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약]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일곱 번째 이야기, 박해 속에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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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12-26 | 조회수555 | 추천수0 | |
[빛이 되라] 하느님의 ’남다른‘ 백성 : 일곱 번째 이야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은 때로 시험대에 오른다. 유다인들은 가나안의 유혹에 걸려 넘어졌었다. 가나안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세속화되어 살았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었었다. 그러나 이후는 달랐다. 유배 후 제정신을 차린 백성들은 가나안보다도 위대했던 바빌론 문화의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거룩한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었다. 대단한 변화다. 하지만 시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유배보다 더 가혹한 시련이 그들을 기다렸다. 유배는 그저 고향과 집을 잃는 것이었지만 이 시련은 그들에게 목숨을 요구했다. 박해였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제국은 갈라진다. 그중 초기 시기에 이집트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지역까지 다스렸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하에서 유다인들은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적어도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며 공존을 모색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스 문화야말로 고등 문화이며 그들의 사상과 종교,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류요,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유배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었던 유다인들은 더욱 철저한 율법 준수를 통해 자신을 지켜갔다. 이럴 때일수록 깨끗한 광야로 나가 정결을 지키며 종교적 전통을 고수하려 한 이들도 생겨났다(하시딤).
하지만, 나아가 기원전 200년경, 셀레우코스 왕조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몰아내면서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이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왕위에 오르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에게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유다인들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임금은 온 왕국에 칙령을 내려, 모두 한 백성이 되고 자기 민족만의 고유한 관습을 버리게 하였다”(마카 1,41).
“임금은 사신들을 보내어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에 이러한 칙서를 내렸다. 유다인들이 자기 고장에 낯선 관습을 따르게 할 것. 성소에서 번제물과 희생 제물과 제주를 바치지 못하게 하고, 안식일과 축제를 더럽힐 것.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이교 제단과 신전과 우상을 만들고, 돼지와 부정한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칠 것. 그들의 아들들을 할례받지 못하게 하고, 온갖 부정한 것과 속된 것으로 그들 자신을 혐오스럽게 만들도록 할 것. 그리하여 율법을 잊고 모든 규정을 바꾸게 할 것. 임금의 말대로 하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마카 1,44-50).
많은 이들이 저항했다. 어느 정도는 그리스와의 공존을 모색하던 이들도 격분하여 움직였다. 무력으로 적극적으로 저항한 이들(마타티아스의 유다 항쟁)이 있었고, 비폭력으로 저항한 이들(묵시 문학, 순교)이 있었다. 그들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박해는 오히려 그들의 굳은 신앙을 드러낼 기회가 되었다. 칼 앞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고, 자신들의 피로 신앙을 증거했다. 마카베오기 하권에 나오는 순교기는 읽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우리의 신앙도 수많은 유혹과 박해를 맞이할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성찰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유혹에 젖고 별생각 없이 억압에 순응했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상황일수록, 시련 속에 있을수록 거룩함을 지키기란 더 어렵다. 그러나 별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난다. 우리가 지닌 신앙의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유혹과 박해가 우리에게는 오히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증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살 위에 힘없이 둥둥 떠서 이끌려 내려가는 것은 죽은 물고기다. 살아있는 신앙인과 죽은 신앙인의 차이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2023년 12월 24일(나해) 대림 제4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용소막 본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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