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경건한 이방인 고르넬리오(코르넬리오)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신약] 예수님 이야기67: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3,979 | 추천수0 | |
[성서의 인물] 경건한 이방인 고르넬리오
가이사리아는 요빠에서 북쪽으로 약50 킬로미터 떨어진 지중해변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이 도시는 헤로데왕이 로마황제를 위해 재건했고 로마총독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로마군대가 주둔해있어서 도시의 성격이 몹시 로마적이고 이방인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가이사리아에 고르넬리오란 백인대장이 있었다. 백인대장이란 백명의 사병을 거느리는, 오늘날로 보면 중대장 정도의 지휘관을 의미한다. 백인의 사병으로 편성되는 백인대는 로마군제의 핵이라 할 수 있다. 투표를 할 때도 백인대별로 내부에서 의견을 수렴하여 한 표를 행사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기초적인 단위가 되었다. 그러므로 백인대장이란 당시에 상당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고르넬리오는 온 집안 식구와 더불어 하느님을 경외하며 백성들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하느님께 늘 기도했던 경건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에게는 착한 남편으로, 자녀에게는 좋은 아버지로, 부하들에게 자비 넘치는 상관으로써. 화목한 가정과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던 인물이었다. 당시의 점령군 장교가 현지 주민에게 약탈과 살상이나 일삼는 것이 보통인데 도리어 자선에 힘썼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적으로는 할례를 받고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살지는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이처럼 고르넬리오는 비록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양심에 따라 경건하게 살고 있는 수많은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 세시쯤 기도를 드리고 있는 고르넬리오에게 신비로운 영상으로 천사가 찾아왔다.
"고르넬리오!"
"무슨 일입니까?"
고르넬리오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하느님은 너의 기도와 자선을 받아들이시고 너를 기억하고 계신다. 이제 요빠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을 집으로 데려오시오."
천사는 이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고르넬리오는 천사의 말대로 베드로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믿음직한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베드로도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옥상에서 기도를 하다가 시장기를 느껴 무엇을 좀 먹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에 끈이 달려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그릇 안에는 온갖 네발 달린 짐승과 땅을 기어다니는 짐승, 날 짐승이 있었다.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베드로야, 어서 잡아먹어라."
"주님, 안됩니다. 저는 더러운 건 한번도 입에 댄 적이 없습니다."
"이 사람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게나."
그리고는 그릇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환시를 보았다. 베드로는 자신이 체험한 것이 무엇인가 하며 어리둥절해 있었다. 바로 그때 고르넬리오가 보낸 사람이 베드로를 찾고 있었다.
로마의 백인 대장이 찾는다는 말에 무섭기도 하고 몹시 당황했다. 그런데 성령께서 안절부절못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이니 그들을 따라가거라."
다음날 베드로는 고르넬리오 집으로 향했다. 고르넬리오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다가 베드로가 들어오자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했다. 당황한 베드로는 "일어나십시오. 나도 똑 같은 사람입니다." 하며 일으켜 세웠다. 이처럼 고르넬리오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로마제국 장교로서 자기 지배 아래 있는 피정복 민족 중에도 어부 출신이요, 사람들이 천시했던 그리스도교의 사도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이었다.
고르넬리오는 그간의 체험을 이야기하며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열성으로 베드로를 환영했다. 베드로는 하느님은 외적인 조건으로 사람을 가리시지 않는 분이며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고 설교했다. 베드로가 설교를 끝내고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렸다. 사람들은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내려 주신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미했다.
이 사건으로 신앙 안에서 유대와 이방인, 그리고 로마의 장벽은 무너졌다. 즉 예수의 복음으로 민족과 인종의 차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고르넬리오의 사건을 통해서 모든 인간의 간격은 없어지고 모두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오히려 신앙이 사람과의 간격을 벌리고 가정과 사회를 갈라놓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인 것이다.
신앙은 특권도 영웅적인 행위도 아니다. 신앙은 오히려 다른 이를 구원에로 이끄는 주님의 부르심이 아닐까.
[평화신문, 2001년 8월 1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