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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이스라엘 이야기: 압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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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7-18 조회수3,870 추천수1

[이스라엘 이야기] 압살롬


다윗의 셋째 아들… 성경 속 ‘반역’ 대명사



키드론 골짜기에 세워진 압살롬 기념비.


홍길동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서자를 떠올리듯, 압살롬은 성경에서 반역의 대명사다. 압살롬은 히브리어로 ‘아브샬롬’이라 하며, ‘평화의 아버지’ 뜻을 가졌다. 왕위를 찬탈하고 아버지 후궁들을 취한 패륜아에게 참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압살롬은 성경에서도 꽤 인상적인 인물인데, 예루살렘에도 흔적을 남겨 이름이 지금껏 회자된다. 살아생전 자신을 기억해줄 아들이 없음을 한탄하며, 임금의 골짜기에 기념비를 세웠기 때문이다(2사무 18,18). 임금의 골짜기는 올리브 산 아래 남북으로 뻗은 키드론 골짜기를 가리킨다. 사실 압살롬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으나(2사무 14,27), 이름도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찍 세상을 떠난 듯하다. 키드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압살롬 기념비가 나온다. 서기 1세기경 재건된 것이니 압살롬이 세운 그 비석으로 볼 수는 없으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물론 명예롭게 남은 것은 아니다. 중세 때까지 유다인들은 말 안 듣는 아들을 이 기념비로 데리고 와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새겨 주고 훈육했다고 한다.

압살롬은, 다윗이 헤브론 군주로 다스리던 시기에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2사무 3,3). 어머니는 그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 마아카였다. 그수르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었는데, 훗날 예수님이 활동하신 삼대 마을 가운데 벳사이다와 위치적으로 동일하다. 압살롬이 친누이 타마르 사건으로 분격해 맏형 암논을 죽이고 도망간 곳도 그수르였다(2사무 13,37). 예루살렘에서 그수르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 반가량 소요된다.

아버지의 용서를 받고 돌아온 뒤, 압살롬은 왕위 계승 서열 선두로 올라섰던 것 같다. 형 킬압은(2사무 3,3 1역대 3,1에는 다니엘로 나온다), 존재가 미미해 어릴 때 죽었거나 그리 강한 왕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압살롬은 인물이 수려하고 언변이 유창해서(2사무 14,25 15,2-6) 인기가 높았다. 그런 그가 왜 반역을 택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암논 살해 사건이 일단 이롭게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밧세바가 낳은 솔로몬도 위협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압살롬은 제 고향이자 지지 기반인 헤브론부터 물밑작업을 시작한다(2사무 15,7-12). 급기야 그가 세력을 넓혀 쿠테타에 성공하자 다윗은 요르단 건너편으로 피신했으나(2사무 17,24), 측근 후사이를 남겨 아들을 제압하는 돌파구를 마련한다. 바로 이 후사이가, 압살롬이 지친 다윗을 곧바로 추격하지 않도록 교묘하게 조언했던 것이다(2사무 17,1-14).

오른쪽 끝의 올리브 산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키드론 골짜기. 점선 건물이 압살롬 기념비.

 

 

압살롬은 궁전을 차지하자마자 옥상에 텐트를 치고, 아버지의 여인들을 취한다(2사무 16,21-22). 왕궁 침소를 점령하는 것은 대표적인 왕위 찬탈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 후궁들은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뒤에도 따로 갇혀 지내야 했는데(2사무 20,3),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다.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갔다 온 환향녀들이 멸시를 당했던 것처럼.

성경은 압살롬이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였다고 전한다. 고대에는 왕족이 갖추어야 할 요건에 아름다운 용모가 포함되었다(‘다윗’, 1사무 16,12 ‘임금 예찬’, 시편 45,2-3 참조). 압살롬은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수려했던 모양이다. 이스라엘에 그만큼 잘생기고 칭찬받는 이가 없었다 하니(2사무 14,25), 백성들이 얼마나 매료돼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머리카락은 한번 자를 때마다 왕궁 저울로 이백 세켈이나 나갔다(2사무 14,26). 다윗도 압살롬을 깊이 사랑하여, 그가 암논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조차 몹시 그리워했다(2사무 13,39). 하지만,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 미모로 일어선 압살롬은 바로 그 미모 때문에 몰락한다. 노새를 타고 향엽나무 밑을 지나다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감겨 매달리게 되었던 것이다(2사무18,9). 다윗의 장군 요압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것으로 왕자의 난은 종결되나, 비보를 접한 다윗은 아들을 부르며 통곡한다(2사무 19,1). 우리야의 아내를 부정하게 가로챈 죄로 밧세바의 첫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2사무 12,18). 그런데 이제는 압살롬마저 형제를 해친 살인자에, 아버지를 거스른 반역자로 죽었다. 곧, 다윗은 제 죄가 아들에게 돌아왔음을 깨닫고 그 비참함에 사무쳐, 차라리 자기가 죽어야 했다며 통곡했던 것 같다. 압살롬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비석은 오늘도 오랜 증인처럼 같은 곳에 서 있다.

 

* 김명숙(소피아) -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7월 19일,
김명숙(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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