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의 세계: 히즈키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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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11-16 | 조회수4,947 | 추천수0 | |
[성경의 세계] 히즈키야
히즈키야(Hezekiah)는 유다 13대 왕으로 25세에 즉위해 29년간 통치했다(2열왕 18,2). 남쪽 유다의 위대한 임금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왕이 되자 즉시 성전 정화에 나섰다. 사제와 레위지파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했다. 임금과 제관 계급이 하나가 된 것이다. 가로막을 세력은 없었다. 먼저 성전의 집기들을 정화했다. 부정한 것이라 판단되면 모두 키드론 골짜기에 버렸다. 대부분 앞선 임금 아하즈 시대에 만든 것들이었다. 작업에 임한 레위인 명단이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다(2역대 29,12-14). 이들은 바빌론 유배를 거치면서 선조들의 전승을 깊이 보존한 사람들이다. 역대기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히즈키야는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산당 제거에 나섰다. 선대 임금들은 손대지 않던 작업이다. 예언자와 사제들이 그토록 간청해도 없애지 않던 산당이었다. 그런데 해체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북이스라엘 멸망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들의 멸망을 우상숭배 보속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민간신앙 터전이었던 산당과 그곳 조형물들이 사라졌다. 모세가 만든 구리 뱀도 이때 없어졌다(2열왕 18,4). 광야생활 때부터 기적의 상징으로 보존했던 물건이다. 그곳에 분향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긴 것이다.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작업이 마무리 되자 히즈키야는 남과 북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낼 것을 원했다. 보발꾼을 보내 소식을 알리고 홍보했다. 하지만 호응은 미비했다(2역대 30,10). 산당 제거에 대한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북쪽은 아시리아에 멸망된 뒤였다. 남쪽 유다는 그들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집트의 후원을 받으며 반아시리아 전열을 가다듬었다. 가나안의 많은 도시들이 동참했다. 아시리아 산헤립(Sennacherib) 왕은 강경 대처했다. 충성하는 도시는 지원하고 반발하는 도시는 무자비한 보복을 안겼다. 예루살렘도 포위 공격 당했다. 그러나 막대한 배상금을 내고 물러가게 했다(2열왕 18,14). 은 300탈렌트와 금 30탈렌트였다. 1탈렌트는 지금의 30Kg 정도에 해당된다. 히즈키야는 성전과 왕궁의 은을 모두 내주었고 금은 부족해서 성전의 문짝과 문설주에 입혔던 금박을 떼어내 분량을 채웠다. 이후 아시리아는 내분에 휩싸이며 세력이 약해진다. 산헤립은 수도 니네베에서 아들에게 살해되었다(BC 681년). 6년 뒤 평생 아시리아 침공에 시달렸던 히즈키야도 병으로 죽었다. 아들 므나쎄가 12살 어린 나이로 임금이 되었다.
[2017년 11월 12일 연중 제32주일 가톨릭마산 12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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