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파스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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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9-09 | 조회수7,760 | 추천수0 | |
[구역반장 월례연수] 파스카
유다인들에게 안식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안식일은 모든 주간들 안에서 중심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한 해는 여러 축제들로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축제들은 역사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사건을 기념하는 장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유다인들은 이 축제들을 지내며 하느님이 하신 일을 기억합니다. 이 축제들 중, 대표적인 3대 의무 순례 축제는 파스카, 오순절(주간절), 초막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축제를 지내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셨습니다. 각각의 축제들은 고유한 유래, 기억하는 사건, 의미 등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 시기적으로도 첫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축제인 파스카에 대해 간략히 소개합니다.
파스카는 ‘넘어간다’는 뜻의 히브리어 ‘페사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파스카와 연결된 결정적인 체험은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치실 때,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로 바른 이스라엘의 집을 거르고 지나가셨던 사건입니다. 더 나아가 파스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갈대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 전체를 의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뜻하게 되며, 제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파스카의 유래와 관련해서 탈출기 12장을 참조할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파스카 축제에 관한 여러 규칙들을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날짜와 흠없는 제물, 준비 방법 등 여러 규정들이 소개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예식을 거행하는 이유와 그 의미입니다. 이는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는 14절 말씀에 잘 드러납니다.
파스카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대대로 축제로 지켜져야하고 기억되어야 할 사건입니다. 이를 통해 파스카는 과거의 이집트에서의 사건이 아니라, 주님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가 됩니다. 파스카를 지내며, 주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파스카는 다시 살아나는 체험이며, 이것은 지금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주님의 또 따른 약속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부활 사건이며, 우리 모두를 위한 주님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파스카는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기쁨’의 축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자유에 대해 감사하며 앞으로 보호하여 주실 것을 믿으며 구원을 기다리는 축제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8월 15일 민족의 독립을 맞이했을 때 그 감격이 어떠하였을까요? 아마 말로 다 설명하기 부족할 것입니다. 그 어떤 콘서트나 경기의 흥분의 모습도 비교할 수 없는 감격, 감동이 온 나라에 가득찼었습니다. 이처럼 자유의 소중함과 기쁨은 어느 것하고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3,000여년 전, 이스라엘은 노예로 이국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도 없고 희망도 없던 이스라엘이 어느 날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생각해보지 못했던 해방과 자유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 감동의 사건이 파스카입니다. 이 자유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과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유다인들은 신앙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이제 하느님이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이끌어내 주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신앙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힘을 체험했습니다. 아직은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강력하고 너무나 따뜻한 손길을 체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주어진 것으로서 조건없는 사랑을 그들은 느꼈습니다. 이 점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좋은 묵상 자료입니다. 간혹 신자들은 ‘내가 잘 해서 하느님께 선물 받는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건없는 부모의 보살핌처럼 매일 주어지는 무상의 은총을 깨닫는 것이 파스카 체험이 아닐까요?
이렇듯 하느님의 구원의 힘을 강력히 체험한 이스라엘은 이제 파스카 축제를 통해 그 사건을 기념하고 자손들에게 그 의미를 충실하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다인들은 다른 곳으로 쫓겨나며 흩어지고, 여러 고통을 직면해도 늘 충실히 파스카 축제를 지냈습니다. 바빌론 유배, 로마 통치, 외국을 떠돌아다니며 받은 천대와 박해 등 숱한 시련 속에서도 유다인들은 결코 구원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파스카 때마다 오히려 희망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파스카는 단지 사건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구원에 대한 기다림이며, 또 다른 파스카, 또 다른 넘어감, 영원한 자유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교 안에서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오히려 더 우렁차게 주님을 고백했던 여러 성인들, 특히 우리 초기 한국교회의 순교자들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승리, 파스카를 믿었기에 더 큰 희망안에 주님을 찬미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당장 내 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도 모든 것을 이겨 내시고 나에게 새로운 파스카를 마련해 주시는 것을 간절히 믿고 희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약을 세우시며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심으로써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의 파스카를 온전하게 만드시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희생 제물, 흠없는 양이 되시어 부활로 가는 여정을 몸소 열어 주셨습니다. 유목 시대부터 계속되어 온 유다인들의 봄의 축제가 이집트 탈출 사건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듯이, 파스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죽음을 지나 부활로, 하느님 나라로 가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옭아매는 사슬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을 끓어버릴 것을 촉구하며 그 해방을 하느님께서 친히 도우실 것을 약속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파스카 사건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기억합니다. 매 미사 안에서, 그리고 특별히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파스카를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이 희망하였듯, 우리도 예수님 부활 사건이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신앙의 길을 걷는 나를 위한 파스카임을 희망합니다.
요즘 우리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걸었던 그 광야를 우리도 걷고 있습니다. 이 광야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갈대 바다라는 절망 앞에서, 먹고 마실 것이 없는 순간에, 화려해 보이는 금송아지 앞에서, 다시 노예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태양이 내리쬐는 한낮에 광야를 가로지르며,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고 목말라 허덕일 때, 이스라엘 백성은 위대한 하느님께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도 불평하고 절망하며 도망갔습니다. 우리도 매일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에 직면해 불평하고 때로는 나의 금송아지를 찾기도 합니다. 이런 어려움 앞에서 우리 스스로 걸어나가는 것은 너무도 힘들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분명 하느님께서 매일 주십니다. 나를 보호해주시고 함께 걸어가시는 그분과 함께 할 때, 어려운 길이 기쁨의 길이 됨을 우리는 파스카 안에서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 길로 우리도 걸어갑니다. 이것이 나의 파스카 체험이 되길 희망하며 힘을 내어 걸어갑시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0년 9월호, 이정민 신부(사목국 교육지원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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