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느헤미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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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12-10 | 조회수6,915 | 추천수0 | |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주님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는 큰 슬픔에 빠졌다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 슬픔의 원인을 거둘 수 있었으니 그 이름대로 주님의 위로를 얻은 이입니다. 그의 활동은 느헤미야기에 실려 있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이 성전을 재건했지만, 예루살렘의 영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게다가 제국의 변방에 위치한데다 이전 제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역사가 있기에 도시의 재건은 요원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에 탄’(느헤 1,3; 2,3.13.17) 채로 있는 도시의 모습을 느헤미야기는 ‘큰 불행과 수치’(1,3; 2,17)라고 말합니다. 그때에 페르시아 임금의 신하(1,1; 2,1)였던 느헤미야는 이러한 예루살렘의 상황을 전해 듣고 슬픔에 잠깁니다(1,4; 2,2). 울며 슬퍼하던 그는 단식하며 기도합니다(1,4). 그리고 임금 앞에 나가게 되자 그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마침내 임금의 허락을 받은 그는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는 먼저 조심스레 예루살렘의 상황을 살펴봅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밤에 나가 성벽을 돌아봅니다(2,11-16). 그러고 나서 사람들을 불러모아 성벽을 다시 쌓자고 제안합니다. 느헤 3장은 성벽의 재건에 참여한 이들과 그들이 쌓은 부분에 대해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대사제 엘야십부터 솔선해서 성문을 달고 성벽을 보수합니다. 이 작업에는 예루살렘의 거주민만이 아니라 지방의 주민들도 참여했습니다. 또한 귀족이나 관리들만이 아니라, 사제와 장인, 상인, 성전의 막일꾼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오십이 일’(7,15) 동안의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발랏, 토비야, 게셈 세 사람을 필두로 주변 지역의 유력자들이 반대자로 등장합니다(2,10.19; 3,33.35; 4,1). 그들은 느헤미야를 모함하고(2,19) 성벽 재건을 막으려 예루살렘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4,2.5) 느헤미야를 죽이려고까지 합니다(6,1-14).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벽 재건을 위한 노동에 지친 이들의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짐꾼의 힘은 다해 가는데 잔해들은 많기만 하구나. 우리 힘으로는 이 성벽을 쌓지 못하리라.”(4,4) 게다가 사회 불의 문제가 유다인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킵니다. 구체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부유한 이들의 이자놀이에 늘어가는 빚으로 인한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5,1-5).
이에 느헤미야는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먼저 반대자들의 모함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격계획에 대해서는 작업하는 이들을 무장한 채로 일하게 하고 경비를 세워 침입에 대비합니다. 불의한 ‘돈놀이’ 문제는 이자를 철회하고 빚을 탕감하는 서약을 하게 함으로써 해결합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기원전 445년 9월 중순)하고 마침내 성벽을 봉헌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의 안전을 확보한(7,1-3) 느헤미야는 공동체의 재건에 힘씁니다. 7,5부터 등장하는 긴 귀환자들의 명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인가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백성을 불러 모아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에 따른 축제(초막절과 속죄의 날 7,13-9,37)를 지냅니다. 또한 공동체 전체의 규정을 세우고 이를 맹세하게 합니다(10,1-40).
느헤 9,5ㄴ-37은 레위인들이 부른 찬미가를 전합니다. 이 노래는 창조부터 유배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탈출기의 내용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기 위해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시고 그들에게 ‘계명과 규정과 율법’을 주셨다. 하느님은 그들을 부양하시며 이 땅으로 데려와 살게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하느님께 수없이 반역했다. 그러나 ‘너그럽고 자비하신 하느님’(9,17.31)은 인내하시고 용서하셨고 예언자들을 보내 경고하셨다. 그러나 이를 무시한 이들은 억압을 당했고, 유배까지 갔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악한 행실에도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셨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인내, 용서에 대한 고백은 마지막에 자신들의 처지 - 종의 삶 - 를 고하는 말로 끝납니다. 이는 다시금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부르짖음입니다. 자신들이 주님께서 이루신 역사를 기억하고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자비’로 이 시대에 자신들에게 다시 그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달라는 간청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룬 일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건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방해에도 꿋꿋하게 성벽을 재건한 것도, 사회 불의에 개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성벽 재건 후에 이룬 개혁도, 비록 율법을 좁게 해석하고 이를 강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참된 이스라엘,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느헤미야의 개혁은 율법의 준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종혼(이민족과의 혼인) 금지(10,31; 13,23-28)와 이민족의 축출(13,1-3), 안식일 준수(10,32; 13,15-22), 성전 전례의 복원과 지속을 위한 조치(10,33-40; 13,4-13) 등을 강력하게 실행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느님을 부를 때, ‘하늘의 하느님’(1,4.5; 2,4.20)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후기 유다문학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에즈 1,2; 5,12; 6,9.10; 7,21.23; 토빗 7,12; 8,15; 유딧 5,8; 6,19; 11,17; 다니 2,18.19.37.44; 요나 1,9). 그런데 느헤미야가 이 말을 꺼낼 때는 기도라는 말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하늘의 하느님께 단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임금 앞에 가서 ‘하늘의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2,4) 대답합니다. 중요한 말, 꼭 필요한 요청을 앞두고 그는 먼저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공동체의 문제가 대형화와 익명화와 함께 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됩니다. 외적인 문제들도 있고 내부적인 요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은 먼저 주님께 간절한 기도를 바쳐야 함을 배웁니다. 주님은 진실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많으신 분!’(9,17)이시니 분명 들어주십니다.
[2018년 12월 9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 사회 교리 주간),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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