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세례명과 축일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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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희준 | 작성일2007-01-12 | 조회수525 | 추천수0 | 신고 |
+ 찬미 예수님!
형제님, 전례력을 보면 여러 분의 치릴로와 엘리사벳 성인들이 있어서 어느 분을 주보성인으로 모셔야 할지 고민이 되시는 모양이네요.^^ 이름이 같은 모든 성인들을 주보성인으로 모실 필요는 없답니다. 주보성인은 한 분으로 정하는 것이 일반 관례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이 좋을지 정하는 것은 형제님과 자매님께서 정하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생일과 근접한 축일을 지닌 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십니다. 하지만 혹시 그 중 특히 마음에 드시는 성인이 있다면, 그분을 주보성인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엘리사벳은 여러 명이 계시죠. 제일 먼저 나오는 분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은 맹세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사촌으로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늙은 나이에 세례자 요한을 낳았으며(루가 1장), 아론의 후손으로 즈가리야의 아내였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유명한 분이 2분 더 있습니다.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① 헝가리의 ∼(E. Hungariae, 1207∼1231) 성녀. 축일은 11월 17일. 헝가리왕 안드레아스 2세의 딸로 브라티슬라바에서 태어나 4세 때 튀링겐의 영주 헤르만의 아들 루드비히와 약혼. 14세때 새로 영주가 된 루드비히와 결혼,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며 3자녀를 낳았다. 발트부르크에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제자를 자신의 고해신부로 삼고, 청빈 자선으로써 궁정의 사치를 피했으며 1226년의 대기근 때는 난민 구조로 활약, 병원을 건립하고 특히 어린이 구제에 종사하였다. 남편이 십자군 원정 중에 죽자(1227년), 마르부르크에 작은 암자를 짓고 프란치스코회 제3회원으로서 탁발 생활을 하며 기도와 박애자선사업에 전념하다가 24세 때 죽었다. 헝가리의 엘리사벳의 `장미의 기적'이야기는 유명하다. 1235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② 삼위일체의 ∼ (E. Trinitatis,1880∼1906)가르멜 수도회 수녀. 프랑스의 부르제 부근에서 태어나 4세 때 육군장교인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는 엘리사벳에게 훌륭한 그리도교 교육을 시켰다. 14세 때 동정녀가 될 것을 맹세했고 21세 때 디종의 가르멜수도회에 입회, 2년 후인 1903년 허원을 하였다. 1904년 11월 엘리사벳은 유명한 기도문구를 지었다. 1905년의 부활절을 앞두고 성 바울로에게서 삼위일체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신의 사명을 찾아냈다. 엘리사벳은 1906년의 그리스도 승천절과 그 보다 조금 뒤의 두차례에 걸쳐 하느님과의 일치로 들어가는 영감을 체험하는 은총을 받았다.
그 밖에도 다른 엘리사벳 성녀들이 또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헝가리의 엘리사벳 성녀가 가장 대표적인 엘리사벳 성녀로서 여겨지고 있습니다.
치릴로 성인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조해주세요:
① 알렉산드리아의∼(C. Alexandrinus, ?∼444) 성인. 교부(敎父). 교회학자. 412년 삼촌 테오필루스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으며 그리스도론의 올바른 정립을 위하여 전생애를 투신하였다. 특히 네스토리우스의 오류를 지적한 에페소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치릴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여 그 곳에서 성장, 교육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집트의 이시도로는 그가 잠시 사막에서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증언하고 있지만 역사적 신빙성은 없다.
일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성인이 제일 유명하십니다.^^
한 번 잘 선택해 보세요. 사실 자기 주보성인을 골라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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