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판관 드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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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17 | 조회수8,820 | 추천수1 | |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판관 드보라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사랑도 변한다는 것을, 아니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미 삶으로 그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달리 말해서 하느님만을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했던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가나안 땅, 광야의 척박함에 비할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 들어서자 그들은 변했습니다. ‘바알과 아스타롯’으로 대변되는 가나안의 신들, 풍요와 다산을 약속한다는 우상들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변심을 판관기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배신은 주님의 진노를 불러왔고, 주님은 그들을 다른 민족들의 지배와 핍박에 넘기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자 주님은 그들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풍요와 평화, 참된 구원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고통 속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뽑아 세우신 이들, 그들이 ‘판관’(심판하다는 말에서 온 말)입니다.
판관기에는 모두 12명의 판관이 등장합니다. 이들을 기록의 다소(多少)에 따라 오트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타, 삼손은 대판관으로, 삼가르(3,31 단 한 절), 톨라, 야이르, 입찬, 엘론, 압돈은 소판관으로 분류합니다. 판관기는 시작할 때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이어진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불충실함을 전해주며 이스라엘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판관들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다시금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삶에 빠져듭니다. 이러한 혼란은 판관기의 마지막에 가서 이스라엘 지파들이 서로 싸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거의 무정부상태와 같이 되어버렸다는 데서 더 심해졌음이 드러납니다. 마지막 말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임금이 없었다.’(21,25)구절은 이스라엘에 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음에 이어질 왕들의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여러 판관들 중에서 독특한 인물인 판관 드보라에 대해 같이 나눠보았으면 합니다. 드보라에 관한 이야기는 판관기 4장-5장에 전해집니다. 4장은 이야기 형식으로, 5장은 시가(詩歌)의 형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드보라가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여예언자’(4,4), ‘이스라엘의 어머니’(5,7)라 불리는 그는 ‘드보라의 야자나무’ 아래에 앉아 조언을 청하고 시비를 가리려는 사람들을 맞았습니다.
당시는 가나안 임금 야빈과 그의 장수 시스라가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시대로 소개됩니다(4,2). 드보라는 바락을 불러 만 명의 군대를 조직해 야빈의 장수 시스라를 물리치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바락은 드보라가 동행하지 않으면 못 가겠다고 합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즈불룬과 납탈리 지파에서 만 명을 동원해 시스라와 싸우러 나갑니다. 타보르 산(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곳!)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주님의 개입으로 바락의 군대는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적장 시스라는 목숨을 건져 달아나고 맙니다. 그는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에게로 달아납니다. 야엘이라는 여인이 그를 숨겨준다며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오게 하고 담요로 덮어준 다음, 지쳐 잠든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야빈의 세력을 멸망시킵니다.
이 싸움은 이스라엘이 이기기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만 명이라는 병사를 소집했고(4,10) ‘시스라는 자기의 온 병거대,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에게 있는 전군을 소집했습니다.’(4,13) ‘이스라엘 쪽은 만 명이고 상대방은 구백 대의 병거밖에 없는데, 이스라엘이 유리한 것이 아닌가요? 인해전술이란 것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즈불룬과 납탈리 지파에서 소집된 이들, 곧 민간인들이 모인 것인데 반해, 가나안 쪽은 ‘철 병거’(현대식으로 이해하면 ‘전차’)를 갖춘 군인들입니다.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개입하심으로써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사실 이 일화는 ‘주님의 전쟁’이라는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누구를 누구의 손에 넘기시다.’(7절, 14절), ‘주님께서 앞서 가시다.’(14절), ‘주님께서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시다.’(15절), ‘이스라엘의 장수가 적군을 어디까지 쫓아가서 섬멸했다.’(16절) 등의 표현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해 싸우시는 장면들에 등장하는 말들입니다. 이 표현들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탈출 14장), 후일에 요나탄(1사무 14,1-23)이나 다윗이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는 장면(2사무 5,17-25)등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전쟁’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시기 위해 움직이신다는 것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 주님께서 개입해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이야기는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얼핏 바락과 시스라 - 이스라엘의 장수와 가나안의 장수, 곧 남성들이 중심이 될 것 같지만 드보라와 야엘이라는 여성들이 주인공이 됩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지휘하는 이는 드보라이고, 시스라를 죽임으로써 승리 선언을 하도록 하는 이는 야엘입니다. 이는 뒤이은 5장의 노래에서도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바락에게 영예를 주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온 유목민 카인족의 여인에게 ‘천막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다’(5,24)는 칭송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강한 남성 장수들을 내세워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이 아니라 연약한 여인들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크고 강한 분이시지만, 작고 연약한 것들도 크게 쓰시는 분이십니다.
[2018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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