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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47: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룻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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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11-29 조회수3,592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47)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룻 1,16)


구약 시대에 이런 효부가 있었네!



- 나오미는 사별한 두 며느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 중 룻만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효를 다한다. 피터 라스트 작, '룻과 나오미'.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뜻대로 했더라면, 룻은 집안에서 쫓겨났을 것이고 나오미는 혼자 방황하며 가난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고 다윗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룻이 모압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모압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암몬족과 모압족은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고, 그들의 자손들은 십 대손까지도 결코 주님의 회중에 들 수 없다”(신명 23,4). 더구나 배타적이었던 에즈라-느헤미야 시대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룻의 시대. 룻기의 첫머리에서는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룻 1,1) 나오미와 룻이 살았다고 말하고, 룻기의 마지막은 룻이 오벳을 낳은 다음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는 말로 끝납니다(룻 4,21). 그래서 어떤 이들은 룻기가 다윗 시대에 작성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룻기가, 다윗의 조상 가운데 모압 여자가 있다는 것에 대해 언짢아하는 사람들에게 그 조상 룻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룻기는 다윗의 왕권을 정당화하는 책이 되겠지요.

그러나 근래에는, 룻기라는 책이 작성된 시기는 그보다 훨씬 늦은 시기인 유배에서 돌아온 후라고 봅니다. 이방인을 배척하던 에즈라-느헤미야 시대가 바로 룻기가 생겨난 시대이고, 그 시기에 룻기의 저자는 500년도 더 되었을 룻이라는 인물을 들고 나와 그 시대의 사고방식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민족의 정체성과 율법에 대한 충실성만을 고수하던 시대에,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맞서 룻이 들고 나온 것은 무엇일까요?

나오미는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모압 땅에 가서 살지만, 그곳에서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모압 여인들이었던 두 며느리 오르파와 룻이었습니다. 나오미는 그들에게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오미는 모압인들이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만일 룻기가 이방인들에게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가르치려 했다면, 나오미는 룻에게 “네 동서는 제 겨레와 신들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가거라”(룻 1,15)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오직 그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는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미래를 보장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돌보아 줄 친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모압의 친족들에게 돌아간 오르파를 탓하지도 않습니다. 룻기의 저자도 오르파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저 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룻의 행동은, 정상을 벗어난 일이고 당연하지 않은 일인 셈입니다. 규칙을 따른 행동이 아니라 그 선을 넘어선 행동입니다.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모압 여자 룻을 쳐다볼 것 같습니다. 룻의 이러한 행동을 보아즈는 “효성”이라고 부릅니다(룻 3,10).

여기서 ‘효성’으로 번역된 단어가 히브리어 ‘헤셋’입니다. 룻기 안에서도 여러 번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한 단어로 옮기기가 어려워서, 많은 경우 ‘자애’라고 번역됩니다. 룻기 1장 8절에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너희가 죽은 남편들과 나에게 해준 것처럼 주님께서 너희에게 자애를 베푸시기를 빈다”고 말합니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이후에 전개되는 룻기의 모든 사건이, 자애를 실천했던 룻에게 하느님께서 자애를 베푸시어 이루어지는 일들임을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룻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자애는 보아즈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갔는데 마침 그 밭이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즈의 밭입니다. ‘마침’, 룻기에서 중요한 단어입니다. 룻기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절묘한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의미는 분명합니다. 그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 하느님의 자애로 룻은 보아즈를 만납니다. 보아즈는 룻이 행한 ‘효성’(헤셋)을 보고, 룻과 나오미에게 넘치도록 ‘자애’(헤셋)를 베풀어 줍니다.

룻기에서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애와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자애가 중첩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하느님께서 자애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원하지만, 실제로 룻이 보아즈를 만나도록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나오미입니다. 보아즈도 룻에게 하느님께서 당신 날개 아래로 찾아온 룻을 돌보아 주시기를 기원하지만(룻 3,12), 실제로 룻에게 옷자락을 덮어 주며 룻을 품어주는 것은 보아즈입니다(룻 3,9. 히브리어에서 ‘날개’와 ‘옷자락’은 같은 단어입니다).

룻과 나오미와 보아즈, 이들은 모두 정해진 규정을 지키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 이상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룻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홀로 남은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결국 집안의 대를 이어 주었고, 나오미는 룻에게 살길을 찾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보아즈는 엘리멜렉을 위하여 그 집안을 지켜 주었고 나오미와 룻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오벳이 태어나고, 오벳에게서 이사이가, 이사이에게서 다윗이 태어납니다. 룻기가 작성된 시대가 에즈라-느헤미야 시대라면, 이미 다윗의 왕권을 정당화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최고의 권위입니다. 오히려, 룻에게서 다윗의 조상이 태어났다는 것은 룻의 행위가 정당한 것이었음을 다윗의 권위로 보증해 줍니다. 에즈라-느헤미야 위에 다윗이 있습니다. 룻기는, 율법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시도보다 이방인이면서도 가족을 사랑했던 룻의 자애를 더 높이 평가합니다. 그 자애가 사람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평화신문, 2015년 11월 29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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