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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이방인 선교의 신호탄이 된 카이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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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08 조회수6,919 추천수0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이방인 선교의 신호탄이 된 카이사리아

 

 

남서쪽 하늘에서 내려다본 카이사리아 전경(BiblePlace.com).

 

 

야포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 집에서 머물던 베드로는 어느 날 무아경에 빠져 환시를 봅니다. 온갖 짐승이 담긴 커다란 보퉁이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베드로가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며 거부하자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거듭된 후에 그 보퉁이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환시가 무슨 뜻일까 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자신을 찾아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코르넬리우스라는 군인이 보낸 사람들이었습니다(사도 10,9-17).

 

카이사리아는 예수님 탄생 당시에 유다와 사마리아 갈릴래아까지 포함하는 유다 왕국 전체를 다스린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22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로마 황제를 위해 재건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도시 이름이 황제를 뜻하는 카이사리아입니다. 샤론 평야 북쪽 끝자락 바닷가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는 지중해를 통해 소아시아는 물론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또 아프리카의 이집트에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바닷길(Via Maris, 또는 해안 길)이 이곳 카이사리아에서 내륙으로 접어 들어가 갈릴래아 호수 북단을 거쳐 메소포타미아까지 이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카이사리아는 육상과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헤로데는 이곳에 왕궁을 지었고 왕궁은 로마 총독의 관저로 사용됐습니다.

 

카이사리아 전경. 전차경기장(왼쪽), 극장(위쪽), 헤로데 궁전터(가운데서 오른쪽으로) 등이 보인다(위). 카이사리아 야외극장(아래)(BiblePlace.com).

 

 

환시를 본 베드로와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

 

코르넬리우스는 카리사리아에 주둔하는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인이 아니었지만 온 집안과 함께 하느님을 경외하는 신심 깊은 사람이었고 유다인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코르넬리우스가 기도하다가 환시를 봅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야포로 사람을 보내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코르넬리우스는 야포로 사람들을 보냅니다(10,1-8)

 

이들이 야포에 가까이 왔을 때 베드로는 환시를 보았고 그 환시가 무엇을 의미할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그 사람들이 집 문간에 와서 베드로를 찾은 것입니다. 그들을 맞아들여 설명을 들은 베드로는 이튿날 야포에 있는 형제 몇 사람과 함께 그들을 따라서 카이사리아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코르넬리우스가 이미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연유를 이야기한 후 코르넬리우스에게서 자신을 부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10,17-33).

 

코르넬리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베드로는 그제야 자신이 본 환시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게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10,34-35)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스승 예수님을 따라다녔을 때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는 분부(마태 10,5-6)나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마르 7,27)을 스승에게서 직접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복음을 선포할 때도 그 대상을 일차로 유다인에게 국한했습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의 사촌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코르넬리우스는 경건한 유다인이 함께 어울려 음식을 나누면 부정을 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코르넬리우스를 만나 설명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10,15)는 환시 말씀이 이방인인 코르넬리우스를 두고 하신 말씀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야기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하며 하느님을 찬송합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오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이면 차별하지 않고 받아 주신다’는 베드로의 깨달음을 성령께서 확증해 주셨음을 뜻합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베드로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합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일반적인 순서(2,38)와 달리, 코르넬리우스 집에 모인 사람들은 성령의 선물을 먼저 받습니다. 세례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신심 깊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많은 자선을 베풀고 늘 하느님께 기도하는(10,2) 코르넬리우스는 이미 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속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꿔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이미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내리셨다는 것은 그 보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이사리아에 있는 십자군 요새 터(BiblePlace.com).

 

 

사도행전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성경의 도시

 

카이사리아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인에게 말씀이 선포되는 신호탄이 된 도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코르넬리우스 이야기 외에도 사도행전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성경의 도시입니다.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로 베드로보다 먼저 카이사리아에 복음을 전한 필리포스(8,40)는 나중에 네 딸과 함께 카이사리아에서 살면서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오로 일행을 맞아들입니다(21,8-9). 이에 앞서 바오로는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 카이사리아를 경유하지요(18,22). 카이사리아는 또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오로가 두 해 동안 감옥살이를 한 곳이었고(24,27) 황제에게 항소를 공식으로 청원한 곳이기도 합니다(25,11).

 

카이사리아는 사도 시대 이후에도 교회사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관계가 있는 도시입니다. 3세기의 대표적인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인 오리게네스(185?~254?)는 생애 후반에 20년 동안 카이사리아에서 지내면서 그곳 유다교 랍비들에 맞서 그리스도교 교리를 수호했습니다. 교회사로 유명한 에우세비우스(260~340)는 카이사리아 주교였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리아는 640년 아랍인들의 침공을 받으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하고 13세기에 가서는 완전히 폐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카이사리아에는 옛 로마와 비잔틴 시대 그리고 십자군 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어 예전 모습을 가늠하게 해줍니다.

 

카이사리아 해변에 서서 지중해의 쪽빛 바다를 바라보면서 베드로의 환시, 코르넬리우스의 환시를 차례로 떠올릴 수 있다면 축복입니다. 환시 중에 베드로가 들었던 말씀과 코르넬리우스를 만나 베드로가 깨달은 내용을 되새길 수 있다면 더 큰 축복입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신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9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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