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성서의 해: 코린토 2서 – 사도직에 대한 바오로의 변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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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9-05 | 조회수7,955 | 추천수0 | |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코린토 2서 – 사도직에 대한 바오로의 변론
코린토 2서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의 줄임말입니다. 이 서간에서 바오로는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감정과 생각들을 매우 생동감 있는 어조로 표현하고 있어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코린토 1서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는데요, 대체 이 공동체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바오로가 코린토 1서를 보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린토 공동체에는 그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 “거짓 사도들”(2코린 11,12-15)이 나타나서 그의 활동과 가르침을 평가절하하며 교우들을 현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급히 코린토를 방문하는데, 그의 권위를 문제 삼는 이들에게 동조한 많은 이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심지어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에페소로 돌아온 바오로는 큰 슬픔 속에서 이른바 ‘눈물의 편지(2코린 2,4 참조)’를 코린토 공동체에 써서 티토 편에 보냅니다. 그 이후에 바오로가 에페소를 떠나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을 때(아마도 기원후 56-57년경), 티토가 찾아와 코린토 신자들이 회개하여 바오로와 화해하기를 바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에 또 하나의 편지를 보내는데 바로 이 서간이 코린토 2서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코린토 2서의 바오로가 왜 그렇게 감정적인 어조로(때로는 분노에 차서, 때로는 애정 어린 말투로) 자신이 직접 세운 공동체에 호소해야 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을 옹호하면서 이 사도직이 오로지 그리스도에게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코린토 2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1-7장)은 바오로 사도와 코린토 교우들의 관계를 재조명하면서 바오로의 사도직을 두고 생긴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8-9장)은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던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모금 문제를 다루면서 지역 교회들이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와 일치를 이루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10-13장)은 사도직의 정통성을 변론하는 내용들로 구성되며 바오로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했던 이른바 “특출하다는 사도들”(11,5; 12,11)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이상의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바오로는 코린토 2서를 통해서 자신이 진짜 ‘사도’(ἀπόστολος)임을 명확히 밝히고자 합니다. 당시 코린토 공동체에 나타나서 교우들을 현혹했던 “거짓 사도”들은 아마도 다른 어떤 지역 교회의 추천서를 받아 그것을 내밀면서 자기들의 사도직을 정당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2코린 3,1). 하지만 바오로에게는 그런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1,1)이자 “새 계약의 일꾼”(3,6)이 되는 자격을 주신 분은 그 어떤 권위보다도 더 높이 서 계시는 분, 바로 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3,5). 오히려 그는 자신의 추천서가 바로 코린토 신자들 자체라고 말합니다(3,2).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3,3).
이렇게 본인의 사도직이 온전히 하느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동시에 그것이 자신의 어떤 특출한 능력이나 뛰어난 인품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오로는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를 입어”(4,1) 그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표현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4,7). 여기서 ‘보물’은 바오로가 받은 사도 직분을 의미하고, ‘질그릇’은 그런 직분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본인의 처지를 빗댄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바오로 사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각자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신앙인 모두가 귀 기울여야 할 문구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사기그릇이 아닌, 볼품없는 질그릇으로 선택된 우리 처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약한 모습을 자각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약점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당신의 위엄을 더 영광스럽게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하느님의 능력을 마치 자신의 능력이나 힘으로 착각하고 우쭐거리고 싶은 우리의 욕망일 것입니다.
[2020년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인천주보 3면,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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