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성경 이야기: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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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05-04 | 조회수2,907 | 추천수0 | |
[성경 이야기]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 (1)
시편 37,9의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은 이어지는 11절의 “가난한(온유한) 이들”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동에는 여섯 가지의 금지 명령뿐 아니라 실천해야 할 여덟 가지 긍정 명령도 확인됩니다:
① 주님을 신뢰할 것 (3절) ② 선을 행할 것 (3절) ③ 이 땅에 살 것 (3절) ④ 신의를 지킬 것 (3절) ⑤ 주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 (4절) ⑥ 자신의 길을 주님께 맡길 것 (5절) ⑦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물 것 (7절) ⑧ 주님을 고대할 것 (7절)
① ‘신뢰하다’라는 동사 [바타]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확신으로 걱정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즉 악을 저지르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또 다른 악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지하며 부정적 분노를 주님께 대한 투신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심판하실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더는 악을 어떻게 징벌해야 합당할지 인간적 걱정과 분노를 접어두고 모든 걸 아시는 하느님만을 신뢰합니다. 이것이 온유한 이들의 모습입니다.
② ‘선을 행한다’에서 ‘선’[톱]은 단순히 착한 말과 행동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며 말씀하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9.21.25,31)에서 나오는 ‘좋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만드신 세상 창조의 질서와 그분 뜻에 따르는 ‘올바름’ ‘정의로움’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③ ‘땅에 산다’에 사용된 동사 [샤칸]은 개념적 의미가 아니라 ‘확실하게 정해진 기간을 살다’ 또는 ‘빚을 청산하다, 진정시키다, 마음을 가라앉히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온유한 이들은 악이 만연한 세상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 삶을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 악을 선으로 인내하며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적 나약함을 정화하고 마음과 영혼을 다해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지향하는 삶을 삽니다.
④ ‘신의’란 ‘충성스러움’ ‘변함없이 지속하는 것’ ‘권한을 부여받은 의무’를 말합니다. 또한 동사 ‘지키다’[라아]는 ‘목자가 양에게 먹이를 주다’ ‘풀을 뜯어 먹게 하다’ ‘기르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온유한 이들이 ‘신의를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께 부여받은 자녀라는 정체성에 충실하여 그분께만 의지하고 그분이 이끌며 양육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성경 이야기]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 (2)
지난주에 이어 시편 37편에 나오는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의 모습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① 주님을 신뢰할 것 (3절) ② 선을 행할 것 (3절) ③ 이 땅에 살 것 (3절) ④ 신의를 지킬 것 (3절) ⑤ 주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 (4절) ⑥ 자신의 길을 주님께 맡길 것 (5절) ⑦ 주님 앞에 고요히 머물 것 (7절) ⑧ 주님을 고대할 것 (7절)
⑤ ‘즐거워하다’라는 동사 [아노그]는 ‘무엇인가를 얻은 것으로 기뻐하다’ ‘스스로 원기를 회복시키다’ ‘즐겁게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온유한 이들은 하느님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으로 자기 안에 기쁨을 채우는 이들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으로 채워진 기쁨 때문에, 미워하는 악한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⑥ “길”은 ‘주어진 길’뿐만 아니라 ‘운명’ ‘하느님의 계획’ 모두를 의미합니다. 동사 [가랄]은 본래 ‘굴리다’라는 뜻이어서, 이 구절은 ‘길을 하느님께 굴리다’, 다시 말해 ‘길을 하느님께 맡기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소한 계획뿐 아니라 자신의 운명, 인생 전체를 하느님의 이끄심에 맡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⑦ ‘고요히 머물다’[다맘]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함으로써 초조해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본인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게 아니라 내적 평화를 유지하면서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⑧ ‘고대하다’라는 동사 [하얄]은 ‘해산으로 인하여 전율하다’ ‘아픔과 함께 아이를 낳다’ ‘출산의 고통을 참다’라는 뜻입니다. 아기를 출생하기 위해 산모가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결국 출산의 기쁨을 맞이하는 것처럼, 세상의 순간적 성공이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적절한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온유한 이들’은 시편 37,9.11.22.29.34에서 후렴처럼 되풀이되듯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는 구약성경 안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서 누릴 안전한 삶의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금지 명령과 긍정 명령은, 악을 악으로 대하는 또 다른 악행(8절)이 아니라 오로지 선이신 하느님을 향하고 그분과 일치하는 삶을 위한 목적, 곧 온유함을 추구합니다. 그러기에 온유한 이들은 사악한 행동의 부당함으로 억압받지만 같은 악행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정의를 세우실 것이기에 오직 “주님께 희망을 두는 이들”(9절)로 살아갑니다.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이승엽 미카엘 신부(선교사목국 신앙교육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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