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깁보르, 용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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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6-10-10 | 조회수8,077 | 추천수1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깁보르, 용사 “용사”이신 하느님, 가련한 이를 위해 격전 치르다
- 깁보르. ‘강하다’를 의미한다. 붉은 색의 베트 안에 있는 붉은 점(다게쉬)은 베트를 두 번 썼음을 표시한다. 그래서 우리말로 ‘기보르’가 아니라 ‘깁보르’로 옮겨야 한다. 라틴문자로는 bb로 겹쳐 써야 정확하다.
‘깁보르’는 ‘강하다’는 뜻의 형용사고, ‘그부라’는 ‘강함’ 또는 ‘힘’을 의미하는 명사다. 깁보르와 그부라를 보며, 진정한 힘과 용기를 성찰해 보자.
자연의 강함
독자들은 ‘강함’이라면 무엇이 떠오르실까? 우선 힘센 동물들이 생각날 것이다. 구약성경도 힘센 말의 깁보르(“준마의 힘” 시편 147,10)라든지, 신화적 짐승인 레비아탄의 그부라(“그 힘” 욥기 41,4)를 언급한다. 사자를 “짐승 가운데 용사”(잠언 30,30)라고 한 구절은 ‘짐승 가운데 가장 힘이 세다’로 직역할 수 있다.
판관기 5장에 등장하는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 가운데 하나다. 이 노래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4은 ‘그부라의 해’처럼 되게 하여 주십시오”(판관 5,31)라는 청원으로 끝난다. ‘그부라의 해’를 직역하면 ‘힘 안의 해’ 또는 ‘힘센 해’일 것이다.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의 힘을 묘사한 말인데, 우리말 성경은 ‘힘차게 떠오르는 해’라고 옮겼다. 히브리어의 ‘힘’의 느낌도 산 듯 하고 우리말의 느낌도 좋아서, 멋진 번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사, 용사
깁보르는 전쟁의 맥락에서 가장 자주 나온다. 대개 “전사”(이사 21,17; 요엘 2,7 등) 또는 “용사”(2사무 20,7; 23,9; 예레 26,21; 48,41; 요엘 4,9 등)로 옮긴다. 한쪽 편을 들어 맹렬히 싸우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소년 다윗은 필리스티아의 장수를 쓰러뜨리고 일약 구원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쓰러뜨린 적장 골리앗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는 “그들의 깁보르”(“저희 용사” 1사무 17,51-52)였다.
- 그부라. ‘힘’ 또는 ‘강함’을 뜻한다. 분홍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여성형 어미인데, 여성형 추상명사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붉은 색의 베트 안에 붉은 점이 없으므로, b를 겹쳐 쓸 필요가 없다.
여왕, 술꾼
그부라는 명사로 쓰여, “왕비”(1열왕 11,19)나 “여왕”(이사 47,7) 등 힘이 센 여성을 가리킨다.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는 자식을 낳지 못했지만, 이집트인 여종 하가르는 아들을 낳았다(창세 16장). 이 이야기에서 하가르는 사라이를 꼬박꼬박 그부라(“여주인” 창세 16,4.8.9. 참고: 2열왕 5,3; 시편 123,2)라고 부른다. 하가르는 힘이 월등히 센 사라이의 구박이 무서워 도망갔던 것이다(창세 16,6).
성경에도 유머가 있다. 이사야 예언서는 “술 마시는 데에는 용사들”을 언급하는데 대개 지나친 음주를 단죄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런 용사들은 “독한 술을 섞는 데에는 대장부”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표현을 보면 그냥 웃어넘길 수 없다. 이들은 ‘뇌물을 받고 죄인을 눈감아주고’, 결국 “죄 없는 이들의 권리를 빼앗는 자들”이다(이사 5,22-23).
화려한 최고급 술집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정의를 팽개친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을 다룬 영화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독한 술을 섞어 마시는 일에는 용사요 대장부들이 죄인을 눈감아주고 무죄한 사람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말씀은 현대에도 여전한 권력층의 불의를 고발하는 것 같지 않은가? 필자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사회를 샅샅이 들여다보는 것 같아 서늘한 느낌이 든다.
- 이쉬 깁보르. 이쉬는 사람을 의미하므로, 이쉬 깁보르는 ‘용감한 사람’, 곧 ‘용사’ 또는 ‘전사’를 의미한다. 이쉬는 3회에 소개된 바 있다(가톨릭 신문 3003호, 2016년 7월 17일자).
용맹하신 하느님
깁보르는 하느님께도 쓰인다. 하느님은 “용사”(시편 45,4; 즈파 3,17 등)이시고, “용맹하신”(이사 10,21) 분이시다. 시편 저자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의 그부라를 거듭 찬미하는데, 우리말로는 “권능”(시편 54,3; 65,7; 66,7; 80,3 등) 또는 “능력”(시편 71,18 등)이라 옮긴다. 하느님뿐 아니라 하느님의 천사들도 “용사들”(시편 103,20)이고,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도 “용맹한 하느님”(이사 9,5)이시며, 하느님의 지혜도 그부라(“힘” 잠언 8,14)가 있다.
신앙의 용기
용사는 한쪽 편을 들어 맹렬히 싸우는 사람이다. 하느님은 유약하거나 회피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가련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역사에 직접 개입하여 격전을 치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천사도 그분의 지혜도, 그분이 보내신 메시아도 용맹하시다. 우리 믿음에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9일,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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