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동물] 성서 속의 동물들: 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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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4,355 | 추천수0 | |
성서 속의 동물들 : 말
욥기에 말이 힘이 센 동물로 나오고 있다. “네가 말에게 날랜 힘을 주었느냐? 그 목덜미에 휘날리는 갈기를 입혀 주었느냐? 네가 말을 메뚜기처럼 뛰게 할 수 있느냐? 힝힝하는 그 콧소리에 모두들 두려워한다. 발굽으로 세차게 땅을 파다가 힘이 뻗쳐 내달으면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무서움쯤은 콧등으로 날려 버리며 칼날도 피하지 아니하고 내닫는다. 화살 통이 신나게 덩그렁거리고 창과 표창이 번뜩이는데 아우성치는 함성을 헤치며 땅을 주름잡고 곁눈 한번 팔지 않고 돌진한다. 나팔소리 울려오면 ‘힝힝’ 울고 지휘관들의 고함과 진격명령만 듣고도 멀리서 풍겨 오는 전쟁 냄새를 맡는다.‘(욥기 39,19-25)
여기에서는 용사의 군마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말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시작된 오래 된 가축이지만, 병사를 태우거나 전차를 끌거나 전장에 동원되어 전쟁이 거듭되는 가운데 개량되어져 발달해 왔다. 그리고 고대로 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강대한 제국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백성은 많은 시대, 말을 갖지 못하고 싸웠었다. 모세를 따라 에집트를 탈출 했을 때도 걸었었다. 이스라엘사람을 해방시킨 일을 고통스러워했던 파라오는 처음으로 많은 말과 전차(6백 전차)를 동원해 해변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쫒아 왔다.(출애14,5-10) 야훼 하느님의 인도로 파라오의 전차로부터 피해 40년간 광야를 여행하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말을 갖지 못한 채 싸웠다. ‘왕이라고 해도 군마를 많이 기르는 일만은 하지 못한다. 말을 늘리기 위해서 백성을 에집트로 다시 보내어 군마를 많이 얻어 오게 해도 안 된다.’(신명 17,16) 이 이야기는 다윗 시대까지 이어진다. ”다윗은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다데젤이 세력을 되찾으려고 유프라테스강으로 가는 것을 쳐서 기병 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도 백 대만 남기고 나머지는 못쓰게 만들었다.“(2사무 8,3-4) 그러나 강대한 왕국을 세운 솔로몬은 많은 말과 강력한 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솔로몬이 병거와 말을 사 모으다 보니 병거가 천 사백 대, 군마는 만 이천 마리가 되었다. 그는 이 병력의 일부는 병거주둔성에 배치하고 일부는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배치하였다.”(1열왕 10,26) 그리고 “병거를 끌 말의 마굿간이 4만....”(1열왕 5,6)에 이르고 있었다. 솔로몬은 말을 중심으로 해 에집트에서 수입해왔다. 왕의 상인은 “병거 한 대에 은 육백 세겔(약 6-7kg), 말 한 마리에 은 백 오십 세겔”(1열왕 10,29)에 산 것으로부터 그 군비는 굉장한 것이었다. 강대한 왕국을 유지하는 것은 강대한 군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말을 중심으로 한 군비로는 평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휘청거려 쓰러지겠지만 우리는 꿋꿋이 선 채 넘어지지 않사옵니다. 야훼여! 우리 임금에게 승리를 주소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들으소서.”(시편 20,8-9) 전차와 말을 준비한 왕국은 솔로몬 사후, 남북으로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말 수입과 함께 건너온 우상을 숭배해 이로 말미암아 보다 더 강력한 군마 집단을 가진 앗시리아, 그리고 바빌론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들리느냐? 저 채찍질 소리, 병거 바퀴 돌아 가는 저 요란한 소리. 말은 소리치고 병거는 치닫는다. 칼과 창을 번개처럼 번쩍이며 기마병이 말 타고 달려든다. 다치는 사람은 수도 없고 주검은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는 가는 곳마다 발에 차인다..”(나훔 3,2-3)
평화는 싸움에 강한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으며 온화한 당나귀에 의해 온다고 예언자는 말하고 있다.“수도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수도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아라, 네 임금이 너를 찾아 오신다. 정의를 세워 너를 찾아 오신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새끼나귀를 타고 오시어 에브라임의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의 군마를 없애시리라. 군인들이 메고 있는 활을 꺾어 버리시고 뭇 민족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이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큰 강에서 땅 끝까지 다스리시리라.”(즈가 9,9-10)
이 말씀처럼 평화의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다.(마태 2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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