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된 이코니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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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1-12 | 조회수6,508 | 추천수0 | |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된 이코니온
– 오늘날의 코니아 전경(BiblePlace.com).
소아시아(오늘날 터키)의 중남부 내륙의 중심 도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선교 활동을 통해 마침내 제자들이 생겨나게 한 바오로와 바르나바. 복음을 받아들여 믿게 된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시기심으로 가득 찬 유다인들과 그 동조자들에게 박해를 받아 그 도시를 떠나야 했습니다(사도 13,50-52).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로 ‘비아 세바스테’(Via Sebaste)를 따라 동쪽으로 옮겨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140km 남짓 떨어진 이코니온이었습니다. 오늘날 코니아(Konya)라고 불리는 이코니온은 터키 중부지방의 거대한 평원 지대인 아나톨리아 평원의 가장자리에 있는 고대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3000년에 이미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으며 히타히트인들, 리디아인들, 페르시아인들이 차례로 이 지역을 점령했고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기원전 2세기 초에 로마 제국이 차지하면서 로마의 속주 도시가 되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나면서 이코니온으로 발길을 옮긴 것은 이 도시에 이미 수많은 유다인이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키프로스 섬에서 그리고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그랬듯이 먼저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것이 두 사도의 복음 선포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같은 뿌리이기에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었습니다.
– 돌에 새겨진 이코니온 지명(콘야 박물관 소장)(BiblePlace.com).
이코니온에서 오래 머물며 선교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코니온에서도 유다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설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합니다. 두 사람의 설교에 감화를 받은 “수많은 유다인과 그리스인이” 믿음을 갖게 됩니다(사도 14,1). 여기서 그리스인이란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합니다.
그런데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코니온에서도 두 사람의 설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반감을 품은 유다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 도시의 다른 민족 사람들을 자극하여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도록 만듭니다(사도 14,2). 복음을 전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악감정을 품도록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두 사람을 설교를 듣고 믿게 된 형제들, 곧 이코니온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향해서도 반감을 품도록 사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들 새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서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담대히 복음을 설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두 사람을 통해 여러 표징과 이적이 일어나게 해주시어 그들의 복음 선포 활동을 뒷받침해 주십니다(사도 14,3). 하지만 반대자들도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도시 사람들이 둘로 갈라져 한쪽은 유다인들의 편을 들고 다른 쪽은 사도들의 편을 들었다”라고 그 상황을 전합니다(14,4). 이런 상황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하신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유다인 편을 드는 사람들은 유다인들과 저희 지도자들과 합세해 사도들을 괴롭히고 돌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이를 알아챈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코니온을 떠나 리카오니아 지방의 리스트라와 데르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합니다(사도 14,5-7).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알아봅니다.)
– 코니아의 바오로 기념 성당 정면과 제대.
역사 속에 파묻힌 이코니온 교회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코니온을 떠나지만, 이코니온의 형제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리스트라와 데르베 선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코니온에 들러 제자들, 곧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된 형제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믿음에 충실하도록 격려합니다. 그뿐 아니라 형제들을 위해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단식하고 기도한 뒤에 주님께 그들을 맡겨드립니다(사도 14,22-23).
이렇게 형성된 이코니온 교회는 4세기 말에 이르면 리스트라와 데르베를 포함한 리카오니아 지방의 관구장좌 교구가 됩니다. 그러나 7세기 이후 아랍인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차츰 쇠락해지고 12세기에는 마침내 셀주크 튀르크에 완전히 정복당하면서 이름도 이코니온에서 코니아(Konya, 콘야)로 바뀝니다. 이후 코니아는 이슬람 문화의 도시로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코니아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이슬람 사원과 영묘들, 그리고 이슬람 신학교들은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코니온. 성경의 세계에서는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소아시아 땅에서 선교한 두 번째 도시로 이름을 올립니다만, 오늘날 옛 이코니온의 유적들은 모두 땅속에 묻혀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옛 이코니온 위에 세워진 근대 도시 코니아는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좇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순례지로서보다는 이슬람의 금욕적 신비주의 학파의 창시자인 메블라나의 도시로 더 유명합니다. 메블라나 박물관이 있고, 해마다 12월이면 메블라나의 죽음을 기념해 이슬람 은수자들의 춤 공연이 펼쳐집니다.
코니아시에서는 옛 그리스도교의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시에서 북서쪽으로 10km쯤 떨어진 실레 마을 입구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이름을 딴 헬레나 성당이 있습니다. 성녀 헬레나가 이곳으로 순례를 하면서 마을 언덕 동굴들에서 은수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을 보고 327년에 성당을 지어 수도자들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 실레마을, 아래쪽에 성녀 헬레나성당이 보인다(BiblePlace.com).
코니아 시내 중심부에는 가톨릭 성당이 하나 있습니다. 20세기 초 이 일대에서 철도 건설 노동자로 일하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터키 황제가 1910년에 지어준 성 바오로 기념 성당입니다. 1930년대 후반 노동자들이 다 떠나면서 폐쇄돼 한때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1985년 예수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와서 관리를 시작했고,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온 재속회 수녀들이 거주하면서 이코니온을 찾는 순례자들을 맞고 있습니다.
성 바오로 기념 성당은 바오로 사도 외에 티모테오 성인과 테클라 성녀도 함께 기립니다. 티모테오 성인은 리스트라 출신으로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에 동행한 제자이고, 테클라 성녀는 코니아 출신으로 바오로 사도의 설교에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녀로 전해집니다. 테클라 성녀는 또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첫 여성 순교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습니다. 2000년 전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가 이코니온에서 복음을 선포하며 형제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끝까지 믿음에 충실한 제자가 되십시오”(사도 14,22-23 참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월호,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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