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리] 이스라엘 이야기: 카파르나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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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5-02-10 | 조회수4,073 | 추천수1 | |
[이스라엘 이야기] 카파르나움 수많은 기적과 말씀에도 ‘깨달음’ 없었던 곳 - 카파르나움 마을의 흔적(앞)과 베드로 집터 성당(뒤).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카파르나움 유적지에는 Town of Jesus라 적힌 안내판이 붙어 있다. 1905년 전에는 카파르나움이 흙더미에 묻혀 있었으나, 1985년까지 이어진 프란치스칸들의 발굴 작업으로 그 역사적인 현장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님의 유년기 고향은 나자렛이지만, 공생활을 시작하신 후에는 카파르나움이 주요 거점이었다. 그래서 카파르나움은 성경에 ‘예수님의 고을’로 소개된다(마태 4,13 9,1). 다만, 새들과 여우는 보금자리가 있으나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둘 곳이 없다 하신 것으로 보아(마태 8,20) 따로 정해진 거처는 없었고, 베드로와 함께 지내신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초기 신자들이 베드로의 집을 순례하고, 그곳에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데서도 추정할 수 있다.
해변길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잇는 국제 도로였으며, 구약에는 ‘바다로 가는 길’로 나온다(이사 8,23). 그래서 카파르나움에는 이래저래 세금 거두는 세리들이 많았던 듯하고, 그들 가운데 마태오가 예수님의 제자로 불림을 받았다(마태 9,9). 곧, ‘바다로 가는 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백성들이 카파르나움을 통해 ‘큰 빛’을 보게 되었다(이사 8,23 마태 4,13-17). 그리고 이 해변길 덕분에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말씀이 다른 지방으로도 퍼져나갔을 듯하다.
카파르나움 유적지에서 발굴된 베드로의 집은 최초의 ‘가정 성당’(domus ecclesia)이었으므로, 유다 · 그리스도교적 상징들이 많이 새겨져 있었다. 로마 시대에 탄압받던 신자들이 이곳에 모여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집 자체는 그리스 · 헬라 시대에 지어진 것이었기에, 베드로가 카파르나움에 정착하면서 인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비잔틴 로마 시대에는 예수님이 거처하신 방을 중심으로 팔각형의 성당을 지었고, 현재는 그 위에 배 모양의 베드로 기념 성당을 새로 봉헌했다. 카파르나움 중심부에는 회당이 있는데, 예수님이 설교하신 회당 바로 위쪽으로 서기 4~5세기의 회당이 다시 지어졌다. 여염 사람들이 거주한 검고 좁은 집들에 비해 하얀 돌로 웅장하게 봉헌된 이 회당은, 당시 주민들이 회당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 잘 보여준다. 갈릴래아 호수에는 예부터 지각 활동이 활발하여 현무암이 많지만, 회당만큼은 먼 곳에서 가져온 흰 석회암으로 아름답게 지었던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빵’ 말씀을 전해주셨다(요한 6,22-59).
[가톨릭신문, 2015년 2월 8일, 김명숙(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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