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예수님 이야기9: 천사들의 찬미와 목자들의 경배(2,8-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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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4-17 | 조회수5,435 | 추천수0 |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9) 천사들의 찬미와 목자들의 경배(2,8-20) 양떼마저 뒤로한 채 주님 계시 따른 목자들의 믿음
- 베들레헴엔 예수님 탄생 기념 성당 말고도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던 들판에서 천사에게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들은 것을 기념하는 목자들의 들판 성당이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다. 사진은 목자들의 들판 성당 구내에 있는 동굴 성당 입구.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여관방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리아가 해산해 아들을 낳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입니다.(2,6-7)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면, 뭔가 먹먹하다는 느낌 혹은 안타깝다거나 안됐다거나 하는 느낌으로 그칠 것입니다.
루카복음은 방향을 바꿉니다. 무대가 구유에서 베들레헴의 들판으로 변합니다. 오늘날에도 베들레헴은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야트막한 구릉지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일대에는 깊지 않은 천연 동굴들이 있지요. 양을 치는 목자들이 양들과 함께 추위나 비바람을 피해 지내기에 적당한 곳들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우기와 건기가 구별돼 있습니다. 그래서 3, 4월에서 9, 10월은 건기이고 11월에서 2월은 우기입니다. 우기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장마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양을 치는 목자들은 사시사철 밤낮없이 들판에서 지내기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목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다 보니 주인 몰래 양젖이나 양털로 수입을 올리는 일이 있었겠지요. 그뿐 아니라 늘 야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식일 규정을 비롯해 율법을 제대로 지키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 동굴 성당 내부.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납니다. 밤인데도 잠을 자지 않고 “양떼를 지키는”(2,8) 것으로 보아 그 목자들은 비록 죄인 취급을 받을지라도 사람들의 이목과 상관 없이 자기 직분에 충실한 이들, 그래서 성실하고 순박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가 천사의 발현에 놀라고 두려워했듯이(1,12), 목자들도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자기들의 둘레를 비추자 몹시 두려워합니다.(2,9) 그런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면서 전하는 천사의 말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2,10-12)
①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천사가 전하는 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그것도 “큰 기쁨”이 될 소식입니다. 사람들이 죄인 취급하는 가난한 목자들이, 그러나 밤중에도 양떼를 지키는 순박한 목자들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듣는 첫 사람이 됩니다.
②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큰 기쁨이 될 소식의 내용은 구원자가 다윗 고을에서 태어나셨는데 그분은 주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 고을”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구원자”는 구약성경에서는 주로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스라엘의 판관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제국의 황제나 통치자를 ‘구원자’로 불렀다고 하지요. “그리스도”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목자들이 천사에게 들은 소식은 실로 엄청난 소식입니다.
③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하면서 천사는 세 번째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그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분이 포대기에 싸여 여물통에 누워 있다는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에 비하면 그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 목자들의 들판 성당.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천사 곁에서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찬미한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
적막한 밤.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두려움에 휩싸인 목자들을 안심시키며 그리스도 탄생을 알린 데 이어 하늘 군대가 영광과 평화를 노래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방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목자들은 잠시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천사가 알려준 대로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냅니다.( 2,15-16) “서둘러”라는 표현은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졌다는 천사의 전갈을 들은 후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으로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목자들이 가서 보니 천사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들은 말을 알려줍니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은 또한 모두 “놀라워”합니다.(2,17-18) 하느님의 일은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놀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2,19) 우리 또한 마리아처럼 놀라운 일이 생겼을 때 그 놀라운 일 속에 숨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되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루카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목자들은 천사가 말해 준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2,20)고 마무리합니다. 목자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천사에게 들은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기
첫째 밤에도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라면 책임감이 뛰어났을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야생에서 양떼를 돌봐야 하는 만큼 이 목자들은 주변의 변화에 민감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2,8)고 루카는 기록하지만, 목자들이 천사가 다가오는 것을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자신들의 주위를 비추는 것을 느낀 것은 그들에게 그런 민감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느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셔서 당신 뜻을 말씀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실상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 스스로가 마음의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둘째 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죄인처럼 여겨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목자들에게 먼저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셨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을 처음 시작할 때에 말씀드렸듯이, 성경학자들은 가난한 이들, 죄인들, 소외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루카복음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루카복음의 특징이 여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구약에서 예언자 사무엘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고자 베들레헴으로 이사이의 집을 찾았을 때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4월 16일, 이창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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