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카프(손바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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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08-06 | 조회수5,735 | 추천수0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카프 자애로운 손으로 온 세상 어루만지시는 주님
히브리어 알파벳은 모두 22개인데, 카프는 11번째 글자이니 이 산책길은 이제 절반을 지나는 셈이다.
- (그림1) 원셈어 카프. 카프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서, 손가락과 손바닥을 선명히 볼 수 있다.
손가락과 손바닥
카프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보면, 마치 두 손을 모래바닥에 찍은 것처럼 손가락과 손바닥이 뚜렷이 보인다.(그림1) 이 글자는 점차 단순화되어, 마치 나뭇가지처럼 발전했다. 그러다가 긴 선을 오른쪽에 세로로 긋고(손목?), 짧은 선 두 개를 왼쪽에 긋는(손가락?) 형태로 발전했다. 이렇게 단순한 ‘3획의 형태’가 고대 셈어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쓰였다.
우가릿어 문자를 보면, 큰 쐐기를 오른쪽에 찍고 작은 쐐기를 왼쪽에 두 개 찍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가장 일반적인 3획의 형태를 쐐기문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3획의 형태가 방향만 바꾸어 고대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전승되었다. 그리고 서유럽 언어의 K로 이어진다. 그리스인들은 이 글자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이름은 그대로 따랐기에 고대 셈어의 ‘카프’는 그리스어의 ‘카파’가 되었다.
손바닥처럼 오목한 것
한편 고대 아람어 계통에서는 이 글자의 ‘손가락’ 보다 ‘손바닥’이 표현되었다. 고대 아람어 문자를 잇는 것이 현대의 히브리어 문자다. 이 문자에서는 손가락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오목하게 만든 손바닥만 연상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카프는 ‘손가락’보다는 ‘손(바닥)’을 의미하는데, 아마 이런 의미가 이 글자의 형태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 (그림2) 카프의 발전. 카프는 점차 단순화되어(왼쪽 파란색) 결국 3획의 글자로 널리 쓰였다(붉은색). 우가릿어 쐐기문자도 이 형태를 쐐기문자식으로 표현한 것이고(자주색), 그리스어의 카파도 이 문자의 방향만 바꾼 것이다(오렌지색). 한편 히브리어 카프는 우묵한 손바닥을 표현한 것이다(초록색). 히브리어 카프는 단어의 맨 끝에서 아래가 길게 늘어진 모습의 글자가 되는데(회색) 이 모습이 원셈어와 더 비슷해 보인다(미형).
실제로 구약성경 히브리어에서 카프는 손바닥처럼 우묵한 것을 가리킨다. 야곱이 하느님의 사자와 “동이 틀 때까지”(창세 32,24) 씨름을 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때 하느님의 사자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 카프를(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 카프를(뼈를) 다치게 되었다.”(창세 32,25) 사람의 엉치뼈는 우묵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그래서 엉덩이뼈를 ‘엉덩이의 카프’라고 한 것이다. 이밖에도 우묵한 접시도 카프라 했고(민수 7,14; 1열왕 7,50 등) 때로 발바닥도 카프라고 했다.(여호 3,13)
- (그림3) 히브리어 카프. 히브리어로 손바닥을 의미한다. 11번째 알파벳의 이름이기도 하다. 손바닥처럼 우묵한 접시나 사람이나 짐승의 발바닥을 의미하기도 한다. 카프(초록색) 안의 하늘색 점은 일부 자음(bgdkpt)으로 음절이 시작할 때 사용하는 기호다(약한 다게쉬).
두 손을 들고 기도하다
우리는 다섯 번째 알파벳 헤를 다루면서, 고대인들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올려 기도했음을 보았다. 모세도 그렇게 기도한 정황이 탈출기에 있다. 파라오는 일곱 번째 재앙을 당하고 나서 “주님께 기도해 다오”(탈출 9,28)라고 청했다. 그러자 모세는 “제가 성읍을 나서는 대로 주님께 제 카프를(손을) 펼치겠습니다”(9,29)라고 약속하였다. 결국 “모세는 파라오에게서 물러나 성읍을 나와서, 주님께 카프를(손을) 펼쳤다. 그러자 우레와 우박이 멎고, 땅에는 비가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다.”(탈출 9,33) 모세는 약속을 지켜서 두 손을 벌려서 주님께 기도하였고, 주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주님의 카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카프를 내려주시기도 한다. 어느 날 모세가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탈출 33,18) 하고 청하자 하느님은 “내 얼굴을 보지는 못 한다”(33,20)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자비의 하느님은 모세를 바위 굴에 넣고 “내 카프로(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그런 다음 내 카프를(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33,22-23)고 말씀하셨다. 모세를 깊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당신의 자애로운 손바닥으로 모세를 따뜻이 덮어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하셨다. 인간에게 그분 영광을 환하게 보여주시려는 큰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구세사를 묵상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하느님은 더욱 큰 사랑을 인간에게 내려주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8월 6일, 주원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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