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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영성24: 오늘날의 영성 생활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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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4,622 추천수0

성경과 영성 (마지막 회) 오늘날의 영성 생활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주일과 대축일 미사에서 성찬 전례가 시작되기 전에 신앙 고백문을 바친다. 전에는 조금 짧은 ‘사도신경’을 바쳤고, 요즘에는 좀 더 긴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바친다. 신경의 기도문에는 우리 신앙인이 믿고 고백해야 할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가장 잘 담고 있으면서 제일 짧은 신앙 고백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서양식으로 예수가 이름이고, 그리스도가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자렛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한다는 의미다.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입술로는 하느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만의 하느님을 상상하고, 자기 멋대로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올바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잘못된 신관을 형성하여 이단의 길로 접어든 예가 많이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올바른 신앙을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던 고대에,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다르게 생각한 결과 그릇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신앙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자들에 의해 오시기로 약속된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다.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고 잘못된 신앙을 바탕으로 영성 생활을 한다면, 결국 이단 성향을 띤 영성 생활로 전락하여 참 하느님께 다다를 수 없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뵙기 위한 영적 여정은 올바른 신앙고백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원천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 가톨릭 교회는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을 신앙의 원천으로 가르친다. 교회는 올바른 신앙을 전승하면서 보전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고정된 형태의 성경을 전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올바른 신앙을 배우고 깨달으며, 주님을 믿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영성 생활의 실천은 성경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의 2천 년 역사에서 성경 말씀과 영성 생활은 의도하지 않은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흘러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초대 교회부터 근세 교회까지 이르는 성경과 영성 생활의 관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수난받아야 했던 당신의 사명을 구약의 율법서와 예언서의 증언을 통해 설명하셨다. 그분께서는 공생활 기간 중에 당신을 따른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약의 율법 정신을 강조하며 설명하셨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명에 관한 복음을 선포할 때, 늘 구약성경의 말씀을 바탕으로 설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로 살아가라고 권고할 때에도 늘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했다.

 

계시 진리를 바탕으로 ‘믿을 교리’를 확립해 가던 고대의 교부들은 성경을 주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성경 말씀으로 하느님의 메시지를 깨닫고, 예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이해했을 것이다. 교부들은 성경을 단순히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주석하지 않았다. 영성 생활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영적 의미를 살피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초대 사막의 은수자들은 성경 말씀에 직접 다가갔다. 수도 생활의 처음부터 끝까지 늘 성경 말씀에 머물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깨우치고, 성경 말씀을 곱씹으면서 영적 여정의 최고 단계에 다다르고자 열심히 노력하였다.

 

중세 서방 교회의 수도자들도 이와 같은 정신을 계승하였다. 수도자들은 늘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였다. 결국 중세 중기의 수도원에서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관상하는 방법 ‘거룩한 독서’를 체계화했다. 이로써 성경 말씀에서부터 출발하여 실천하는 영성 생활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비슷한 시기에 세속에서 대학이 설립되어 지성 활동이 늘어난 영향으로 교회에 스콜라 신학이 출현하고 조직신학이 확립되어 성경 해석과 영성 생활이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수도자가 이러한 현상을 강력하게 경고하였지만, 결국 성경 말씀과 함께하는 영성 생활은 몇몇 수도원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교회 구성원은 영성 생활마저 사변적 지성 활동에 기반을 두고 실천하여 중세 후반에 이르러 그릇된 영성 생활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세 초기에는 인간의 의지와 정감적 감각에 기반을 둔 영성 생활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에 성경 말씀을 가깝게 대하고 묵상하는 분위기가 잠시 확산되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영성 생활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심을 가져 예수님의 공생활을 중심으로 복음서를 묵상하는 영성 생활의 기조를 만들었다. 그 덕에 성경 말씀을 기반으로 영성 생활을 하는 전통이 조금이나마 복원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근세 중기 이후에 인류는 지성을 중시하는 사조를 만들면서 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즉 계몽주의, 실증주의, 역사주의 등의 출현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성을 함께 논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성경 말씀 묵상과 함께하는 교회의 전통적 영성 생활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고고학과 문헌 비평학에 기반을 둔 역사비평 방법이 성경 해석 분야에서 거의 유일하고도 최상의 방법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성경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오늘날 영성 생활은 성경 말씀과 그다지 깊은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성 생활은 윤리적 권고를 중심으로 실천에 비중을 둔 수덕 생활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또한 인간 내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심리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전개되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영성 생활이 어느 곳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을 맴돌고 있다. 성경 말씀 역시 역사적 비평을 통해서만은 알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성서신학이 현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올바른 모습을 제시해 주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성 최상주의’라는 자신의 꾀에 걸려 넘어져 성경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영성 생활에서 성경 말씀을 방향타로 삼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에서 우리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의미 있는 지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나자렛 예수》라는 제목으로 총 세 권의 책을 펴냈다. 교황은 서문에서 이 책은 교도권 차원의 공식 문헌이 아니라 주님의 얼굴을 찾는 개인의 연구이므로 반론을 제기해도 무방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교의신학자로서 오늘날 성서신학이 방법론적 한계 때문에 전통 그리스도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근현대의 역사비평 성경 연구 방법론은 성경을 해석하는 데 나름대로 도움을 준 의미 있고 유효한 방법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계도 지니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경 주석학은 역사적 관점을 과도하게 적용하여 성경을 늘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가 믿어야 할 그리스도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부들의 전통적 해석 방법이던 성경 본문 이면에 숨은 영적 의미를 찾는 작업을 통해 성경에서 믿음의 그리스도를 제대로 찾아야만 우리의 영성 생활에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지적은 오늘날 우리가 영적 성장을 위해 성경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결국 우리의 영성 생활은 성경 말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야만 주님을 올바로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 말씀을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고 과도하게 사변적 학문의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성경 말씀과 영성 생활이 괴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신앙으로 성경 말씀에 다가가 성경 말씀에서 주님을 제대로 만나야 한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어 주님과 하나 되는 체험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성경 말씀이 없는 기도 생활과 영성 생활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를 잘못된 영성 생활로 이끌 수 있다.

 

필자가 2년 동안 강조하고자 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독자 여러분이 성경 말씀과 늘 함께하는 영성 생활을 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며 연재를 마친다. 주님의 은총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2월호(통권 453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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