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 일상생활을 지혜롭게 영위하기 위한 가르침을 제시 + 보너스: 예수님 말씀을 바탕으로 풀이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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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창범 | 작성일2018-08-23 | 조회수5,227 | 추천수0 | 신고 |
정확하게 무슨 내용이 궁금하신지 모르겠어서 제반 사항 정도로만 답변을 합니다.
1. 잠언의 특성과 해석의 단서 이미 아시겠지만, 잠언은 일종의 속담모음집 같은 문헌입니다. 유다교의 구분법에 따르면 ‘성문서’에 포함되고, 우리식으로 구분하면 ‘시서 지혜서’ 안에 포함됩니다. 유다인들에게 이 문헌이 어떤 의미로 얼마나한 비중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겠으나, 가톨릭적으로 잠언은 분명 영감 받아 적힌 것으로 보며 이 역시 신약에서 성취된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입니다. 보통 성경의 어떤 구절을 해석 할 때 엔 항상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수난-부활에 비추어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라는 이름을 지녔던 나자렛 촌부의 행적과 말씀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의 행적과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잠언 역시도 그러한 과정을 걸쳐 해석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그러니까 구약의 어떤 구절을 그리스도 사건에 비추어 풀이하는 이 과정은 우리가 미사 때 듣는 강론이 태어나는 기본 프로세싱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여기서는 문헌자체에 먼저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2. 잠언 24장 27절이 속한 문단 내에서 본구절의 역할 2-1. 27절의 속한 범위와 화자문제 현재 새번역은 이 구절이 속한 문단에 “현인들의 둘째 잠언집”이라는 제목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단을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매우 자잘하게 깨진다는 것을 이내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내용으로 보았을 때, 현인들은 “재판할 때”를 염두에 두고 말합니다. 그러면 재판을 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이 문맥이 유지되는 구절은 짧게 보면 25절까지이고, 넓게 보면 26절까지입니다. 그렇게 보면, 27절은 난데없이 끼어들어온 구절이 되죠. 어조가 바뀌니까요. 그런데 이어지는 28절~34절의 내용을 살펴보면 27절은 <23~36절>과 <28~34>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전제에서 보게 될 때, 23~34절은 하나의 문단을 형성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이 문단에 대해서는 이런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1) 이 문단의 화자를 A라고 가정하면, 2) A는 현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27절로 요약되는 자신의 성찰을 전달하고 있다.
2-2. 가설을 바탕으로 풀어보는 전반적 내용 화자 A는 우선 현인들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지혜를 전해주고자 합니다. 이는 생활(법정, 이웃관계, 일, 가정)과 관계된 지혜라고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참조하면서~)
주의를 환기하는 현인들의 말, 23ㄴ “재판할 때에 ...” 구절부터 26절 “입술을 맞추어 주는 이와 같다”까지는 재판에서 취할 자세와 각각의 자세에 따른 결과를 제시하며, 26절에서 ‘올바른 대답’을 사회적 ‘우정’과 연관시킵니다. (새번역에서는 “입술을 맞추어 주는 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요. 이는 고대 유다인들의 인사 관습으로, 입술을 맞추어 인사하는 사이는 매우 친근하고 가까운 사이임을 드러냅니다.)
이는 27절의 첫 번째 단어 “바깥일”로 수렴되는데요. 바깥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거리'나 '야외' 등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단어로, 27절의 문장구조 안에서는 ‘휴식의 공간’, ‘거처’로 이해되는 ‘집’과 짝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바깥일’은 ‘경신례’는 포함하지 않지만, 사회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 사회적 활동은 인간-이웃관계를 가리키며 이 앞부분까지는 지혜롭게 처신하는 방법과 그 가치를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화자 A가 재판의 경우로 말문을 열고 있지만, 바깥일 정리를 27절에 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올바른 처신을 하라는 것으로 넓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밭일(경제활동)과 집을 지음(가사? 가정에 충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28절에 이르러서 화자 A 가설은 조금 빈약해 지는데요. 화자 A가 분명한 의도로 현인의 말과 자신의 성찰을 연결했다면, 굳이 28~29절같이 26절에 언급된 '증언의 주제'를 다시 이어나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세울 수 있는 가설은 26절 + 28절 + 29절이 본래 한 문단이었고, 화자 A가 27절을 삽입했을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그렇게 되면, 본래 화자 A가 취했을 자료들의 문맥은 끊어지지만, 27절을 중심으로 그 앞부분에는 올바른 처신의 가치를 정리하고, 28절~29절은 구체적 행동지침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화자 A는 30절부터 자신의 경험을 적극 반영하는데요. 그 경험은 '게으른 사람'의 밭과 '지각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치며 본 풍경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경험은 ‘밭일’과 연관됩니다. 경제활동이죠. 부연은 생략
그러면 남은 것은 ‘집’을 짓다는 것이어야 하는데, 문단은 집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은 채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오히려 33절 “조금만 더 자자. 조금만 더 눈을 붙이자. 손을 놓고 조금만 더 누워 있자”하는 ‘게으른 사람’과 ‘지각없는 자’의 변명은 여운을 남기면서 더 깊은 성찰로 인도합니다. 곧 가난과 빈곤이 경제적 의미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 ‘지각없는 자’라는 언급 때문에 정신적인 영역으로까지 확대 되는 것입니다.
이를 화자 A 가설에 끼워보면, 27절의 집은 33절과 34절에서 이런 결과로 성찰되기에 이릅니다. 올바르지 못한 처신과 게으른 생활 그리고 지각없는 삶은 집안의 우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내용을 별하면, 문단 내에서 27절은 화자 A가 앞 문맥과 뒤 문맥을 연결하기 위해 끼워 넣은 구절이고, 이를 사람의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지혜로운 삶의 요약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유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기 어쩌면 이게 더 관심이 있으실 수 있겠네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바깥에 있지 않고 그 사람 안에서 나옵니다(구절 생략). 그 사람 안에서 나온 것은 그의 행동이 되고, 그의 생활을 이루며, 그의 삶이 됩니다. 바깥일은 우리 일상 공간의 일을 의미하겠지만,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나고 이루는 일들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좋은 밭과 나쁜 밭, 가시덤불 밭 밭을 가리지 않고 뿌려지지만, 열매를 맺는 데엔 차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맺은 열매는 그 열매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가장이신 집안의 일원이라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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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잠언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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