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가부장제 사회 여자들과 워맨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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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2-17 | 조회수8,069 | 추천수0 | |
[그때 그들과 오늘 우리] 가부장제 사회 여자들과 ‘워맨스’
성경과 가부장제 사회
대다수 고대 사회처럼 고대 이스라엘 또한 가부장제 사회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성경에도 이러한 문화가 깊숙이 반영되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존중받지 못하는 종속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들 사이의 긴장 관계와 갈등도 자주 눈에 띈다.
이스라엘 성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주체적인 개인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라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자, 남편의 뜻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간다. 하지만 그 땅에 기근이 들어 이집트로 가게 된 사라는,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을 ‘아내 대신 누이’라 소개해 달라는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는다. 성경 본문은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는 이 제안에 대한 사라의 응답을 전하지 않는다(창세 12,5-20 참조).
이런 사라의 목소리는 다른 여자, 곧 후사를 잇고자 남편에게 ‘아내로 준’ 하가르와 자신이 경쟁과 갈등 구조에 놓여 그녀를 쫓아내는 장면에서야 독자에게 들려 온다(21,10 참조).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하는 아내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함은 수치로 여겨졌고, 그 의무를 종을 통해서라도 실행해야 했던 당시 상황은 여자들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긴장과 갈등을 일으킨다.
여자들 사이의 경쟁과 대립의 관계는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에게서도 볼 수 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으나, 장인 라반의 계획에 따라 먼저 그 언니 레아와 혼인한 다음에서야 라헬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다(29,15—30,24 참조). 이러한 상황에서 한 남자를 두고 두 자매 사이에 경쟁과 질투가 일어난다.
“주님께서는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그러나 라헬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 라헬은 자기가 야곱에게 아이를 낳아 주지 못하는 것 때문에, 언니를 시샘하며 야곱에게 말하였다”(29,31-30,1). 이 또한 가족의 우두머리인 아버지에게 딸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부여하는 가부장제와 일부다처제가빚은 당대 문화의 서글픈 산물이다.
나오미와 룻
성경에서 여자들 사이의 질투와 견제 이야기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오미와 룻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참된 우정과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나오미는 유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자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지방으로 가서 살게 된다. 그곳에서 남편은 죽고 두 아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룻 1,1-4 참조). 두 아들마저 죽어 혼자 남게 된 나오미는 유다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6절 참조) 모압 여자인 두 며느리에게 작별을 고하였으나, 룻은 끝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기로 한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16절).
이때부터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기보다는 삶의 동반자인 친구이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동하는 동지,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어머니와 딸과 같은 관계를 맺어 나간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룻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주는 어머니이다. 나오미는 남편의 친족 가운데 한 사람으로 ‘구원자’(보호의 권리와 의무가 있는 가장 가까운 친족)인 보아즈를 보고, 룻에게 말한다. “내 딸아, 네가 행복해지도록 내가 너에게 보금자리를 찾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3,1) 그리고 룻이 보아즈에게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자세히 일러 준다. “그분이 자려고 누우면 너는 그분이 누운 자리를 알아두었다가, 거기로 가서 그 발치를 들치고 누워라. 그러면 그분이 네가 해야 할 바를 일러 줄 것이다”(4절). 룻은 나오미를 믿고 그가 일러 준 대로 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 보아즈는 고인이 된 나오미 남편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사고 룻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구원 의무’를 실행하기로 한다(4,1-10 참조). 마을 사람들은 룻과 보아즈에게 복을 빌어 준다. “주님께서 그대 집에 들어가는 그 여인을, 둘이서 함께 이스라엘 집안을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기원하오. … 또한 그대의 집안이 주님께서 이 젊은 여인을 통하여 그대에게 주실 후손으로 말미암아, 타마르가 유다에게 낳아 준 페레츠 집안처럼 되기를 기원하오”(11-12절).
나오미와 룻은 여자들 사이에서 서로를 향한 우정과 연대가 아름답게 꽃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두 여인은 민족의 경계를 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넘어 친구이며 동지요 어머니와 딸이 되었다.
룻에게서 마리아에게로
나오미의 계획대로 룻은 보아즈의 아내가 되어 아들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16).
사람들이 복을 빌고 기원한 대로 룻은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집안을 세웠다. 오벳을 통해 이사이가, 이사이를 통해 다윗이, 그리고 다윗을 지나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나오미의 큰 그림(?)은 룻에게서 시작하여 요셉과 마리아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모압 여자인 룻이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고, 모든 민족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나오미와 룻의 공동 작전으로 성취된 것이다.
브로맨스와 워맨스
영어에서 brother와 romance를 합성한 브로맨스(bromance)라는 말은 남자들 사이의 친밀한 우정과 유대 관계를 일컫는 데 쓰인다.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등장하여 200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대중 매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러한 모습이 종종 강조된다. 반면에 woman과 romance를 합성한 워맨스(womance)는 브로맨스보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남자들 사이에 펼쳐지는 우정과 유대는 쉬운데, 여자들 사이에서는 그런 관계가 쉽지 않아서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이 아직도 우리의 현실인가?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아들이며 남편인 남자 하나를 두고 서로 거리를 두어야만 평화로울 수 있는 사이인가?
이전 세대보다 오늘날 고부 관계의 불편함과 갈등이 감소했다면 그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또는 애정이 늘었기 때문인가? 기대감을 버리고 거리두기를 한 때문인가? 가족 행사와 모임, 명절과 기념일에서 여자와 며느리의 일이 줄었다손 치더라도, 그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평화롭게 재조정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여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의 변화와 함께 여자 스스로 다른 여자에게 적이 되기보다는 친구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브로맨스 못지않은 훈훈한 워맨스를 좀 더 자주 보고 싶다. 하느님의 구원사에 동참하여 함께 힘을 모은 나오미와 룻이, 우리에게 워맨스가 무엇인지 그 모범을 보여 준 것처럼 말이다.
* 강선남 헬레나 -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석사,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교황 프란치스코: 새 시대의 응답자」, 「성경의 인물들」, 「교부들의 성경 주해, 탈출기-신명기」 등의 역서를 냈다.
[경향잡지, 2020년 2월호, 강선남 헬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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