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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61: 황제에게 상소하고 아그리파스와 대면하다(사도 2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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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26 조회수7,722 추천수0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1) 황제에게 상소하고 아그리파스와 대면하다(사도 25,1-27)


총독의 재판 거부하고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다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의 감옥에서 2년이나 갇혀 지낸 후 새로 부임한 총독 페스투스에게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다고 밝힙니다. 사진은 카이사리아 도시 유적 중 하나인 야외 원형극장.

 

 

펠릭스 총독 후임으로 페스투스 총독이 부임하자 유다인 지도자들은 다시 바오로에 대한 상소를 하고, 바오로는 황제에게 상소합니다. 아그리파스 임금이 바오로를 만나고 싶어 하자 페스투스 총독은 바오로를 불러냅니다.

 

 

황제에게 상소하다(25,1-12)

 

페스투스 총독은 카이사리아에 부임한 지 사흘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25,1) 총독 관저가 카이사리아에 있지만 유다인들이 거룩한 하느님의 도성으로 여기는 예루살렘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 유력자들이 총독에게 바오로에 대한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러면서 페스투스에게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간곡히 요청합니다. 도중에 바오로를 없애 버리려고 매복을 계획한 것입니다.(25,2-3) 바오로가 카이사리아 감옥에 갇힌 지 2년이나 지났는데도 바오로에 대한 유다인들의 적개심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스투스는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 갇혀 있어야 한다며 요청을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으면 여러분 가운데에서 담당자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 그를 고발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25,4-5)

 

페스투스의 이런 태도에서 몇 가지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페스투스는 전임 총독 펠릭스에게 바오로의 송사 건에 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해서 천인대장이 그를 카이사리아의 총독 관저까지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로마 시민인 바오로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는 위험을 감수할 까닭이 페스투스에게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페스투스는 바오로의 송사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와 함께 내려가 그를 고발하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페스투스는 열흘가량 예루살렘에서 지내다가 카이사리아로 내려옵니다. 바오로를 고발하려는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내려왔을 것입니다. 카이사리아에 내려온 다음 날 페스투스는 재판정에 앉아 바오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한 후 재판을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죄목을 댔지만,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합니다.(25,6-7)

 

바오로도 “나는 유다인들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게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하고 자신을 변호합니다.(25,8) 바오로의 변론으로 볼 때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한 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율법을 거스른 죄, 성전을 모독한 죄, 그리고 로마 황제에게 대항한 죄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을뿐더러 바오로 또한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에게 예루살렘에서 총독이 주재하는 재판을 받을 용의가 없는지 묻습니다.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25,9) 총독은 예루살렘에서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한테서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달라는 청을 받고 완강히 거절했지만, 이제는 바오로의 의향을 물어봄으로써 자신이 유다인들의 말을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재판장으로서 공정함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나는 지금 황제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라며 총독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또 불의를 저질렀거나 사형을 받아 마땅한 짓을 했다면 죽기를 마다치 않겠지만 유다인들의 고발 내용에 아무 근거가 없으면 아무도 자신을 유다인들에게 내어줄 수 없다면서 “황제에게 상소한다”고 밝힙니다. 그러자 페스투스는 고문들과 상의한 후 “당신은 황제께 상소했으니 황제께 갈 것이오”라고 말합니다.(25,10-12)

 

 

아그리파스와 베르니케(25,13-27)

 

며칠 후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해 페스투스에게 인사합니다.(25,13) 아그리파스 임금은 헤로데 대왕(마태 2,1:루카 1,5)의 증손자이자 야고보 사도를 처형한 헤로데 임금(헤로데 아그리파스, 사도 12,1)의 아들인데 예루살렘 성전을 관장하고 대사제를 임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베르니케는 아그리파스 임금의 여동생으로서 펠릭스 총독의 아내 드루실라와 자매지간이었습니다. 이 남매는 새 총독이 부임하자 인사차 카이사리아를 방문한 것입니다.

 

이들이 카이사리아에서 며칠을 머물자 총독은 아그리파스 임금에게 바오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내용은 ①예루살렘의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 원로들이 바오로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했다. ②그러나 고발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 기회를 가지기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의 판례가 아니라고 여겨 거절했다. ③유다인들이 카이사리아에 와서 고발하는 내용을 들었으나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고 그들이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바오로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다. ④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 바오로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으나 그는 황제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했다. ⑤그래서 황제에게 보낼 때까지 가두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25,14-21)

 

이 말을 들은 아그리파스는 바오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하고 페스투스는 두 사람의 대면을 주선합니다. 이튿날 아그리파스와 베르니케가 잔뜩 호사를 부리면서 천인대장들과 카이사리아의 명사들을 거느리고 접견실에 들어서자 페스투스는 바오로를 데려오라고 명령하고는 법정을 연 사유를 밝힙니다. 온 유다 주민이 예루살렘에서도 카이사리아에서도 바오로를 살려주면 안 된다고 청원했으나 자신으로서는 바오로가 사형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했으므로 고발 사유를 밝히지도 않은 채 수인을 보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황제에게 써 올릴 자료를 얻으려고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입니다.(25,22-27)

 

 

생각해봅시다

 

페스투스 총독이 바오로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총독으로서는 바오로가 사형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음을 확인하지만 그래도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한 것은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바오로가 총독의 제안을 거부하고 황제에게 상소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자신의 안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고 또 로마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당시의 사법 체계와 실제 적용에 있어서 로마 시민이 하급 법정에서 재판을 받다가 황제에게 상소한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예루살렘의 로마 군대 진지에 있던 바오로에게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23,11)라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오로의 황제 상소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됐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가 당시 세계의 중심이며 그래서 세상 전체이자 땅끝까지를 의미하기도 하는 로마까지 가서 주님을 증언하는 일이 기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4월 26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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