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2-4: 방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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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1-02 | 조회수2,083 | 추천수0 | |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 방법론 1
첫 시간은 바오로 서간을 읽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근래 성경 연구의 가장 큰 이슈는 ‘독자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실재했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편지를 썼고, 그 편지는 실제 공동체에 전해져 읽혔을 것입니다. 현대 성경 해석학은 이러한 역사적 실재 독자와 다른, 바오로의 편지 내에 존재하는 독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를 ‘이상적’(혹은 ‘내적’, ‘함축적’) 독자라 일컫는데, 바오로가 편지를 쓰며 염두에 둔 독자의 모습을 지칭합니다. 가령, 연애편지를 쓴다고 가정해봅시다. 필자는 관심 있는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단어와 문장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써 내려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필자는 편지를 받아 읽는 이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읽어 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필자가 편지를 쓰며 의도했던 이미지가 바로 ‘이상적’ 독자입니다. 이것은 편지의 실제 수신자와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지를 받아 읽는 이는 필자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바오로 연구학자들은 ‘이상적’ 독자와 ‘실제’ 독자를 구분해야 하며, 갈라티아서를 ‘이상적’ 독자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편지가 쓰여질 무렵 신앙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편지였던 것을 감안하면, 바오로는 분명 ‘이상적’ 독자를 염두에 두며 편지를 정성껏 작성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에 입각하여 갈라티아서를 읽을 것입니다.
‘이상적’ 독자 입장에서 갈라티아서를 읽는다고 해서 ‘실제’ 독자, 즉 갈라티아 공동체의 상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갈라티아서는 바오로의 문학적 창작물이 아닌 실재했던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쓰여진 글입니다. 그러기에 갈라티아 공동체의 역사적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은 또한 중요하고 필요한 작업입니다. 다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주된 사안은 방법론입니다. 과거의 성경 연구는 갈라티아서에 등장하는 몇 단어(예 : 할례와 육 등)에만 치중하여 역사적 상황을 추정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 그 자체의 메시지가 보다 충실히 읽히기 위해서는 먼저 그런 표현들이 서간 내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티아서는 당시 신앙 공동체의 문제점을 묘사하기보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상적’ 독자의 시각에서 출발하여 갈라티아인들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바오로의 논증 방법을 살펴본 후, 갈라티아 공동체의 실제 삶이 어떠했는지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021년 10월 24일 연중 제30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 방법론 2
지난 시간에 언급한 ‘이상적’ 독자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기능’ 중심으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독자를 생각하며 특별한 표현을 서간에 담았습니다. 각 표현마다 바오로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메시지가 서간 내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가령, ‘바보야!’라는 표현을 어떤 이는 어리석고 못난 친구에게, 또 어떤 이는 사랑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할 수 있습니다. 전자가 친구의 무지(無知)를 깨우치는 것이라면, 후자는 평소와 달라진 친구의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같은 표현도 그 기능을 알 때 메시지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갈라티아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표현이 지닌 기능을 살펴봐야 합니다. 기존 바오로 연구학자들도 서간의 기능적 측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아 율법 준수의 삶을 받아들이려는 갈라티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이기에 갈라티아서는 교육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공동체를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입니다. 사실, 갈라티아서를 보면 긍정적 명령 형태(설득형)와 부정적 명령 형태(만류형)가 번갈아 사용되고 있습니다(5,1.13.16 참조). 바오로가 사용하는 명령형 동사가 단순히 가르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갈라티아인들을 만류, 설득하며 새로운 앎으로 이끌고 있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간 각 부분이 독자에게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오늘날 서간을 읽는 우리 모두가 ‘능동적 독서’에 초대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상적’ 독자 입장에서 서간을 읽는다는 것이, 혹여 지금 우리의 신앙 생활과 무관하지 않나 싶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서간의 메시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상적 독자 입장에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서간을 읽을 것이 아니라 바오로가 독자에게 바라는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얻게 된 시간의 메시지는 전혀 다른 삶의 자리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 독자에게도 다양한 해석으로 풍요로운 신앙의 결실을 맺게 해 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서간을 읽는 과정은 자신을 ‘이상적’ 독자 입장에 위치시키는 것에서 출발하며, 독서 중 발견한 메시지를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2021년 10월 31일 연중 제31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4) 방법론 3
바오로의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사학(修辭學)에 대한 선이해도 필요합니다. 수사학이란 사람을 설득시키는 기술에 관한 학문으로서 그리스 로마 시대 학생들의 필수 과목 중 하나였습니다. 서간을 읽다 보면 바오로도 이 설득의 기술을 잘 알고 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번 시간에는 바오로가 사용한 수사학적 방법 두 가지를 다루겠습니다.
첫째, 바오로는 주제 제안(propositio)과 논증(probatio) 구조로 편지를 썼습니다. 두괄식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글은 읽기 쉽습니다. 두괄식 문단이란 주장하는 말을 문단 앞쪽에 두는 구조입니다. 독자는 첫 문장을 읽음으로써 문단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게 됩니다. 바오로도 편지를 쓸 때 두괄식으로 표현하였고, 이를 ‘주제 제안’이라고 말합니다. 즉, 주제 제안은 핵심 내용이며, ‘논증’은 그 주제 제안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독자는 바오로의 이러한 논증적인 서간을 읽어가며 주요 메시지를 파악합니다. 따라서 바오로 서간을 읽을 때 어느 문장이 주제 제안에 해당하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바오로는 논증을 위해 세 가지 수단, 곧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를 사용합니다. 로고스는 내용 자체의 논리, 파토스는 듣는 이의 감정, 에토스는 말하는 이의 도덕성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참조). 바오로는 자주 독자들의 이성(로고스)에 호소합니다. 공동체의 과거, 현재 삶을 바라보게 하고(갈라 3,1-5),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갈라 3,6-14; 4,21-31), 인간 삶의 기본 원리에 근거하여 편지를 씁니다(갈라 4,1-7). 이러한 내용들은 편지 내용이 지닌 논리적 측면으로서 메시지의 진실됨을 드러냅니다. 바오로가 듣는 이의 감정(파토스)에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독자들을 “형제 여러분”(갈라 1,11; 3,15; 4,12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에 맞게 행동하게 하는 마음을 부추깁니다. 바오로는 또한 자신의 도덕성(에토스)에도 근거해 설득합니다. 과거에 그는 율법 준수에 철저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장엄하게 고백합니다(갈라 1,14; 2,19-20). 이로 인해 독자는 바오로의 메시지에 깊은 신뢰감을 갖게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읽어가며 이러한 수사학적 방법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21년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광주주보 빛고을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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