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가나의 혼인잔치의 해석을...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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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기순 | 작성일2007-09-19 | 조회수1,347 | 추천수4 | 신고 |
가나의 혼인 잔치 - 첫 표징(요한 2,1~12)
말씀하고 관계를 맺으면 영생이 오고 이 생명은 빛으로 나타나는데, 이 빛은 어둠(죄)를 비추어 주는 역활을 하는데 이 진리의 빛이 있어야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이 사랑의 빛으로 보는 사람은 남을 보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어둠을 보기 시작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는 광야에서 부르짖는 생명이 없는 소리라고 했고,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레마)이라고 했으며,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자격도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의 차원을 영차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말한 신발의 끈은 율법을 말합니다. 율법을 완성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사랑(아가페)으로 완성하시기 때문에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는 율법을 완성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 11장에서 나자로가 살아 나올 때에 몸이 줄로 매어 있었다는 것은 율법으로 매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 때는 몸을 덮었던 염포는 개켜져(케이마노)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은 율법에 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보는 눈을 영차원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 16,21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가 나오고,
마태 17,22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가 나오고,
마태 20,17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예고가 나온 후에
마태 21,12에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는 예화가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들이 깨어지고 육이 죽은 후에 새 성전이 우리들의 심령 안에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서에서는 영의 복음이므로 요한 2장에서는 물인 육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포도주가 되는 것이,
마태복음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오는 과정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심령의 변화''를 부활이라고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기적이 첫 기적이고 근본적인 부활의 기적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서 예수님과 한몸이 된 후에(요한 묵시록 19,5)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통해서 우리들의 심령 안에 예수님의 몸을 만드는 것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서 몸이 이루어지는 사람이 성전이 되기 때문에 성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후 "사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라는 말에서 꿰뚫어 보신다는 뜻은 말씀이 이루어져서 성전이 이루어져서 말씀으로 살아 가는지 아닌지 보시는 것이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래아의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 었는데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다.
설명- "이튿날"은 나눔과 준비하는 날이고 여기에 있으면 과거나 미래에 있고 육적이며, 동물성이고 죽음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셋째날은 현재이고 지금이며 부활이고 영생인 상태입니다. 예수님 부활도 삼 일째에 있었고, 요나도 삼일 주야로 큰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서 나오는 것도 부활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은 삼일째이며 오늘날이며 현재의 부활신앙입니다.
그래서 이튿날과 삼일째 날도 중요한 영적인 뜻이 있습니다.
3 마침 포도주가 모자라서 예수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없구나." 하셨는데
설명- 물은 육을 상징하고 우리들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합니다.
술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잠언 23,31에서는 "술은 먹지 말라."고 했고,
마태 9,16~17에서는 새 포도주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상징하고, 묵은 포도주는 율법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묵시 18,3에서 격정의 포도주, 음란의 포도주는 비진리를 말합니다. 술과 독주와 음란의 포도주는 비진리를 말하며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구약으로 볼 때는 술을 마셔서는 절대 아니 되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는 것은 술에 관계 없이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인 ''레마''로 살아 가면 된다는 영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육적으로도 술에 취하면 아니 됩니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설사합니다.
4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더러 어쩌라고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설명- ''이 때''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실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때''를 상징합니다.
5 그분 어머니가 시중꾼들에게 알렸다. "무엇이든지 이르신대로 하게(믿음)."
6 거기에는 유대인 정결례를 위해 만든 물독 여섯 개가 있었는데 각각 두세 동이씩 담을만 했다.
설명- ''물독'' 이라는 뜻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나 우리들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창세기 2,7. 고린 후서 4,7에서 우리들 안에 물을 넣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물인 육을 영인 포도주로 변화시키는데, 중재(중보) 기도를 성모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오늘날에도 해주고 계십니다.
8 이윽고 예수께서 "이제 떠서 잔치 주관자에게 가져 가게." 하고 이르시니 곧 그들이 가져갔다.
설명- ''이제''라는 뜻은 ''아르티''라는 헬라말로 오늘날 부활한 날, 현재 주님을 만나는 날을 말합니다.
12 그 뒤 예수께서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파르나움으로내려가셨다. 그러나 여러 날 거기 머무르지는 않으셨다.
세상의 결혼을 통해서 신랑과 신부가 하나되는 과정을 통해, 신랑이신 예수님과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예수님과 한몸 한영이 되어서 우리 안에 오시는 예수님 때문에 성체가 되는 과정을 결혼을 통해서 설명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 예고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서 성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예화를 통해서 설명을 하셨고,
요한복음에서는 육인 물이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포도주가 되어서 성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 과정에서 성모님의 중재 기도(중보 기도)가 절대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인 양형영성체를 모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모셔서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몸을 만드는 것이 주일미사 예배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처럼 육인 우리들도 성경 말씀 읽고 기도하고 미사 예배를 드림으로써 물인 육이 포도주인 신성인 영으로 변화되어 성령이 거처하는 성전이 되어야 다음에 신령한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성전이 되면 예수님께서 잡상인들을 우리 안에서 육적인 것을 쫒아낼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도 예수님의 말씀(레마) 성취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이 성전이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 용서와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나를 인도할 수 있도록 도구로 내어 드립시다.
물인 우리들이 레마 말씀으로 포도주인 영으로 변화된 것이 부활이며, 시기 질투 미움으로 살아 온 우리들이 사랑 기쁨 평화 인내로 살아 가는 것은 물이 포도주로 되는 것과 같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육체로 보기 때문에 육신이 죽을 때 즉 박해가 올 때 고난과 수난을 느끼고, 육이 죽고 영으로 부활을 해서 살아 있으니까 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육체가 주로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주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인 우리들이 영인 포도주로 변화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육인 물이 영인 포도주로 새로 창조되는 것이 첫 기적이고, 가장 중요한 부활을 보여 주시는 근본이 되는 중요한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라는 것을 증거하십니다.
