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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쟁기를 잡고 돌아보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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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811 추천수0

[성서와 풍속] 쟁기를 잡고 돌아보면 안된다

 

 

- 밭을 가는 소, 이집트 민속촌. 자료제공=정웅모 신부.

 

 

쟁기는 논과 밭을 가는 데 쓰는 농기구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쟁기라는 이름은 잠기에서 비롯됐는데, 잠기는 원래 무기를 가리키는 잠개가 변한 말이다. 예전에는 농기구를 무기로도 썼으므로 두 가지를 같은 말로 사용했던 것이다. 또 쟁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보습인데, 철제가 나오기 전에는 나무를 깎거나 돌을 갈아서 썼다.

 

어느날 예수님이 한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고 하셨다.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루가 9,57-62 참조).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신다. 물론 이것은 하느님 일을 할 때는 딴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 분명하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언급하시면서 왜 하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셨을까? 과연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일까? 이 말을 잘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농부들이 사용한 쟁기에 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말씀은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아내를 떠올리게 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느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아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창세19,26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소나 말이 끄는 달구지에 쟁기를 실어 날랐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농부가 직접 어깨에 메고 날랐기에 쟁기는 반드시 가벼워야했다. 또 쟁기는 두 개의 긴 나무를 연결해서 만들었다. 나무 한쪽 끝에는 손잡이를 달고 맞은편에는 삽처럼 생긴 것을 매달아서 쟁기로 사용했다. 그리고 십자 모양으로 연결된 또 다른 나무 끝에는 멍에를 걸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서 달았다. 이스라엘 농부들은 이 멍에를 사용할 때는 대개 한 손을 사용했다. 따라서 무겁지 않은 쟁기를 힘을 주어 한 손으로 잡고, 밭갈이에 사용하는 동물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서 앞으로 나가도록 막대기를 들었기에 농부는 언제나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은 돌이 많아서 흙이 깊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지 않으면 튀어나온 돌에 부딪쳐서 쟁기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또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매어 쟁기질을 시킬 수 없었다(신명 22,10 참조). 따라서 이스라엘 농부가 쟁기질을 할 때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이 한눈을 파는 것은 허용될 수 없었다. 농부들은 땅이 아주 단단하거나 언덕을 갈아서 만든 밭처럼 짐승이 끄는 쟁기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은 땅에서는 곡괭이를 사용했다.

 

그리고 베드윈 족은 나귀를 이용해서 밭을 갈았는데 농부들은 작은 막대기로 쟁기를 끄는 나귀를 다스렸다. 이 막대기는 약 1.5m 정도 되는 것으로 나무 한쪽 끝이 아주 날카롭게 만들어져서 나귀가 방향을 잘못 잡거나 게으름을 피울 때 다그칠 수 있었다. 막대기는 보습과 더불어 적과 전투할 때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용했던 무기가 바로 소를 모는 막대기였다(판관 3,31 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밭을 가는 사람은 당연히 앞을 주목하며 집중해서 밭을 갈아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쟁기로 밭을 갈면서 뒤를 돌아보면 당연히 밭이랑이 비뚤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손에 쟁기를 잡았다는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일을 맡았다는 뜻이고, 뒤를 돌아보는 것은 세상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농부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세상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평화신문, 2004년 10월 2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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