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화] 불쌍한 사람의 대명사, 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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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7 | 조회수3,829 | 추천수0 | |
[성서의 풍속] 불쌍한 사람의 대명사, 과부
"과부가 찬밥에 곯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남편이 죽고 혼자 몸이라고 해서 몸을 소홀히하여 허약해지는 과부의 곤궁한 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성서에서 '고아와 과부'란 가장 불쌍한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고아와 과부'는 가난이나 질병이나 신체장애, 사회 환경적 이유 등으로 생활 능력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자에 비해 여자의 신분은 아주 낮았다. 남편이 없는 과부의 경우에 생활의 어려움은 더 컸을 것이다.
성서에서 '과부'는 대부분 단순히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신분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말하는 과부는 우선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 남편이나 아들 등의 경제적 뒷받침이 전혀 없는 여성을 지칭한다. 또는 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를 일컫기도 했다. 이스라엘 사회는 과부를 고아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규정했다. 과부가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는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기 때문이었다.
구약시대에 남편이 먼저 죽으면 미망인은 과부 옷차림을 해야했다(창세 38,14 참조). 과부가 된 여자는 아들이 없으면 고인의 형제와 살 수 있었다. 또는 친정으로 돌아가거나 나이가 젊고 지참금이 충분하면 재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있거나 남편의 유산이 풍족하면 아들과 함께 살다가 아들이 장성하면 재산권을 물려주고 아들의 보호를 받았다.
따라서 성서에서 말하는 '과부'는 대부분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보호자 없이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불쌍한 젊은 여인을 지칭했다(1열왕 17,8-16 참조). 이러한 과부들은 특히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 가장 밑바닥의 빈곤층을 형성했다.
이스라엘 율법에는 약자보호법이 있었다. "과부들과 고아들을 괴롭히지 말아라"(탈출 22,20 참조). 특히 과부들에게 반드시 친절하게 말해야하고 예의를 지켜야할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시킨다거나 감정을 해치는 말을 해서도 안되었다. 과부들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괴롭히거나 금전적 손해를 입힐 경우에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부들을 억눌러 그들이 하느님에게 부르짖으면 하느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탈출 22,22 참조). 이처럼 이스라엘 공동체는 과부들을 보호하는 전통이 있었다.
과부들을 보호하는 구약의 전통은 신약시대에도 이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열심한 신심을 가진 척하면서 뒤로는 힘없는 과부들을 착취하는 지도자들을 단죄하심으로써 그들을 변호하셨다(마르 12,40 참조). 이러한 예수님 가르침은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과부들을 특별히 돌보았다(사도 6,1 ; 1디모 5,16 참조). 또 고통 중에 있는 과부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일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야고 1,27 참조).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과부들은 단체를 이루어 일정한 직무를 수행했다(1디모 5,3-16). 그런데 이 단체에 가입하려면 재혼해서는 안되었고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돌보아야 할 가족이 없어야했다. 또한 선행이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했다. 이들의 활동은 구체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하느님을 찬미하고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을 잘 하도록 인도하고, 성직자들의 자선활동과 사목방문에도 도움을 주었다. 이처럼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과부들은 적극적으로 교회와 함께 복음을 선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평화신문, 2004년 6월 2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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