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히브리어 산책: 라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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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11-28 | 조회수9,375 | 추천수0 | |
[주원준의 히브리어 산책] 라아 하느님은 온 인류 사랑하시는 참된 목자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특히 오늘 화답송은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가장 사랑하셨다는 착한 목자의 시편이다. 히브리어로 ‘양치기’라는 명사와 ‘치다’는 동사를 알아보기에 참 알맞은 날이다.
- 라아 I. 방목과 관련되어 폭넓게 쓰인다. 동일한 형태에 다른 뜻도 있기 때문에 흔히 I과 II로 나눈다(두 번째 뜻은 다음 기회에 다루겠다). 동사원형은 대문자로 쓰고 관습적으로 ‘아’(a)를 넣어 읽는다.
양치는 일
히브리어 라아는 흔히 ‘(양을) 치다’로 옮기지만, 사실 가축을 놓아기르는 일과 관련하여 두루 쓰이는 말이다. 라아는 유목민의 몸과 마음에 태초부터 뿌리 깊이 박힌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라아는 양뿐 아니라 소나 염소 등을 칠 때도 쓰는 말이다. 이사야 예언서를 보면 어린 양도 살진 새끼 염소도 라아하고(풀을 뜯고), 송아지도 라아한다.(풀을 뜯는다)(이사 5,17; 27,10) 또한 이사야는 메시아께서 이루실 나라를 열망하며, “암소와 곰이 나란히 라아하고(풀을 뜯고)”라고 노래했다.(이사 11,7) 그는 인간의 모든 한계가 사라지고 주님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맹수와 집짐승을 함께 치는 날로 묘사했던 것이다.
짐승이 풀을 뜯는 것도 라아라고 했지만, ‘가축이 풀을 뜯게 이끄는 것’도 라아라고 했다. 요셉 이야기의 초반부에 형들이 그를 팔아넘기는 장면을 보자.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양 떼를 라아하러(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고, 야곱은 라아하는(풀을 뜯기는) 형들에게 동생을 보냈던 것이다.(창세 37,12-13)
- 로에. 라아의 능동분사형으로 ‘양치는 이’, 곧 ‘목자’를 의미한다. 마지막 헤(h 갈색)는 복수형이 되면 사라진다.
비유적 의미
라아는 유목민의 삶에 워낙 깊이 뿌리박힌 말이라서, 비유적 의미로도 폭넓게 사용된다. 짐승을 먹이는 일뿐 아니라 사람들을 먹이는 일도 라아라고 했다. 잠언을 보면 “의인의 입술은 많은 이를 라아하지만(먹여 살리지만) 미련한 자들은 지각이 없어 죽어 간다”(잠언 10,21)는 지혜가 있다. 의인은 정의와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가 한 말은 마치 양에게 풀을 먹이는 것처럼 많은 이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의인의 말과 행동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라아는 다윗의 일생을 설명하는 낱말이기도 하다. 소년 다윗은 본디 라아하던(양을 치던) 막내였다.(1사무 16,12) 양을 치는 일은 한가하게 풀밭에서 낮잠이나 자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 양을 물어가는 들짐승과 목숨 걸고 싸워 지켜야 했다. 다윗은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 무리에서 새끼 양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저는 그것을 뒤쫓아 가서 쳐 죽이고, 그 아가리에서 새끼 양을 빼내곤 하였습니다”(1사무 17,35-35)며 적과 맞섰다. 결국 그는 돌멩이를 골라 ‘라아하는 자들의 주머니’(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고 가서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이렇게 양 떼를 지키던 그는 결국 이스라엘을 지키는 지위에 올랐다. 하느님은 다윗에게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2사무 7,8. 참조: 5,2)고 말씀하셨다.
- 로임. 라아의 복수형이다. 임(-īm)은 남성 복수형 어미다. 단수형과 비교하여 형태를 주의하라.
양치기
라아 동사의 능동분사형이 로에인데, ‘양치는 사람’ 곧 목자를 의미한다. 이미 고대근동에서 로에는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옛부터 유목민들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양을 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오늘의 제1독서인 에제키엘서 34장은 로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백성을 다스리는 로에는 무엇보다 백성을 보살피는 존재로서(11절) 가축 사이에서 자신의 양 떼를 구하는 사람이다.(12절) 그는 양 떼를 먹이고 편안하게 한다.(15절) 잃은 양을 찾아오고 지치고 병든 양을 고쳐준다.(16절) 이런 복음적 방법으로 로에는 양 떼 사이에 정의와 공정을 세운다.(16-17절) 구약성경이 밝히는 ‘목자의 권위’는 유교적 가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경은 목자가 양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퍽 소상하게 밝힌다. 하지만 양 떼가 목자에게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적으로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한다는 강요 따위는 없다. 로에에 대한 가르침에서 보조성의 원리가 뚜렷하다.
오히려 양 떼에게 충실하지 못한 로에를 저주하는 가르침이 성경에 자주 나온다. 역시 에제키엘 34장을 보면, 양 떼를 돌보지 못한 로에를 하느님이 꾸짖으시고, 손수 당신의 양 떼를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8-10절) 예레미야 예언자도 비슷한 가르침을 전한다.(예레 23,2)
가장 참된 목자는 하느님이시다. 요셉은 마지막 유언으로 “제가 사는 동안 지금까지 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느님”(창세 48,15)이라며 찬미의 노래를 불렀는데, 착한 목자의 사랑을 듬뿍 받은 양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요셉의 마음은 주님을 로에로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이다. 그런 이는 이 세상에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오늘 화답송)
* 주원준(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학자다.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 의정부교구 사목평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1월 26일, 주원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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