지나친 비판도 안 좋지만 반대로 지나친 칭찬만 들으려고 하면 안 좋다. 영성론에 말하는 악한 사람들은 자기가 쓰는 거울이 칭찬용 거울만 쓴다고 한다. 백설 공주의 마녀의 거울을 끼고 사는 사람들을 악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할 때 듣지를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소품으로 만들고자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 것인가? 1)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2세까지는 나르시시즘 기간이다. 자기가 자기를 예뻐하는 기간이다. 이때에 자기애가 형성된다. 이것이 초창기에는 필요하지만 크면서 계속 과보호를 받으면 자기애 적이 되어 성격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 /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요한복음 3,22~30> 2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의 성격과 요한의 영성에 대해- 왜 여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작아지려 하는가, 남자들끼리 모였을 때도 작아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났을 때는 모성애를 느끼거나 딸 같이 귀엽다는 느낌이지만 남자와 남자와의 만남에서는 이런 관계가 아닌 서열의 관계, 계급이 존재한다.그 이유가 원시수렵사회 때에 사냥을 나가면서 맡았던 역할이 집단무의식 안에 잠재되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정을 떠나 상대방과 비교하여 은근히 경쟁을 하였던 것이다. 상대방 남자가 나에게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에 절대로 우정이 존재하지 못한다. 게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열등감이 보이면 공격적으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 가면 작아지는 느낌을 받게 하는 남자가 있다. 그런 남자들이 갖고 있는 것이 힘이고 너그러움이다. 그 사람 앞에 가면 힘이 달린다. 혹은 고수라는 느낌이 들고 따라가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남자끼리도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스승을 찾았다는 고백을 하는 따라가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도 가라고 얘기했 다. 평생에 사람들이 갖는 복 중에 하나가 이런 사람,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사회 안에서 신부나 목사나 스님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찾는 그런 대상을 설정해 놓는 것이다. 역으로서 인위적으로 그런 역할을 설정해놓고 잠정적인 해석을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성직자들이다. 가까이 해서 실망하게 되면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좋다. 요한은 어떤 의미에서 행운아다. 예수님을 만나 작아지는 느낌을 받으며 행복감을 느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요한이 저 사람에게 가라한 것은 요한의 성격, 마음이 건강했기 때문이다. 요한이 가지고 있는 소명(召命, vocation)의식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자기 길을 간다고 하는 것이다. 영성심리학에서는 하느님이 당신 있는 곳으로 부르신다고 한다. 내가 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신론자들이다. 유신론자들은 하느님이 나를 부르셨어 하는 것이다. -소명의식이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각이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소명의식인데 이 소명의식이 자기 안의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주어진 강요된 것에 의해 자기 인생 살이를 하게 되면 깨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소명의식 중의 하나인 *최고의 이상(理想) 깨지기 쉬운 소명 의식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진지하다.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면 사랑이 넘쳐야하는데 오히려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힘들고 몸이 아프기까지 한다. 이유는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너무 이상적인 대상으로 만들려고 이상화 하는 것이다. 용량보다 더 크게 업그레이드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 세속(世俗)이다. 성(聖)스러움과 세속적인 것,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정신분열증이다. 그리고 자기폭력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이렇게 살아야 돼 라고 하면 내 안에 있는 자아(self)가 내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내 인생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꼬이게 한다. 기도도 자기 폭력적으로 해서 안 밖으로 멍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병적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소리를 들으려 하라고 피정에서도 말한다 . 병적인 소명의식은 건강한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도할 때도 하느님 보고 얘기하지 말고 자기 자신 보고 얘기하라 한다 사람이 갖는 관계, 하느님 과 나, 너와 나, 나와 나에서 네가 나에게 요구하면 내가 나에게 강요하게 된다. 이런 경우 기도하며 소명의식(하느님의 말씀)이라 느끼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이 내 머리 속에 입력 시켜주신 것이다. 내가 하느님과 너에게는 관심을 갖으며 말 관심을 가져야할 내 자신에게는 무관심하다. 내가 바깥쪽만 챙기고 내 자신을 안 챙기면 자아가 내 인생을 꼬이게 한다. 하느님께 기도해도 안 된다. 삐진 내 자신을 풀어줘야 한다. 나와 나의 관계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한 것이다. 요한처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타인을 인정하는 것이 감정 표출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무의식 안에 있는 마음이다. 내 마음의 감정 상태에 어떠냐에 따라 내 마음이 편하기도 불편하기도 한 것이다. *엔트로피(무질서의 상태)와 반 엔트로피(평정된 상태)
