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에스테르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성경] 필사본 이야기: 중세 미술의 숨겨진 꽃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01-06 | 조회수6,974 | 추천수0 | |
[성경 속 사람들의 이야기] 에스테르
신데렐라같이 어느 날 갑자기 왕비가 된 여성 주인공, 출생의 비밀과 숨겨진 과거, 음모, 죽음의 위기, 대반전과 복수, 마치 요즈음 유행하는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전개를 보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에스테르기입니다.
에스테르기는 두 가지 본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어로 추가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여 추가된 부분을, 1,1①; 4,17① 식으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부분에는 하느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비해 그리스어로 된 부분에서는, 하느님께서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신 것(1,1⑪)이라고 하고, 하느님을 찾는 기도를 올리고, 모든 일이 끝나고 그것을 해석하는 데서도 하느님의 개입(9,3⑦.3⑨)이라고 함으로써 히브리어본에 없는 신학적 입장과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비록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임금 시대(기원전 496-46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여러 정황이 맞지 않습니다. 와스티라는 왕비가 폐위되었다거나, 유다인 여성이 왕비가 되었다는 것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오히려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박해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에스테르(바빌론의 여신 ‘이스타르’에서 따온 듯)는 유배에 끌려간 집안의 딸입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는 사촌인 모르도카이(바빌론의 신 ‘마르둑’에서 유래한 듯)의 양녀가 되어 보살핌을 받고 있었습니다(에스 2,5-7). 그런데 임금이 사는 궁전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임금 크세르크세스가 잔치를 벌이다가 왕비 와스티에게 어전에 나오라고 명령했는데, 왕비가 이를 거절한 것입니다. 여러 대신들 앞에서 망신을 산 임금은 크게 분노하고, 왕비를 폐위시켜 버립니다(1,1-22). 얼마 지나자, 임금은 새로운 왕비를 간택하기 위해 전국에서 ‘용모가 어여쁜 젊은 처녀들’(2,3)을 불러 모읍니다. 에스테르도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모르도카이는 에스테르에게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말라고 합니다(2,10). 후궁에 머물며 몸을 가다듬은 처녀들은 차례차례 왕궁으로 불려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 ‘보는 모든 이들의 귀여움을 받던’(2,15) 에스테르도 그 대열에 서게 됩니다. 임금의 ‘사랑과 귀여움과 총애를’(2,17) 받게 된 에스테르는 마침내 왕비로 간택됩니다(2,17). 한편 모르도카이는 임금을 해치려는 이들의 음모를 알게 되고, 이를 고발하여 역모를 막습니다(1,1⑫-1⑮; 2,21-23). 이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이 ‘하만’이라는 사람을 중용해서 수상의 자리에 앉히고 모든 신하들이 그가 지날 때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라.’ 명령합니다(3,1-2). 비록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살고 있지만, 주님을 섬기는, 그래서 ‘주님 말고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고 절하지 않는’(4,17⑦) 충실한 신앙인 모르도카이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전에 역모를 꾸미다가 처형당한 이들의 일로 앙심을 품던 하만은, 유다인들이 임금의 백성들과 어울리지 않고 ‘저희끼리만 떨어져 사는 이들로 임금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3,8)며 그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임금은 그의 말을 듣고 ‘모든 유다인들을 한날에 파멸시키고 죽여서 절멸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라’(3,13)는 명령서를 허락합니다. 그들의 죄목은 ‘임금의 명령을 배척해 왕국의 평화를 깨뜨리는 이들, 왕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들’(3,13④.13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도카이는 ‘옷을 찢고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로’(4,1) 도성을 가로질러 왕궁까지 가서 에스테르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임금에게 나아가 이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달라고 청합니다. 에스테르는 잠시 망설입니다. 임금 앞에 불리지 않은 자가 함부로 들어섰다가는 사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4,11). 모르도카이는 ‘왕비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4,13)며 움직이기를 요구합니다. 에스테르는 유다인들에게 사흘간 단식하며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청합니다. 모르도카이와 에스테르도 단식하며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달라는 간절한 모르도카이의 기도와 두려움 속에서 주님의 도움, 특히 용기를 청하는 에스테르의 긴 기도가 펼쳐집니다.
사흘째 되는 날, 에스테르는 화려하게 차려 입고 임금 앞에 나섭니다. 어좌에 앉은 임금의 위엄에 찬 모습과 그의 노기어린 눈빛(5,1⑥.1⑦)에 에스테르는 쓰러집니다. 그러나 ‘그때 하느님께서 임금의 영을 부드럽게 바꾸어 놓으십니다.’(5,1⑧)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5,3)는 임금에게 에스테르는 자신이 마련한 잔치에 임금과 하만을 초대합니다. 왕비의 초대까지 받은 하만은 교만으로 가득해집니다. 그런 그에게 거슬리는 것은 이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모르도카이만 없어지면 될 듯합니다.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높은 말뚝을 만들어 모르도카이를 매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시작됩니다. 임금이 밤중에 궁전의 일지를 살피다가 역모자들을 밝힌 모르도카이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만을 불러 어떻게 처리할지 묻습니다. 하만은 자신이 그 영광을 입으리라는 생각에 ‘어의를 입히고 임금의 말을 태워 시가 행진을 하자.’(6,8-9)고 제안합니다. 결국 그 일은 하만이 맡습니다. 그는 모르도카이 앞에서 말을 끄는 수모를 당합니다. 그리고 곧장 왕비의 잔치에 불려갑니다. 거기서 에스테르는 자신의 출신을 밝히며, 하만의 음모를 고발합니다. 결국 하만은 모르도카이를 죽이려던 말뚝에 매달리고, 모든 재산이 몰수됩니다. 이제 임금은 에스테르의 청을 받아들여 앞서와 정반대의 명령을 내립니다. 모르도카이는 수상이 되고, 유다인들은 적대자들을 처벌합니다. 그리고 이 ‘근심이 기쁨으로, 애도가 경축의 날로 바뀐 것’(9,22)을 기념해서 축제(푸림절)를 지내게 됩니다.
에스테르 이야기는 다른 민족, 다른 풍습과 종교적 배경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충실하라. 하느님께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청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바꾸어주실 것이다.’ 이는 지금 신앙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도 주어지는 가르침입니다.
[2019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의정부주보 5-6면, 이용권 안드레아 신부(선교사목국 성서사목부 담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