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아브라함 2(창세 11,27-25,11) | |||
---|---|---|---|---|
이전글 | [성경용어]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전례성경 공부/묵상 동영상 자료 | |||
다음글 | [구약] 구약 이야기4: 구약과 신약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6-01 | 조회수3,847 | 추천수0 | |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아브라함 II (창세 11,27-25,11)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브라함의 삶의 시작과 정점의 순간은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셨던 아기 예수님처럼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갔던 일이나(창세 12,10-20; 마태 2,13-15), 사흗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사흘 길을 걸어가 희생 제사를 통해 그의 믿음이 온전히 ‘부활’했던 일이 그렇습니다(창세 22,1-19; 사도 10,40). 세상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 하신 하느님의 구원 약속은(창세 12,3)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결정적으로 성취되었지요(갈라 3,14).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 속한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갈라 3,7.29)이라고 말하는데요, 사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처음엔 우리처럼 기쁨과 절망, 믿음과 불신 사이를 부단히 오가던 불완전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분명 하느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걸고 나섰으면서도(창세 12,1-9), 기근이 들자 약속의 땅을 버리고 나그네살이하다 위기를 겪고(12,10-16), 아들을 주시지 않고 약속을 미루시는 하느님께 불평하거나(15,2-3) ‘대리모’를 통해 인간적인 방편을 찾기도 하고(16,1-6), 하느님의 약속을 부부 모두가 웃어넘기기도 했지요(17,17; 18,12-14). 그러나 아브라함은 칠흑같이 답답한 기다림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믿었기에, 그분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15,6). 또 온갖 위기 때마다 늘 위로와 용기를 주시며 그를 변함없이 지키셨지요(12,17-19; 15,4-21; 17,1-27; 18,10-14). ‘명백한 증거가 있어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이에게서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난다.’는 진리가 그렇게 빛을 발합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아브라함의 믿음은 비로소 완전해졌습니다(22,1-19). 자식을 죽여 피를 제단에 뿌리고 가죽을 벗겨 살과 내장을 살라 바치라는(레위 1,5-9) 그 지독한 명을 말이지요.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했던 그의 말은, 목숨보다 귀한 자식을 비롯한 내 삶의 모든 것을 주신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진실된 고백이었습니다. 때로는 침묵하시며 인간의 한탄과 원망의 대상이 되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때로는 희생만 요구하는 잔인한 분이라는 누명을 쓰면서까지, 우리 곁에서 인내하며 구원으로 이끌어 가시는 이런 하느님을 우리가 어찌 외면하고 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몸소 당신 “벗”(이사 41,8)이라 부르셨던 아브라함이 겪은 수십 년의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삶에 나의 오늘을 비추어봅니다. 믿음과 실천으로 응답하는 삶으로 “하느님의 벗”이 되어, 충만한 축복 속에 살아가는 행복한 일상을 새롭게 시작해야겠습니다.
[2021년 5월 30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