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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 이스라엘 이야기: 겨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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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5 조회수6,484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겨자씨


그리스도 왕국 이룰 ‘복음의 씨앗’으로 비유



갈릴래아 호숫가 언덕에 핀 겨자 꽃들.


아니, 이스라엘에도 유채 꽃이 자라요?

겨자 꽃이 보일 때마다 터지는 감탄사다. 특히 갈릴래아 호수는 봄마다 겨자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현무암도 많아서, 제주도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유채 같은 노란 꽃이 겨자라고 알게 되면, 겨자나무가 어쩜 저렇게 작냐고 또 한 번 감탄사가 터진다. 성경에서 겨자씨 비유를 읽을 때, 올리브나 소나무처럼 키 큰 나무들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갓 종류다. 맛도 쌉싸름하니, 갓 김치로 만들어 먹기 좋다. 겨자는 일 년 초로서,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꽃을 피운다. 크기는 무릎 높이부터 2미터까지 자라고, 무씨 크기의 씨앗을 송알송알 맺는다. 참 사소해 보이는 식물이지만, 성경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에게는 큰 관심거리다. 성지에서 누리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서 본 내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셨고(마태 13,31-32), 또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도 옮기리라 하셨다(마태 17,20). 그런데 겨자가 이렇게 지천에 피니, 예수님은 평범한 일상에도 배울 것이 있음을 깨우쳐 주신 셈이다. 그뿐인가? 밀알의 비유(요한 12,24), 가라지의 비유(마태 13,23-30), 그물의 비유(47-50절) 등 모두 갈릴래아 호수에서 흔히 접하는 매우 예사로운 소재다.

 

다만, 겨자나무에 새들이 깃들인다는 비유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마르 4,32 루카 13,19). 나무라 부르기엔, 겨자가 너무 작다. 하지만, 우리가 밀이나 쌀을 어떻게 부르는지 생각해 보자. 밀 풀, 쌀 풀 하지 않고, ‘밀 나무’, ‘쌀 나무’라 한다. 그렇다면, 겨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구약성경에서 나무는 ‘왕조’나 ‘왕국’의 상징이었다. 에제키엘은(17,3.22-23 31장) 유다 왕실과 이집트 왕국을 향백나무에 견주었다. 이사야와(11,1) 예레미야는(23,5) 나무 모티프로 미래에 세워질 다윗 후손을 예언했다.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 새들이 깃든다는 비유도 구약성경에 바탕을 둔 것이다. 시편은(104,16-17) 주님이 심으신 향백나무에 새들이 깃들고 둥지를 튼다는 묘사로, 온 피조물들에게 닿는 하느님 은총을 찬양한다. 에제키엘은(31,6) 향백나무에 새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짐승들이 새끼를 낳는다는 비유로, 파라오의 권세를 표현했다. 다니엘서는(4,9)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큰 나무로 묘사한다. 그리고 온갖 새와 짐승이 그 나무에 깃듦으로써, 네부카드네자르의 권력을 암시한다. 곧, 나무에 깃드는 새’는 번영을 상징하는 대표 모티프였던 셈이다. 물론 향백나무에 비하면, 겨자는 나무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예수님은 겨자를 나무로 확장하고, 하늘나라 상징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나무는 향백나무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하늘나라를 찾을 수 있다. 겨자밭에 깃드는 새는 예수님에게 모여오는 세상 민족들을 상징한다.

겨자씨(무씨 정도의 크기다).

 

 

겨자씨도 실제로는 가장 작은 씨앗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는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의 대명사처럼 속담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고대 유다 법전 미쉬나는 정원에 겨자씨를 뿌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순식간에 자라 공간을 잠식해 버리므로, 다른 식물들이 맥을 못 추는 까닭이다. 곧, 씨앗 크기에 비해 번식력이 대단해서, 작은 씨의 대명사가 된 듯하다. 또한 이런 특성 때문에 겨자는 큰 나무에 비유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무는 위로 자라지만, 겨자는 옆으로 제 존재를 퍼뜨린다. 예수님이 뿌리신 말씀의 씨앗도 만민을 향해 수평으로 번성하여, 온 세상을 채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거대한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간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 천국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주변에 널린 겨자처럼 매일매일은 평범하다. 하지만, 그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면 내게는 천국이 된다. 겨자가 큰 들판을 메워가듯 내 인생에 천국들이 쌓이면, 마침내 하늘나라처럼 풍성해질 것이다. 게다가 새들까지 보듬는 너그러움과 풍요로움은, 다른 이들과 천국을 나눌 수 있는 이타적 아름다움도 비유해 주는 듯하다. 이런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볼 때, 겨자 꽃은 정말 하늘나라를 닮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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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14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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