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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24: 트코아의 목양업자(아모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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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01 조회수4,116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4) “트코아의 목양업자”(아모 1,1)


남들이 태평성대라 할 때 멸망을 선포



브라질 출신의 조각가 알레이자디뉴(Aleijadinho, 1738~1814)의 아모스 상.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에 대해서 열왕기에서 전체적으로 훑어보기는 했지만, 예언서들을 읽기 위해서는 각 시대의 상황을 조금씩 더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원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인 아모스와 호세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국제 정세부터 짚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예언 운동이 먼저 발전한 것은 북왕국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북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멸망하기 때문에 북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는 아모스와 호세아뿐입니다. 두 예언자가 활동한 시대도 비슷합니다. 기원전 8세기입니다. 이스라엘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늘 시달렸기에,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려면 가장 먼저 그 시대의 강대국이 어느 나라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원전 8세기의 강대국은 아시리아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멸망합니다. 당분간은 매번 아시리아 이야기를 듣게 되실 것입니다.

아모스와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 아시리아는 조금씩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사이에는 시리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시리아이지요.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자주 국경 분쟁을 겪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시리아의 세력이 커지니, 시리아는 아시리아를 막기에 바빠 이스라엘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떻겠습니까? 네, 옆에서 괴롭히던 시리아가 잠잠하니 편안합니다.

아모스는 예로보암 2세 때에 활동합니다. 예로보암 2세는 기원전 787년부터 747년까지, 장장 40년간 왕위에 있었습니다. 시리아의 침입도 없고 임금도 40년이나 건재하고 있으니 태평성대처럼 보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먼저 국제적으로 보면, 시리아는 문 앞의 작은 적입니다. 지금 시리아가 잠잠하다고 해서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아직은 아시리아의 힘이 이스라엘까지 미치지 않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시리아에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리아에게 멸망할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예로보암 2세는 혼자서 40년간 통치했지만 평온한 시대는 그때까지였습니다. 예로보암 2세가 세상을 떠난 것이 기원전 747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이 기원전 722년입니다. 멸망이 불과 25년 남았던 것입니다. 그 25년 사이에 여섯 명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 임금들 대부분이 폐위되거나 살해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원인도 아시리아입니다. 아시리아의 영향력이 이스라엘에 미치게 될 때 정치권은 친아시리아 세력과 반아시리아 세력으로 갈리고, 그들 사이에서 임금들이 끊임없이 교체됩니다.

또한, 외적의 침입이 없는 시대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동의 적’이 없는 시대, 이스라엘 안에서 힘 있는 자들이 가난한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합니다. 가난한 백성에게는 외적의 침략만큼이나 무서운 상황이 되지요.

이러한 시대에 “트코아의 목양업자”(아모 1,1) 아모스가 목소리를 높입니다. 트코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니라 남왕국 유다의 고장입니다. 더구나 목양업자라니, 예언과는 아무 관련이 없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은 그를 예언자로 부르시고는 고향을 떠나 북왕국에 가서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갑자기 그의 삶을 낚아채신 하느님의 힘에 휩싸여 북왕국에 가서 그들이 듣기 싫어할 소리를 합니다. 멸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고 있을 때, 부자들이 상아로 된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송아지를 잡아먹으며(아모 6,4) 사마리아의 여인들은 술을 퍼마실 때(4,1), 아모스는 “처녀 이스라엘이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구나”(5,2)라고 애가를 부릅니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속은 모조리 썩어 있는 이스라엘에게 아모스는 죽음을 선고합니다.

남왕국 사람이 와서는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북왕국의 임금이며 사제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사제 아마츠야는 예로보암 2세에게,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는 참아낼 수가 없습니다”(7,9)라고 전하며 그를 쫓아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떠나갈 아모스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합니다(3─6장). 무엇보다도 그는 사회 불의를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이스라엘이 빚돈을 빌미로 무죄한 이를 팔아넘기고 가난한 이들의 살길을 막고 있기에, 억눌린 이들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할 재판마저 불의하게 돌아가고 하느님께 제사는 바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기에 이스라엘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갈 기회도 이미 모두 놓쳤습니다. 남은 것은 멸망뿐입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이스라엘은 그 멸망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왕국의 멸망으로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님을, 멸망을 겪은 후에 하느님께서 다시 손길을 펼치시어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아모스 시대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어도 후대의 사람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누군가가 아모스서 마지막 부분의 구원 선포를 덧붙이면서, 이스라엘이 겪어야 했던 멸망이 구원에 이르는 한 단계였음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31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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