감정적으로 편안한 상태일 때 가장 집중력이 좋다. 마음이 편안해야 일에 대한 집중력이 생긴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일이 안 된다. 예수님께서 화해를 하고 난 후에 제단에 제물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가 화해를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내가 걸려든다. 내가 불편하면 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자분들 중에 불편한 감정을 죄악시하고 없애려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 자체가 불편할 뿐이지 감정 자체를 죄악시 할 필요는 없다. 불편한 감정들의 상당 부분도 없어서는 안 되는 영양소이다. 내 안의 불편한 감정 중에 감정을 해소하는 효과적 방법이 우는 것이다.울고 싶어 우는 것이 건강한 눈물이다.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눈물을 보이는 것은 건강한 것이다. 그런 눈물은 흘릴수록 좋다. 건강한 눈물을 많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비정상적 행위를 하게 된다. 대개 과거에 내가 상실한 것들 한 맺힌 것들 때문에 운다. 한이란 욕구 해소가 안 된 것이다. 실컷 울어주어야 내가 과거에서 나올 수 있다. 마음이 과거에서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면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된다. 과거 해소가 안 되어 징징 거리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네가 힘들었구나 하고 공감만 해주어도 많은 부분들이 해소가 된다. 분노는 자존감을 표현하기 위해 일정량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되면 자기가 감당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에 화는 풀어야 한다. 화풀이 한다는 것에 대해 습관이 된다는 이의를 제기하는 심리학자는 초점을 잘못 맞춰서 그런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화가 아니라 말(대화, 對話)이다.화를 안고 살면 화병이 걸리기 때문에 화풀이 할 때 초점이 화가 아니라 대용으로 말, 대화를 하는 것이다. 대화가 거래이다. 계속 대화하다 보면 감정이 줄어간다. 완력으로 하는 것이 화난, 강한 대화이다. 대화하라고 강하게 얘기하는 것이 화인 것이다. 그 래야 감정적 해소가 되어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는 그런 감정표출을 잘한 사람이다. 성격적으로 다혈질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질투감정이 없었던 것이다. 말씀 / 하늘에서 오시는 분 <요한복음 3,31~36 >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성경의 말씀 중에 단정적인 부분을 해석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왜 하느님을 믿지 않을까요? 에 대해서- *소명의식 신부가 일 자체가 좋아서 하면 소명이지만 일 자체를 해서 뭐가 생기느냐, 아니냐를 생각하게 되면 직업이 된다. 그런 것들이 자꾸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은 왜 안 믿는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을 거부한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누구나 영적인 존재이다. 아이들이 귀신을 보는 이유는 영적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심리적 에너지가 자기가 관심 있는 곳으로 다 쏠린다. 생리적 욕구, 정서적 욕구, 영적 욕구 중 아이들은 1, 2차 적 욕구가 해결되기 때문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영적 욕구와 연결되는 것이 쉽다. 먹고 사느라 바빠 거기까지 못 가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어떤 힘이 강한 존재에 의해 끌려가는 구나 하는 자각을 갖고 가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 생리적, 정서적 욕구가 채워진 상태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어른들인 나를 예뻐 해주어 부모의 따뜻함을 알고 지낸 사람들은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늘 같이 있는 사람이다.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은 관심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이 기도해주고 관심 가져주면 무의식적으로 안다. 차가운 관계 안에서 받은 것 없이 자란 아이들은 영적 욕구 쪽으로 힘이 가질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밑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너무 급박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상처가 있어서 그런 것이 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도 건강한 신앙 생활을 못한다. 심리학자 Milton Erickson이 말하기를 신앙 생활을 하면서 기적이 일어나는 곳만 찾아가는 사람들, 너무 지나치게 그쪽 것만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상처받기 쉬운 아이, 가난한 아이, 자기 경계가 없는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비논리적이고, 미개하고, 마술적인 것들을 믿는다고 한다 신앙생활은 자기 자신을 보고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힘들다. 기적은 환각적인 상태에 머물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자기를 챙기게 되어있다. 단식을 하면 몸이 지방을 축척하게 되는 것과 같다.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내가 어렸을 때 궁핍하게 자랐을 경우 할 수 없이 쪼잔해지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그렇게 안하면 나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있는 대로 끌어다가 갔다 놓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외롭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여유로움이 없으면 이기적이고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 뜻에 따라 살기가 힘들다. 거기에다 하느님이 천벌을 내리시면 너무 한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알기 힘들어하는 사람중에 친밀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지만 이 욕구가 지나치게 되면 친밀감 장애가 형성된다. *친밀감 장애 1)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를 왕따 하는 단체를 못 떠나는 것이다. 해코지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못 떠나는 것이 친밀감 장애이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못 한다. 건강한 사람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고 나에게 잘못해주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 그런데 잘해주는 사람한테는 겁이 나서 가까이 못가고 잘 못해주는 사람에게는 가서 구박을 받는 것이 친밀감 장애이다. 이것은 심리적 장애이다. 2)아예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 휩쓸려 들어갔다가 내 생활이 깨질까봐 그런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위의 두 가지의 양극단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산다. 지나치게 한쪽에 편중하게 되면 기도생활도 신앙생활도 못하는 것이다. 강의:도반홍성남신부님(작성자 박용귀님) 편집: 불광동성당 미디어팀 그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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