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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에서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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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5-05 조회수1,350 추천수10 신고

마태 22장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기 위하여서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초대되어서

 

황소와 기름진 고기로 비유된 말씀을 먹고 예복을 입은 다음에는,

돈을 세상의 황제에게 바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들 자신을

거룩한 산제물로 바쳐야 산 자, 부활을 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육적인 것은 못 받으시고 영적인 것만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 6,63에 생명을 주는 것은 영(프뉴마)이요,

육(사르크스)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말들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로마서8,5 무릇 육을 따르는 자는 육의 일에 마음을 쓰지만

          영을 따르는 이는 영의 일에 마음을 씁니다. 

 

6 그러나 육이 마음쓰는 바는 죽음이지만 영이 마음쓰는 바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그러므로 육의 마음은 하느님을 적대합니다 .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으며, 실상 복종할수도 없습니다 

 

8 육 안에 있는 자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육의 행실(육의 열매)들이란 뻔하지 않습니까?

음행,부정,방탕, 우상숭배,마술,원한,싸움

시샘,분노,모략,불목,분열,질투,주정,폭음,폭식 그밖에

비슷한 것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반면에 영(성령)열매는 사랑,기쁨,평화

인내,친절,착함,신용,온유,절제입니다

  

우리들은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때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과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여

영의 자녀가 되어야 하느님께서 받아드리는 것이고

육의 자녀는 못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영의 자녀들이 됩시다.

 

말씀화가 된 사람들이

창세기 1,27 에서 하느님의 형상(쩰렘드무드)대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이것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부활 논쟁(마태 22,23~33)

 

야훼하느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이고 이삭의 하느님이고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이름을 밝히시는데

이때는 현재형으로 나타내십니다. (출애3,6)

 

물론 아브라함도 몸은 죽고 이삭도 몸은 죽고 야곱도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지금현재 살아있기 때문에,

 

 세상 마지막날에

하느님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할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현재의 하느님을

만나서 몸은 죽으나 영혼은 살아있기 때문에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때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양식인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말씀화가 되어

그리스도의 말씀의 예복을 입은 후에,

 

그리스도 형상화가 된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산제물로 바친

사람들이 살아있는 부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활 논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다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한 여인이 자기의 남편이 죽은후 6명의 시동생들과 살다가 죽으면

부활할 때에 7명의 남편이 있는데 이 여인의 남편은 누구입니까? "

하고 질문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 후의 영혼은

세상에서처럼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부활 신앙을 설명해 주시면서

 

산 자의 부활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아브라함이 만난 하느님 즉

아브라함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말합니다.),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을 비유로 부활을 설명해 주십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이 오늘 현재 만나는 하느님,

즉 우리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현재의 부활이 옵니다.

 

하느님은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우리들 안에 계십니다.

 

첫째가는 계명에 관한 대담(마태 22,34~40)

 

부활한 사람이 살아 있으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자는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마음인 애고(ego)가 죽어야 부활이 옵니다.

수난받고 죽어야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부활한 사람이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온 정신으로

네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고 하시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요한14,23).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온 마음 온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 는 것은 죽으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아 있으면 봉사나 남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은 희생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있을 때는 사랑을 못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으로 합니다.

 

말씀의 예복을 입고 난 후에

하느님의 형상이 된 사람이 부활한 사람이며,

 

부활하여 살아 있으니까 첫째 계명인 사랑이 오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부활한 우리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게 됩니다.

 

다윗의 아들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대담(마태 22,41~46)

 

그리스도의 옷인 예복을 입고 그리스도의 형상화가 되고

부활한 사람에게 사랑이 오고,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은 우리들의 그리스도" 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시는 분이 

"그리스도 이레네오(각자의 세례명)" 즉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다윗이 예수님의 인성 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그리스도 하느님의 신성은 시공간이 없으시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다윗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시는

하느님이시며 자존자이십니다.

 

시편 110,1 에서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마태 22장은 하느님의 자녀들의 장이므로

우리 모두는 여기에 속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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