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광야에서의 세 가지 유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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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중규 | 작성일2001-02-14 | 조회수5,491 | 추천수1 | |
광야에서의 세 가지의 유혹에 대해 살펴보면, 첫째 ’빵의 유혹’의 의미란 우리에게 참된 신앙행위는 사심(邪心)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모든 걸 심지어는 자신에겐 전혀 쓸모 없는 ’돌’까지도 이기적으로 취하고 또 그렇게 판단할 때, 그 삶은 생명감이 없는 메마른 것이 된다. 거기에다 우리는 빵이란 것을 생존을 위한답시고 가장 필요한 것으로 아주 당연히 여기고 있으니, 빵 앞에서 인간은 가장 이기적이 된다. 그러기에 ’돌’을 ’빵’으로 삼기까지 하며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을 손아귀에 움켜잡고, 그런 심사 안에선 ’빵’조차 ’돌’처럼 쓸모 없는 것으로 변질 부패되고 만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모든 죄악과 비극의 원천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심(邪心) 없이 살아갈 때 오히려 하느님이 주신 세상의 모든 것은 생명원이 되어 삶에 풍요로움을 준다. 그럴 때엔 굳이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참된 기적이 일어난다. ’빵’은 생명의 양식이 될 뿐 아니라 모든 ’돌’조차도 ’빵’으로 변형되는 기적이 펼쳐진다. 둘째 ’권력의 유혹’의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하느님의 것, 더 나아가 그를 대리하는 인간의 것이지 결코 사탄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탄의 이 유혹의 말은 우선 거짓이다. 사실 사탄은 언제나 거짓으로 유혹한다. 첫 이브를 거짓으로 유혹했던 사탄은 이제 여기서 새 아담인 예수를 역시 거짓으로 유혹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은 이미 그대의 것인 줄도 모르고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그대가 사탄에게 무릎 꿇는 것은 마치 주택을 사면서 참주인을 모르고 사기치는 브로커와 계약하는 것과 같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준 생명의 장이다. 비록 지금은 원죄의 그늘에 가려 완전치는 못하지만 새하늘 새땅의 새예루살렘의 그날엔 에덴 동산에서처럼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 살게 되리라. 물론 지금도 영적(靈的)으로야 참 신앙 안에서 그것이 가능하다. 셋째 ’성전 꼭대기의 유혹’의 의미는 높은 곳에 올라서 최고가 된 자는 우쭐해져 온갖 짓이라도 다할 것 같은 교만에 빠진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서 성전 꼭대기란 ’권력’’재물’’학식’ 도체 모든 우상이다. 스스로 설 수 없는 자가 대개 그런 우상에 기대어 그걸 믿고서 오만한 짓을 다 하게 된다. 우상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오직 하느님 안에서 홀로 서라. 그럴 때 세상 곧 우주만물과 그대는 하나가 되어 모든 게 형제로 그대를 대해 주기에, 발에 부딪힐 돌도 없고 거기엔 오직 친교만 가득 하리라. 무엇보다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느님을 우상화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대의 하느님을 천박한 우상으로 만들어 그대 스스로를 타락시키지 말고, 고결한 인격자로 그분을 대접하여 그대의 심령을 하늘에까지 올리도록 하라. 그런데 이것은 성령(聖靈)의 능력을 받을 자세이기도 하다(곧 이어지는 14절a를 보라). 자기에서 벗어나고, 허위의식에서 깨어나고, 우상을 멀리할 때, 성령은 그대에게 온다. 아니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으로 지음 받은 게 바로 인간이니 그대는 비로소 참 인간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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