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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의 숨은 이야기: 여섯 해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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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4,815 추천수0

[성경의 숨은 이야기] 여섯 해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연말에 가장 애용하는 단어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일 것입니다. 아담이 땅에서 살림을 꾸린 뒤, 인간의 삶은 매일 다사다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전해진 것은 ‘정말 다사다난’한 자신의 이야기를 후손에게 들려준 조상님 덕분일 텐데요. 우리가 살아온 날들도 후손에게 아름답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한 해 동안 일어난 사건을 총정리하며 2013년 세밑을 장식할 세계의 10대 뉴스에, 3월 13일에 이루어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출이 분명히 꼽힐 것입니다. 그만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언론사의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으니까요. 바티칸 상황이 생중계되고 교황님의 탄생 과정까지 캐내 알리는 신속함이 놀라웠습니다. “부족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새 교황님의 당부에 온 세상이 환호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황홀했는지요. 인간의 내면에 영적 갈증이 있다는 증거다 싶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영을 마음 깊숙이 존경하고 사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인간의 감성이며 하느님께서 빚어 주신 어여쁜 마음임을 느꼈습니다. 어둠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취를 보았습니다.

 

 

저와 함께 성경을 읽으신 모든 분께 졸업장을 드립니다

 

무조건 성경을 읽고 난 소회를 <성서와함께>에 풀어낸 지 벌써 여섯 해가 흘렀습니다. 6년 전에 태어난 아기가 여섯 살 어린이로 자랐을 것을 생각하니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실감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면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을 테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새삼 긴 시간 동안 제 글을 읽고 공감해 주신 분들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물러서도 될, 물러서야 할 ‘때’라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아쉬움을 치워 줍니다.

 

“축! 졸업.”

 

제 글과 함께해 주신 많은 분께 ‘졸업장’을 드리는 기분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제 성경 읽기에서 젖을 떼고 성경 묵상에서 상급 학교로 진학할 것이며, 성경을 삶에 적용하는 면에서도 훨씬 대견해지셨을 테니 ‘졸업장’을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지침서가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어느새 새로운 세상이 된 듯합니다. 온 세상이 확 달라질 것만 같습니다. 문제는 모든 이가 세상을 이끌어 갈 인재가 되어 군림하는 방법을 꼬집어 주는 일에만 급급하다는 점입니다. 이재(理財)에 밝은 세상은 어제만 해도 새롭던 지식과 담론을 오늘 모두 ‘헌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토록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성경만은 오래오래 두고두고 변치 않으니 구닥다리 중에 구닥다리입니다. 그런데도 말씀은 매일 새롭습니다. 말씀이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세상을 살리는 사랑의 근원이 되신 덕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삶을 위해 투신하고 계신 덕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 읽기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성숙시키고 사랑으로 변화되어 살아가도록 합니다. 믿음으로, 하늘의 것으로 충만하여 기뻐하며 살아가도록 합니다. 성경을 통해 만난 하느님은 친절하셨습니다. 정말 다정하고 따뜻한 사랑을 지니셨습니다. 그런 뜻에서 저에게 허락된 여섯 해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정한 주제는 ‘성경의 숨은 이야기’였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향하며 보지 않고도 믿는 복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름도 없이 큰 족적도 없이 그저 하느님의 뜻대로 산 그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반추하는 작은 거울이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끌어 간 영웅도 아니고 빼어나게 살지도 못했지만,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나고 지는 풀잎 같은 인생이라서 더 진한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친근함과 위로를 나눌 생각이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큰 맥을 이룬 삶에 주목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 살고 당신을 증언하며 당신을 사랑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이별의 자리에서 약간 생뚱맞은 얘기 같지만 성경 통독으로 얻은 은총을 소문내고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오묘한 성경 통독 피정의 은혜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아무것도 안 하고 성경만 읽겠다며 시간을 내고 돈을 쓰는 것,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덜떨어진 모습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 통독 피정은 주님께서 계획하고 손수 이루시는 작업임을 더욱 확신합니다. 이 허술한 주님의 작업에 선뜻 동조하신 분들이야말로 약삭빠른 세상 속에, 계산에 잽싼 세상 속에 주님께서 몰래 숨겨 놓으신 비밀병기임을 체감합니다.

 

하기야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아흐레, 삶에서 가장 단순하고 맑고 귀하게 주님께 봉헌하는 마음이 어찌 어여쁘지 않을까요? 주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여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데 어찌 현인으로 가꾸어 주시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오늘 자랑할 일은 그것이 아닙니다. 아흐레 동안 무식하게 성경만 읽는 성경 통독 피정에 너무나 귀한 회원이 생긴 것을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은 이제 돌이 갓 지난 요한이인데요. 두 해 전 엄마 배 속에서 이미 일독을 마친(?) 요한이는 지난여름 통독 캠프에도 엄마 품에 안겨 참석했습니다. 늦은 밤, 더위를 무릅쓴 장거리 여행에 지친 요한이는 그날 밤 내내 울며 지새더군요. 뒤바뀐 잠자리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들으며 숫총각은 ‘애간장이 녹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육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른은 요한이의 울음마저 기특하여 자꾸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습니다. 요한이의 투정과 울음과 웃음이 모두 은총의 소리로 들렸습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참석자가 그러했습니다.

 

두 살배기 아기는 얼어붙은 어른들을 웃음으로 살살 녹여 행복의 도가니로 이끄는 재주꾼이었습니다. 아흐레 만에 성경을 모조리 읽어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뻣뻣해진 마음을 무장해제시킨 능력자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성경 통독 피정이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 아기 요한이라는 것을 소문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습니다.

 

내친김에 제 소원도 알려 드리지요. 두 살 요한이가 건강하게 자라 세상에서 성경을 최고로 많이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요한이가 여섯 살 쯤 되었을 때 사무엘처럼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하며 주님의 뜻에 귀를 쫑긋거리는 아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주님!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저의 이 성급함마저 강복하소서.

 

아무리 다사다난한 인생일지라도 그 시작과 마침은 하느님의 소관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이렇게 은혜받은 삶을 감사와 찬미의 응답으로 채우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규정과 법규들을 …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신명 4,5-6.9).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교황님처럼 세상을 감동시키고 요한이처럼 주위를 행복하게 하는 당신의 슬기로운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살피십니다. 나를 보시고 부르시고 지키시며 함께하십니다. 그 기쁨을 교황님처럼 몸짓과 표정으로 드러낼 때, 가는 곳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처럼 스스로 계획하지도 않고 앞장선 적도 없지만 주님께서는 이미 은총의 자리에 앉게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을 만끽하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기뻐하고 감사를 드리며 행복을 체험케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의 숨은 이야기’를 쓰는 일은 마치지만, 성경에서 ‘친절하신 아버지’를 만나 그분 사랑에 잠겨 그분과 이야기 나누는 일은 끝내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새롭고 신선하며 때로는 핑그르르 눈물이 맺히는 그분과의 만남을 끊을 수는 없으니까요.

 

제 글이 그분과 더 친해지는 데에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제 글이 ‘친절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는 통로로 쓰이기를 원합니다. ‘작지만 명료한’ 하늘 나라의 길라잡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글을 마감하며 주님의 뜻을 읽고 실천하여 천상의 지혜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 장재봉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과 10여 년 뒹굴다가 ‘새 갈릴래아’인 김해 활천 성당 주임으로 옮겼다. 평화방송 TV ‘장재봉 신부의 성경 속 재미있는 이야기’에 출연 중이다. 《윤리는 아는 것도 많네》, 《성경 속 재미있는 이야기》 외 여러 책을 썼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2월호(통권 453호), 장재봉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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