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즈루빠벨(에즈 1-5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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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10-17 | 조회수1,561 | 추천수0 | |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즈루빠벨(에즈 1-5장)
“그날에 스알티엘의 아들, 나의 종 즈루빠벨아 … 내가 너를 받아들여 너를 인장 반지처럼 만들리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하까 2,23).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이요 ‘인장 반지’(옥새)라고 드높여 주신 이 복된 즈루빠벨은 누구일까요? 그는 기원전 598년 바빌론의 제1차 예루살렘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킨의 손자로, 다윗 왕실의 자손이요 예수님의 조상입니다(마태 1,12). 즈루빠벨(‘바빌론 출신’이란 뜻)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그는 바빌론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가 유배민들의 귀환을 명하는 칙령을 반포하자(기원전 538년) 5만여 명의 동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귀향민들의 명단에서 즈루빠벨이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은(에즈 2,2) 그가 백성의 최고 지도자였음을 말해줍니다(“유다 총독”: 하까 1,1). 친지와 동족들을 데리고 바빌론(‘칼데아 땅’)을 떠나 머나먼 팔레스티나 땅으로 향했던 그에게서 성조 아브라함의 모습도 엿보입니다(창세 11,31-12,4).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버림과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즈루빠벨과 백성의 모습은,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 하느님께로 새로운 여정을 떠나야 하는 우리의 모범입니다.
폐허가 된 성전을 다시 복구하는 일은 유다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느님을 백성 가운데 모시기 위한 최우선의 과업이었습니다. 즈루빠벨은 돌아온 이듬해에 곧바로 대사제 예수아와 함께 성전 공사를 시작했지만(에즈 3,8),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유배 시기 동안 본토에 남아 이방인과 혈통이 뒤섞이고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북부 지역 주민들이 몰려와, 성전 재건에 끼어들려고 고집을 피우며 온갖 모함과 박해를 일삼았지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맞서 하느님 성전의 거룩함을 지켜낸 즈루빠벨의 모습은, 훗날 탐욕과 불의에 물든 이들을 몰아내어 성전을 정화하신 예수님의 열정과 위엄을 앞서 보여준 예표입니다(요한 2,13-22). 결국 원수들의 방해로 성전 공사가 중단되어 17년이나 지연되었지만, 이후 즈루빠벨은 하까이와 즈카르야 두 예언자의 지지에 힘입어 다시 성전 공사를 재개하였고, 마침내 기원전 515년경에 그토록 바라던 성전(‘제2성전’, ‘즈루빠벨 성전’이라고도 부름)을 완공하여 하느님을 곁에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백성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에즈 5-6장).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런 즈루빠벨을 메시아의 전형적인 칭호인 “새싹”(즈카 3,8)과 “성별된 자”(즈카 4,14)로 부릅니다. 또 하까이 예언자도 즈루빠벨을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로 예찬하면서,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세상 왕국들의 권세를 꺾으시고 메시아의 종말론적 시대를 새롭게 여실 것이라고 선포했지요(하까 2,20-23). 물론 이 구원의 예언들이 즈루빠벨을 넘어, 유일한 참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너진 도성과 파괴된 성전, 황폐해진 농토와 뒤죽박죽 엉망이 된 혈통,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는 깊은 절망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일에 치여 성전과 전례에서 자꾸만 멀어져 가는 많은 신앙인들과 또 그들을 미처 붙잡지 못한 우리들 모두 꼭 되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대사제 예수아와 두 예언자들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백성의 삶 한가운데 모셔들인 즈루빠벨처럼, 우리도 전례(성전)와 말씀(성경)을 통하여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이’로 살아가야겠습니다. 부당한 내가 언제라도 하느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성전을 더욱 사랑하고, 성전에서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얻어 누리며 구원으로 향하는 복된 일상을 기쁘게 이어갑시다.
[2022년 10월 16일(다해) 연중 제29주일 대구주보 3면,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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