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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너의 목소리가 들려 -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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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775 추천수0

[일상에서 열매 맺는 예수님의 비유] 너의 목소리가 들려 -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1)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1-5.8)

 

예수님의 ‘비유’를 시작한 지도 넉 달이 지났습니다. 전체의 흐름을 잊지 않기 위해 잠시 복습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1주차의 제목은 ‘들을 준비’였습니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합니까?’, ‘좋아하는 꽃 이름을 적어 봅시다’라는 두 가지 일상 질문이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열매 맺은 시작 질문이 도달하고자 한 소주제는 ‘텃밭의 주인은 누구이신가?(2월호)와 ‘텃밭지기 제자들은 누구인가?’(3월호)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20 참조)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도달하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것은, ‘누가 진정한 주인이신지’와 ‘제자 된 자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2주차의 제목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었습니다. 일상의 삶에 연결고리로 삼은 시작 질문은 ‘길을 잃어버렸던 체험을 나누어 봅시다’, ‘돈을 받고 일했던 체험을 떠올려 봅시다’였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알고 일상에서 열매 맺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착한 목자이십니다(루카 15,1-10 참조). 품삯을 너그럽게 베푸는 포도원 주인이십니다(마태 20,1-16 참조). 우리는 길을 잃고, 심지어 다른 아주머니 손이 어머니 손인 줄 알고 횡단보도를 건너가지만, 하느님께서는 한 순간도 ‘길 잃은 사람들’(4월호)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찾아오시며 ‘직업’과 ‘소명’(5월호)의 길로 부르고 인도하십니다. 오늘은 어떤 일상의 질문이 예수님의 비유에 숨어 있을까요?

 

모 방송사가 방영했던 법정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소년 박수하와 속물근성의 변호사 장혜성이 등장하는 꽤 흥미로운 드라마였습니다. 정의가 사라져 부정부패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드라마였는지 모릅니다.

 

‘실제로든 TV에서든, 개정 중에 있는 법정에 참석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이번 호 케빈 페로타의 시작 질문은 이미 예상했겠지만 법정 분위기를 풍깁니다. 우리나라의 재판은 증거제일주의이고 서면 질의 조사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드라마와 같이 다이나믹하고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의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다르고 드라마와도 달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청중과 오늘날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재판관과 과부에 대한 선입견을 가차 없이 깨뜨리시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예나 지금이나 막강한 권위를 지닌 인물입니다. 심지어 성경에 등장한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루카 18,2) 여기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다른 이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과부가 있습니다. 대개 과부는 힘없는 사람이 주로 보이는 태도(어려워하고 두려워함)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틀어 버립니다.

 

케빈 페로타가 지적하듯이 사회적 약자인 과부는 오히려 과감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당시의 사회 관행이던 사례금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중재자나 변호인 없이 직접 재판관을 찾아간 것으로 보입니다.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입니다. 빌려 준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같이 행동합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재판관입니다. 그가 과부의 청에 따라 마음을 바꾼 것은 합리적 논쟁의 결과가 아닙니다. 과부가 더는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도덕적 양심이 작동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루카 18,5)라고 번역된 부분은 ‘나를 눈멀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힘없는 과부가 힘 있는 재판관을 자기 방식대로 ‘눈멀게’ 한 힘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기도’의 특징 하나가 숨어 있다고 케빈 페로타는 생각합니다.

 

지난 1월호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인간의 통로를 여섯 가지(이성, 감성, 영혼, 마음, 몸, 유비적 상상력)로 제시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비유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해석되고 적용되는 과정을 알아듣기 위해 유비적 상상력을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이미지를 통해 그분의 이야기에서 일상의 체험을 연상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관과 과부의 이야기는 어떤 하느님 이미지를 그려 줄까요? 어떤 ‘기도’의 특징을 알려 주는 것일까요?

 

케빈 페로타는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께 응답받기 위해 예수님께서 위협을 당하셔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분은 단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적당한 방법, 합리적 방법에 매이지 않고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몇몇 신심 깊은 사람들은 기도가 어떠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문제를 잊고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영역에서도 문제를 분석하고 정리하고 중재하며 인식하기 위한 전략과 계획의 틀을 세웁니다. 과부가 보여 준 모습과 너무도 다릅니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초능력 소년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천길 물길은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은 겉과 너무나 다릅니다. 인간이 이성적인 것 같아도 비합리적으로 사물을 식별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을 읽는 초능력 소년 박수하가 속물근성을 지닌 장혜성을 바꾸게 한 것은 논리적 증거도 자신의 초능력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닮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통했을 때 장혜성은 변했습니다.

 

왜 재판관이 과부의 청을 들어 줬을까요? 이 질문에 한 재치 있는 청년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과부가 예뻤나?” 이 대답이 비유에 감춰진 하느님의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그 과부를 무척 예쁘게 보셨을 테니까요. 하느님께서는 사랑스러운 당신 자녀들이 기도의 사연을 들고 당신 앞에 나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나에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나의 목소리를 마음속 깊이 듣고 계실 그분께 말씀드리는 시간을 자주 가져 보면 어떨까요?

 

* 최성욱 신부는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에서 성윤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부산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리처드 M.굴라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제자 됨의 영성》(2015) 등이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6월호(통권 471호), 최성욱 토마스 아퀴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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