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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15: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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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800 추천수0

로마서에서 기도를 배우다 (15)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9-11).

 

 

문맥 보기

 

지난 호에 이어 8,9-11을 중심으로 바오로의 성령 체험을 살펴보겠다. 바오로는 이 세 구절에서 그리스도인을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사람들’로 소개한다. 9-11절은 ‘육’과 ‘영’의 대조 관계를 다룬 8,1-17에 속한다. ‘육’ 안에 있는 이는 죄에 굴복하며 살고 그리스도에 의해 아직 구속되지 않은 사람,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열지 않은 사람이다. 바오로는 이런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8절)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9-11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의 다양한 면을 ‘그리스도 체험’으로 설명한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면 …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면(9절 참조) 8절의 주어 ‘그들’(3인칭 복수형)이 9절에서 ‘여러분’(2인칭 복수형)으로 바뀐다. 이는 성령 체험이 독자 모두와 관련되었음을 드러내며, 성령에 대한 두 가지 요소를 표현한다.

 

첫째, ‘여러분 안에 사는 하느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갈라 4,4; 필리 1,19 참조)이다. 구약에서 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아흐(rûah)는 397번 나오는데, 주로 ‘하느님의 영’을 가리킨다. 나아가 이 용어는 창조물이나 역사 등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에 ‘하느님의 영’은 30번 나오는데 그중에 19번이 바오로 서간에 나온다. 바오로에 따르면 구원이든 단죄든 영적인 개입은 오로지 하느님께 속한다. 신약에서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으로 여기는 구절은 6번 나온다(2테살 2,8; 갈라 4,6; 로마 8,9; 필리 1,19; 사도 16,7; 1베드 1,11 참조).

 

8,9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생명과 활동을 전달하며 그리스도와 관련지어 정의된다. 적어도 기능적 면에서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이 동등하게 성령에 의해 대표된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뚜렷하게 동일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 면에서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영’은 ‘성 프란치스코의 영’처럼 순수하게 자격을 부여하는 소유격이 아니다. ‘겸손의 영, 가난의 영’처럼 둘째 단어인 영이 첫 단어인 가난으로 축소되는 것처럼 설명하는 소유격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한마디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하는 하느님의 영’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영의 도구가 된다. 이런 의미가 15,18-19에 잘 표현되어 있다.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이 하느님의 영이 부활하신 분의 모든 활동을 대표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사람’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영을 갖는다’, ‘그리스도에게 속한다’와 같은 뜻이다.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은 부활하신 분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는 것,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구속력으로 자신을 정화하며 산다는 것, 그분이 사랑하는 것처럼 살고, 하느님을 기반으로 자기 삶을 건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오로가 믿는 이를 ‘그리스도의 영을 모신 사람’이라고 정의할 때, 이는 믿는 이들의 삶이 부활한 주님과 내밀한 일치를 이룬 삶이라는 의미이다. 믿는 이는 예수님의 삶의 형태(죽음·묻힘·부활)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10절)

 

10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로 바뀌면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을 덧붙인다. 10절 후반부는 조건문 귀결절인데 두 문장의 대조를 강조한다.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이 문장 구조에서 그리스도가 ‘죽음’(죽은 몸)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의로움’으로 건너 가게 하는 주체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생명을 주는 성령 활동의 토대를 건설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는 갈라 2,19-20에 묘사된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체험을 연상시키는 신앙생활의 기원(시작)을 가리킨다.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에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라는 표현은 믿는 이들의 실존을 변화시키고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게 하는 근본 요소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우리 신앙의 시작이며,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은 그리스도화하는 신앙의 여정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끌어 간다. 아마도 8,10은 초대 교회에서 세례와 관련된 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바오로 서간에 자주 나오는 ‘그리스도 안에서’와 ‘성령 안에서’는 서로 관련된 표현이다. 그러나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 안의 삶이 성령 안의 삶보다 먼저라는 점이다(사도 19,1-6 참조). 바오로의 관점에서 보면 성령(그리스도에 의해 중재된 하느님의 영)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 안에서 활동하신다.

 

 

예수님을 부활시킨 분의 영이 여러분에게 생명을(11절 참조)

 

11절에서는 앞 구절에 나온 다양한 성령 체험이 “다시 살릴 것이다”는 말에 요약되는데, 그것은 부활을 가리킨다. 이는 믿는 이들이 신앙을 통해 죽은 몸의 부활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희망도 가질 것이라는 점을 밝힌다. 성령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신다. 성령은 현재와 미래에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성령은 먼저 지금 이 순간에 권능을 지니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도록 한다. 성령은 미래에 죽을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에 필적하는 생명을 가져다줄 것이다.

 

 

바오로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8,9-11에서 바오로는 성령 체험을 그리스도 체험과 연관시킨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체험된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체험과 분리해서 성령을 체험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영’을 주고,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로마 8,29; 참조 1코린 15,49) 이끄신다. 성령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스승이자 주님이신 분의 여정을 걷게 하신다.

 

바오로는 후대 교회에서 체계화한 삼위일체 교의처럼 삼위를 위격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하느님 아버지, 그분의 아드님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활동하는 하느님의 영의 상호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으며, 그리스도처럼 기도하고 싶은 갈망을 갖는다.

 

* 임숙희 님은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로마서의 바오로 기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회의 신앙과 영성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며 글쓰기와 강의를 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3월호(통권 444호), 임숙희 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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