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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와 거울 보기6: 부르심 받은 이들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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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584 추천수0

탈출기와 거울 보기 (6) 부르심 받은 이들의 겸손

 

 

모세의 소명 사화는 탈출 3,1에서 시작되어 4,17에서 일단락됩니다. 지난달에 3장을 살펴보았으니, 이번 달에는 그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모세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40년간 살았던 삶의 터전을 바꾸고, 삶을 영위하는 방식과 삶의 우선순위까지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기까지 모세는 여러 차례 주저하고 망설였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소명 사화에 등장하는 다섯 차례의 ‘이의 제기’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두 번의 이의 제기는 3장에서 나왔습니다. 4장에서도 하느님께서는 계속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는 계속 이의를 제기합니다. 부르시는 분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시고, 응답해야 할 쪽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이는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요?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재차 말씀하셨습니다(3,16-21). 그러자 모세는 저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도 않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사실도 부정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쭙습니다(4,1). 세 번째 이의 제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가지 표징을 주십니다. 첫 번째 표징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이고, 두 번째 표징은 나병에 걸리게도 하고 낫게도 하는 이적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으면, 나일 강물을 퍼서 마른 땅에 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강물은 마른 땅에서 곧 피가 되리라 이르십니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솜씨가 없고, 입과 혀가 무딘 사람이었습니다(4,10). 이 약점은 노력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모세가 해야 할 일이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파라오를 설득하는 일임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간적 능력이 모세에게 결여되어 있는 셈입니다. 모세는 이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의 약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4,11-12). 왜냐하면 하느님의 일은 인간적 능력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시 한 번 주저합니다. 자기보다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다른 누군가를 보내시라고 말씀드립니다(4,13). 이것이 모세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이의 제기입니다. 이제는 하느님도 지치신 듯 모세에게 화를 내시지만 모세를 위하여 그의 형 아론을 대변자로 세워 주십니다(4,14). 마침내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온전히 “예”라고 응답합니다. 그는 장인에게 돌아가 이집트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알리고(4,18), 아내 치포라와 자식들을 데리고 길을 나섭니다(4,24-26).

 

 

‘이의 제기’를 통해 드러나는 겸손

 

‘이의 제기’는 구약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소명 사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 중 하나입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부르심 받은 이들의 망설임이나 고집스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르심 받은 이들의 깊은 겸손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수행하기에 자신들이 턱없이 부족한 존재임을 압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의 중차대함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기 자신을 정확히 인식합니다. 이런 건강한 자기 인식에서 나온 것이 부르심에 대한 ‘이의 제기’입니다.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소명 사화’라는 양식을 통하여 부르심 받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겸손이라고 말합니다. ‘이의 제기’에 대한 하느님의 답변은 대부분이 ‘두려워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명 수행에 필요한 모든 능력과 수단을 주겠노라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께서 그들과 함께하겠노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이 수행해야 할 사명도 하느님의 것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방법과 능력도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힘이나 능력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잃지 않는 일입니다. 그들은 도구일 뿐이며,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사명은 시작도, 그 과정도, 마침도, 다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도구가 되는 사람들은 하느님과 함께 머물면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처음부터 그 일은 하느님의 일이었고, 끝까지 책임지실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부르심 받은 이들의 모범인 모세

 

구약성경의 ‘소명 사화’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모세는 모든 부르심 받은 이들의 훌륭한 모범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인물이라 여기지도 않았고, 하느님의 일을 해낼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자만도 품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일을 자신의 일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모세의 이런 겸손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땅 위에 사는 그 누구보다도 겸손하였다고 전합니다(민수 12,3). 모세의 소명 사화는 부르심 받은 모든 이에게 참 멋진 거울입니다. 그 앞에서 계속해서 우리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할 고마운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 자주 서 보아야겠습니다.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6월호(통권 483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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