우리도 변화되기 위해서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을 영접하여 참(''알레데이아'' 는 헬라말로 진리라는 뜻임)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우리들이 관계를 맺어서 매일매일 물포도주가 되어서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요한 15,1).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다.요한 2,13~23;마태21,12~13
물이 포도주가 되는 첫 기적이 부활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 첫 기적이 첫째 부활이고 (요한묵시록 20,6), 현재 부활이고(요한 11.25), 신령체 부활(코린토 전서 15,35~58)이라고 묵상을 하신 형제님은 좋은 묵상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5,19 에서 시기 질투 미움 등의 16가지 육적인 열매로 살아 온 우리들이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등의 열매로 변화되어
성령의 속성(성품)으로 변화되어 살아 가는 사람을 부활했다고 하고, 성전이 이루어졌다고 하고, 성전이 이루어지면 사랑의 사람이 되고 천국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예화를 성전으로 설명하고, 이 성전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성전은 기도하는 성전이고,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지 않는 성전은 장사하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사하는 성전을 예수님께서 걷어치우라는 것입니다. 소, 양, 비둘기를 사서 성전에 속죄의 제물로 바치는 것을 예수님께서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소는 성부를 상징하고, 양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을 주고 이 제물들을 사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나 이것은 구약의 제사이고 그림자입니다.
소, 양, 비둘기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율법의 구약의 제사이기 때문에 신약의 새 계약의 제사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복음의 은총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상의 희생 제물이 되고 대제사장이 되시는 것처럼 이제부터는 우리들이 희생 제물이 되며 산 제물이 되어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실체인 예수님이 오셨으므로,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영생이 오는 것이지,
구약의 그림자인 제사로써는 영생이 오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이 소 양 비둘기를 잡아서 바치는 제사로는 죽기 때문에, 마음이 안타까워서 상을 엎으고 나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차원에서 보시면 화내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서 말리시는 것입니다.
성전은 우리들 마음 안에 성경 말씀으로 짓습니다. 육적인(장사하는) 성전(갈라 5,19)과 영적인(기도하는) 성전(갈라 5.22~23)이 있습니다.
내가 육적인 성전인가, 기도하는 성전인가, 내가 선악과의 열매의 여독으로 살아가는가, 사랑의 열매로 살아 가는가, 묵상을 해 봅시다
미사중에 말씀의 전례때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 오시고 영성체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안에 오시게 되면 성당안에 있는 감실이 우리들 몸안으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들 몸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감실이 되며 성전이 되기 때문에 기뻐하고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14 그리고 성전(건물이 아니고 나의 육체를 말함)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는
15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성전에서 쫓아내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들을 둘러 엎으셨다.
설명 - 소 양 비둘기로 바치는 제사는 구약에서 율법하에서 아론의 번차를 통해서 드리는 옛 계약의 제사(히브리서 9,1~10)이므로 못하게 하시고
신약의 새 계약의 제사(히브리서 9,11~28) 즉 멜기세덱의 번차를 따르는 새 계약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새 계약의 제사는 예수님이 어린양이시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드리는 십자가상의 거룩한 제사이고 미사 예배 때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들도 새 계약인 사랑으로 미사를 드리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찬양을 드리는 신약의 제사를 드려서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일 미사 예배를 열심히 참여합시다.
내가 기도하는 새 성전이 되어야 하느님께서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것이 물포도주를 마셔서 기도하는 성전이 되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거룩한 성전이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새 계약에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음으로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0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사십 육년이나 걸려서 지었는데 당신이 그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단 말이오?" 하였다.
설명 - 구약과 육차원에서는 성전이 솔로몬 성전 즉 건물을 의미하나 영차원에서는 예수님 안에 성령이 있으므로 예수님의 육체가 성전입니다.
우리들 안에 성령이 거처하면 우리들의 몸도 성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보는 눈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22 예수께서 죽은이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은 이 말씀을 상기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설명-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 와서 말씀이 새겨져야 믿음이 옵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진 후에 성전이 이루어지며,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전 짓는데 46년이 걸렸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오는 것이 천국이 완성되는 것이고 사랑이고 부활인데, 이때는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들의 육체 안에 머무시므로 성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뒤시아''라는 헬라말은 ''제사''라는 뜻인데 이 제사는 ''뒤오오'' 라는 ''죽이다''라는 말에서 옵니다.
짐승을 잡아 죽여서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우리들도 육의 열매인 시기 질투 미움 등의 마음을 죽이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등의 열매로 변화가 된 산 제물로(로마 12,1) 된 성도들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시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여 성전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들 안에 있는 육적인 식구들인 소 양 비둘기를 우리들 마음 안에서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된 산 제물을 하느님께 십일조로 바쳐야 하겠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십일조도 필요합니다.
사람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요한 2,23~25)
성전이 이루어진 사람과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심판인데 우리들 안에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 즉 물이 포도주로 변화가 되지 않은 육에 속한 사람은 심판이고, 물포도주로 변화된 영의 사람 즉 사랑의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꿰뚫어 보시는 것은 물이 포도주로 변화여 성전이 이루어져서 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즉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 가는가 아니 살아 가는가 보시는 것입니다.
성전이 이루어진 사람과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으로 갈라 놓는 것이 심판입니다. 내 마음 안에 성전이 아니 이루어지면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도 은사입니다.
24 그러나 예수 당신은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 모든 사람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설명 -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몸을 맡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오셔서 성전이 이루어져야 믿음이 옵니다. 우리들 안에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부활 영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사랑이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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