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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임마누엘 예언자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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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2-08 조회수4,947 추천수1

[성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 ‘임마누엘’ 예언자 이사야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

아하즈가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바로 그 시간에 이사야는 유다 왕실과 선택된 민족에게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을 예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사실 이사야가 선포한 이 표징은 무슨 비현실적이며 초월적 사건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이고도 현실적인 현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젊은 여인은 누구?

예언자가 선포한 ‘젊은 여인’의 히브리말 뜻은 단순히 ‘임신할 만큼 성숙한 여인’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정녀’일 수도 있고 혼인한 여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훗날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칠십인역 그리스말 성서가 ‘동정녀’라고 번역해놓은 데서 ‘동정녀 잉태’라는 그리스도교 전통이 생겨납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이 ‘동정녀 잉태’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젊은 여인과 임마누엘?

젊은 여인이 누구이든 여기서 중요한 것는 비록 아하즈 임금은 하느님을 직접 간접으로 거부하며 그분께 등을 돌린다 해도 이사야는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를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구약에 나오는 숱한 인물들 가운데 ‘임마누엘’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임마누엘 이름의 의미와 상징성을 더욱 돋보이게 해줍니다. 임마누엘은 단지 상징성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사야와 아하즈?

유다 임금 아하즈를 비롯하여 그분 백성이, 곧 인간이 그분께 등을 돌렸다고 해도 주 하느님께서는 결코 인간을 버리고 떠나지 않으신다고 이사야는 선언합니다. 결국에는 적군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주님을 저버린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될 때에도 이사야는 외칩니다. “아, 임마누엘!”(이사 8,8)


임마누엘과 메시아사상?

제1이사야의 메시아사상은 다윗왕국 중심의 메시아사상입니다. 다윗왕조는 남부유다와 북부이스라엘의 중심이며, 모든 민족들이 모여올 세상의 중심 예루살렘에 우뚝 서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이사 2,1-4)


다윗과 예루살렘은?

다윗(의 후손)과 예루살렘이 인류구원을 위한 세상 중심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제1이사야의 메시아사상은 제2, 제3이사야서에서도 지속적으로 그 중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사상이 아주 잘 반영된 내용을 우리는 특히 루카복음서 안에서 발견합니다.

루카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출생지 베들레헴에서 나셨음을 강조합니다. 아울러 루카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긴 복음 선포 여정을 전합니다(루카 9,51-19,27 참조).


루카와 예루살렘은?

이와 같이 루카는 예루살렘을 중심에 두고 복음서를 씁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이 도읍으로 정하여 오랫동안 다스리다가 하느님의 성전을 짓기로 계획한 바로 그 도성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음을 강조합니다.

루카복음서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실망하여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들까지도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도록 이끌어주십니다(루카 24,13-35 참조).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로 그곳 예루살렘 안에 머물며 기도하도록 당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7-49)


루카는 두 번째 책에서?

루카는 두 번째 책 사도행전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할 성령의 힘을 받은 곳도 예루살렘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그분의 지상여정, 하느님 인류구원 위업이 예루살렘에서 완성되었다면, 이제 이 복음은 바로 그곳 -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 끝까지 다다라야 함을 강조합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어받을 복음 선포의 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임을 강조하십니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아하즈가 강대국 아시리아에 거는 기대는?

유다임금 아하즈는 친아시리아 정책을 펼칩니다. 그는 사절단을 꾸려 왕궁에 보관하고 있던 금과 은 등 보물을 아시리아 임금에게 선사하도록 합니다. 사신들은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에게 다음과 같이 아하즈의 전언을 고합니다. “저는 임금님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시어, 저를 공격하고 있는 아람 임금과 이스라엘 임금의 손아귀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기원전 734년경) 유다 임금 아하즈의 친아시리아 정책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아시리아의 확장정책은?

그런 와중에 아시리아의 무력시위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확장일로를 걷고 있던 아시리아는 이스라엘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3년 간 포위하고 있다가 기원전 721년에 이스라엘왕국 전체를 멸망시킵니다.

아시리아를 둘러싼 군소왕국들 곧 아람왕국, 이스라엘왕국, 유다왕국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를 치고자 당나라와 연합[나당연합]했듯이 그런 상황을 연상하게 해줍니다.

북부 이스라엘왕국과 남부 유다왕국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갈라진 채 서로 불목하며 제 갈 길을 갔습니다. 이스라엘왕국은 북쪽에 위치한 강대국 아시리아에게 맞서려 안간힘을 다했던 반면, 유다왕국은 오히려 아시리아에 아부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끌어다 같은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왕국을 공격하도록 유도했으니까요. 결국 북부 이스라엘왕국은 기원전 721년에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자못 크다고 봅니다. 남부 유다왕국 아하즈가 바랐던 대로, 북부 이스라엘왕국이 멸망하게 되어 남부 유다왕국이 덕을 보았습니까? 북은 쓰러지고 남은 건실하게 견디어내게 됩니까?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북부 이스라엘왕국이 멸망한지 134여 년이 되던 기원전 587년에 신바빌론 제국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남부 유다왕국도 철저히 파괴되었음을! 남북이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인데 한 민족이 갈라져 불목하다 보니 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2월호, 글 신교선 가브리엘 신부(인천교구 작전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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