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44: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1(사도 15,36-16,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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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12-22 | 조회수8,668 | 추천수0 | |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4)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 I (사도 15,36-16,10) 선교 여행 위해 티모테오에게 할례 베풀다
- 바오로는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 성령의 인도로 에게해 연안 항구도시 트로아스로 가고 그곳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는 환시를 본다. 사진은 꿈 속에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는 환시를 보는 바오로.
안티오키아에서 활동하던 바오로는 두 번째로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시리아와 킬리키아, 갈라티아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트로아스에서 마케도니아로 와 달라는 환시를 봅니다.
두 번째 선교 여행 출발(15,36-41)
안티오키아에 머물면서 주님 말씀을 가르치며 선포하던 바오로는 바르나바에게 전에 복음을 전했던 곳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자고 제안합니다. 바르나바는 바오로의 말에 동의하면서 전에 함께 갔던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15,36-37)
그러자 바오로가 반대하지요.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떠났을 때 요한을 데리고 갔는데 키프로스 섬에서 선교 활동을 마치고 소아시아의 팜필리아 지방 페르게로 갔을 때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13,13 참조) 왜 요한이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는 사도행전 본문을 통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 일로 바오로는 요한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15,38)
이 일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지고 맙니다. 바르나바는 마르코 곧 요한을 데리고 처음 선교 활동을 떠났던 키프로스로 배를 타고 가버립니다. 그러자 바오로는 실라스를 선교 활동의 동반자로 택해 육로를 이용해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두루 다니며 그곳 교회들을 굳건하게 굳건하게 만들었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15,39-41)
티모테오와 함께(16,1-5)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합니다.(16,1ㄱ) 리스트라는 바오로가 1차 선교 여행 때 죽을 뻔한 고비를 맞기도 한 곳입니다. 리스트라의 군중은 처음에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보고 신들로 여겨 제물을 바치려고까지 했을 정도로 호의적이었으나 나중에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온 유다인들과 합세해 바오로에게 돌질을 했지요. 그들은 바오로가 죽은 줄 알고 도시 밖으로 끌어내다 버렸지만, 바오로는 다음날 바르나바와 함께 데르베로 가서 선교 활동을 계속하지요.(14,11-21)
이 리스트라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자가 된 유다인 어머니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데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신자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습니다. 그래선지 바오로는 선교 활동에 티모테오와 동행하고자 했고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풉니다.(16,1ㄴ-3)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 있을 때에 할례 문제로 예루살렘에까지 가서 사도들과 원로들로부터 몇 가지 결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 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그리고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을까요?
사도행전 저자는 그 이유를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16,3ㄴ)라고 표현합니다. 바오로가 다닌 곳은 다른 민족들이 사는 지방이었지만 유다인들도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스인이었지만 어머니가 유다인이어서인지 티모테오는 유다인으로 여겨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다인이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할례는 받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리스 사람인 아버지가 할례를 받지 못하게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티모테오)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그 고장 유다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구절(16,3ㄷ)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렇다면 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 것은 그 고장 유다인들에게 불필요하게 감정을 자극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이미 한 번 리스트라에서 돌질을 당하는 호된 곤욕을 치른 적이 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비록 다른 민족에게 믿음의 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그리스도교는 아직 유다교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때 할례를 받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유다인 남자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누구나 할례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다니며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결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알리면서 그 규정들을 지키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의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16,4-5)
마케도니아에 관한 환시(16,6-10)
바오로 일행의 선교 여정은 계속됩니다. 일행은 소아시아 땅 곧 오늘날 터키 땅의 서쪽 끝 지방인 아시아로 가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막으셔서 중부와 중동부의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다녔고 아시아 바로 위 미시아를 거쳐 북쪽 비티니아 지방으로 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아서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갑니다.(16,6-8) 트로아스는 당시 에게해 연안의 중요한 항구도시로서 소아시아와 유럽 곧 마케도니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트로아스에서 어느 날 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 사람이 자기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환시를 봅니다. 바오로 일행은 곧 마케도니아 즉 유럽 본토로 선교 여행을 떠날 방도를 찾습니다. 바오로가 본 환시는 하느님께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16,9-10)
- 바오로의 두 번째 선교 여행 지도.
생각해봅시다
1. 바오로가 제자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푼 것은 복음 선포자들이 선교할 때에 지녀야 할 중요한 자세를 일깨웁니다. 그것은 반감을 지닌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선교하다 보면 반감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반감을 갖는 이유를 잘 헤아려 불필요한 자극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을 통해서 이를 깨달았기 때문에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는 좀 더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었습니다. 티모테오의 할례가 그 본보기입니다.
2. 바오로 일행은 성령께서 막으시는 바람에 아시아에 가지 못하고,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지 않으시는 바람에 비티니아로 가지 못합니다. 대신 트로아스로 내려갔고 거기에서 마케도니아로 오라는 환시를 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주도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 곧 하느님의 영이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뜻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리는 식별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2월 25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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