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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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11-03 | 조회수7,283 | 추천수0 | |
[구역반장 월례연수]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광야의 의미
광야는 사막과 비슷하지만 다른, 매우 척박한 땅입니다. 광야는 축복과 생명의 땅이 아닌 죽음과 저주의 땅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무려 4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광야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체험을 통해 그곳은 더 이상 시련의 땅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성숙시키고,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은총의 땅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온갖 불평과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으로 단련시키십니다.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신 채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핍박받고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체험은 야훼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오늘날까지도 굳건하게 이어져오게 하는 튼튼한 뿌리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쩌면 광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이지만 우리 또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을 배반하고 또 뉘우치기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하며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오히려 사랑으로 우리를 단련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1)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께서는 믿음의 성조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을 번성하게 하여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이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당신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택하셔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십니다. 이집트에서의 탈출 사건은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잊은 건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다시금 그들을 일깨웁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야훼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라는 걸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앞장서시며 수르, 신, 르피딤 광야를 거쳐 시나이 광야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친히 인도하십니다. 목마름과 굶주림에 시달려 종살이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하느님께 불평을 늘어놓아도 인내와 사랑으로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느님의 이끄심은 광야에서만이 아닌 그들 성조 때부터 앞으로 가게 될 약속된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여호수아를 통해, 판관들을 통해, 예언자들을 통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것이고, 성령으로 인하여 영원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바쁩니다. 하느님을 위한 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리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반면에 나를 위한 시간은 너무나 풍족합니다. 그리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쉽게 느껴집니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감아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를 이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단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을 떠나있는 건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2) 이스라엘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의 여정을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물과 음식, 그리고 모세의 권위에 맞서는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갈대 바다를 떠나 처음으로 이르게 된 곳은 수르 광야였습니다(15,22). 이제부터 본격적인 광야생활이 시작될 터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부터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 야훼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의 척박한 환경에 내몰리게 되자 “우리가 무엇을 마셔야 한단 말이오?”(15,24)라며 불평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의 말을 잘 듣고, 주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며, 그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모든 규정을 지키면, 이집트인들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15,26)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계속 반복될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둘째,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한 곳은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였습니다(16,1). 여기서도 불평은 계속됩니다. 목마름 다음으로 배고픔에 무너지고만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비록 종살이이기는 했지만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16,3)라고 불평하며 배은망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땅에서는 만나를, 하늘에서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배불리 먹이십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은 마싸와 므리바로 알려진 르피딤에 이르러 목마름에 지쳐 그만 모세의 권위에 대해 불평하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17,3) 이스라엘 백성의 맞섬에 대한 모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호렙의 바위를 쳐서 그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모세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은 결국 야훼 하느님에 대한 불평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 자신도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섬긴다고는 하지만 일상생활 안에서 내게 어려움이나 시련이 닥친다면, 하느님께 의지하기 보다는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따지며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이 위기가 더 큰 은총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0년 11월호, 나충열 신부(빈민사목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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