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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공동체에서 추방된 나병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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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5,684 추천수0

[성서의 풍속] 공동체에서 추방된 나병환자

 

 

- 에기노 바이너트(Egino Weinert, 1920), '나병환자를 치유하는 예수님', 칠보, 작가소장, 쾰른, 독일. 자료제공=정웅모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구약성서에서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사제는 그를 부정한 자라고 선언했다(레위기 13장 참조). 사람이 나병에 걸리면 그가 그동안 누렸던 삶의 모든 것을 빼앗겼다. 또한 나병환자는 진지 밖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그가 만약 결혼한 사람이면 자연적으로 부인은 생과부가 되며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다. 나병에 걸린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나병에 걸리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고통과 좌절을 겪게 되었다. 성서 시대에 나병은 종종 잘못 진단되기도 했다. 당시 나병은 대단한 전염성과 유전성으로 큰 재앙으로 간주되었다(레위기 13장 참조).

 

나병은 노르웨이 의사인 A. 한센이 1874년에 비로소 그 병원균을 발견했지만 성서 시대에도 있었던 무서운 병이었다. 박테리아에 의해 전염되는 나병은 지금까지 여전히 어떤 예방약도 없다고 한다. 이제는 치료 가능한 병이 됐지만, 나병에 걸리면 여전히 사회적 낙인의 두려움을 수반해야 한다. 나병 박테리아는 피부와 신경을 엄습해서 무감각하게 만들고 나아가 감염과 농양으로 마지막 단계에는 관절과 뼈까지도 상하게 한다.

 

그래서 얼굴이 기형으로 일그러지고 사지가 썩어 들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거부감을 일으키게 한다. 나병은 고통을 수반할 뿐 아니라 훼손을 가져오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정신적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성서에서는 문둥병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 했다. 나병은 전염성이 강해서 나병 환자들은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곳에 격리되어 살았다(레위기 13장 참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을 때(루가 12,12-16 참조)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진 것을 보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나병의 치유 여부는 사제들이 확인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레위기 14장 참조).

 

따라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에 모세의 법대로 제사장에게 회복된 몸을 보이게 하여 종교적, 사회적 권리를 되찾을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나병이 죽음처럼 회복할 수 없는 병이기에 하느님만이 이 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믿었다.

 

성서의 '나병'은 전문 지식보다는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검진되었다. 그리고 나병의 원인이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데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병은 최악의 질병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죽음과 같은 하느님의 저주의 징표와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사람들과 마주쳐서도 안되고 만나는 것도 금지되었다.

 

나병환자를 보기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 병을 전염시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인적이 많은 도로 근방에도 올 수 없었다. 인기척이 들리면 나병환자는 자신이 부정탄 사람임을 소리쳐 알려야 했다. 결국 나병환자들은 이미 죽음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고대 유다인들은 문둥병자를 진지 밖으로 쫓아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진지 밖에 산다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권리와 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다행히 몸이 다시 낫게 되면 그는 사제에게 나아가 일주일 동안 관찰을 받고, 사제로부터 치료가 되었다는 판명을 받으면 정한 제물을 드려 다시 공동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성서에서 나병환자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후에 실제로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구약성서 시대에는 나병을 육체적 질병의 감염으로 생각했으며 도덕적 타락으로 보지는 않았다. 다만 성서는 나병에 걸리면 앞으로 그의 생활이 무서운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접촉도 만남도 금지되었던 나병환자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다가가서 기적을 베푸셨다는 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병환자와 함께 오랫동안 생활했으며 결국은 그 자신이 나병환자가 된 다미안 신부님은 나병을 얻고 나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나병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병이 아니었으면 하느님을 이처럼 절박하게 뵙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에게 나병을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평화신문, 2003년 6월 1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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